'애플카' 때문에 다시 소환한 삼성과 노키아의 선택

[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파괴적 혁신의 가능성과 한계

데스크 칼럼입력 :2021/02/01 15:12    수정: 2021/02/02 07:20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최근 10년 사이에 가장 급격하게 몰락한 기업은 어디일까? 보는 관점에 따라 여러 기업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어떤 잣대를 들이대더라도 빼놓기 힘든 기업이 있다. 바로 노키아다. 한 때 휴대폰 절대 강자로 군림했던 노키아는 ‘아이폰 돌풍’에 휘말리면서 눈 깜짝할 사이에 텃밭에서 쫓겨났다.  

노키아는 지금은 통신장비 쪽에 주력하면서 새로운 도약을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노른자위였던 휴대폰 시장을 놓고 보면 '몰락'이란 표현이 어색하지 않다. 단기간에 정상에서 밑바닥으로 굴러떨어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이폰이 출시되던 2007년 노키아의 위세는 대단했다. 휴대폰 시장 점유율 40%를 웃돌았다. 그 무렵 노키아는 핀란드 수출의 20%, 법인세 23%를 책임졌다.

노키아는 2006년 한해 동안 휴대폰 2천900만대 가량을 판매했다. 2007년 아이폰을 선보인 애플이 2010년에야 누적 판매량 3천만대를 넘어선 점을 감안하면 당시 노키아의 위세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핀란드에 있는 노키아 본사 건물. (사진=씨넷)

그랬던 노키아는 아이폰 등장 이후 급격하게 몰랐다. 2012년엔 14년 연속 지켜왔던 휴대폰 시장 1위 자리를 삼성전자에 내줬다. 스마트폰 시장 실적은 더 초라했다. IDC에 따르면 2012년 1분기 노키아의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은 8.2%였다. 반면 삼성과 애플은 25% 가량의 점유율로 각축전을 벌였다.

노키아는 결국 2013년 9월 휴대폰 사업과 특허권을 마이크로소프트(MS)에 매각했다. 당시 매각 대금은 54억 유로(약 7조3100억원)였다. 

노키아가 혁신을 외면하다가 몰락한 대표적인 기업으로 꼽히는 건 이런 사정 때문이다. 스마트폰의 위력을 간과했다가 속절 없이 몰락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기존 구조 고수했던 노키아 vs 과감하게 변신했던 삼성 

하지만 노키아는 새로운 흐름을 몰랐던 게 아니었다. 누구보다 시장 흐름을 잘 알고 있었다. 스마트폰도 누구보다 먼저 내놨다. 1996년 세계 최초 스마트폰인 ‘노키아 9000’을 출시했다. 1990년대 후반에 이미 터치스크린이 탑재된 태블릿을 개발했다. 2010년 아이패드를 출시한 애플보다 10년 이상 빨리 새로운 혁신에 눈을 돌렸다.

그런데 왜 실패했을까? 서울대 박상인 교수는 ‘삼성전자가 몰락해도 한국이 사는 길’이란 책에서 노키아가 실패한 건 ‘기존 시장에서의 기득권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 무렵 핵심 사업이던 피처폰에 주력하다보니 과감한 단절적 혁신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알면서도 실행하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박상인의 설명을 조금만 더 따라가보자.

“노키아는 기존 사업과 잠재적 사업이 경합할 때도 기존 사업을 우선시했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 사업보다 매출 규모가 큰 피처폰 사업에 더 많은 자원과 우수한 인력을 투입했다. 또한 잠재력만 인정된 리눅스 기반 OS인 마에모보다 기존 사업인 심비안에 더 많은 투자를 했다.”

과감한 변신에 실패한 대가는 혹독했다. 결국 노키아는 2011년 ‘불타는 플랫폼에 서 있는’ 처절한 현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스티븐 엘롭은 노키아 CEO 재직 당시 불타는 플랫폼이란 명언을 남겼다.

삼성전자는 달랐다. 그 무렵 휴대폰시장 2위였던 삼성전자는 노키아와는 다른 길을 선택했다. 삼성은 아이폰이 국내 출시되던 2009년 2월 옴니아2를 선보였지만 외면 당했다. 떨어지는 성능 때문에 ‘무늬만 스마트폰'이란 혹평을 받았다.

노키아와 똑같은 위기 상황이었다. 같은 위기였지만 대처는 달랐다. 과감하게 안드로이드 플랫폼에 올라타는 쪽을 택했다. ‘플랫폼 종속’ 우려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고 이건희 회장의 과감한 결단에 힘입어 ‘갤럭시 폰’에 최고 인재들을 투입했다.

그 결과 삼성은 몇 년 째 스마트폰 시장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모바일 혁신’ 선두주자 애플 못지 않은 강력한 혁신을 보여줬다. 뛰어난 제조 및 혁신 능력과 탄탄한 수직계열화에 힘입어 안드로이드 군단을 이끄는 최고 장수 역할을 해내고 있다.

‘플랫폼 종속’ 우려 역시 실력으로 돌파해냈다. 물론 안드로이드가 없는 갤럭시 폰은 생각하기 힘들다. 하지만 그 역도 성립한다. 삼성이 빠진 안드로이드 진영은 오합지졸에 불과하다. 삼성은 안드로이드폰 중 유일한 성공 사례나 다름 없다. 

덕분에 삼성은 스마트폰 단말기 제조업체 중 플랫폼 사업자와 대등하게 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 있는 유일한 기업이 됐다. 과감하게 플랫폼에 뛰어든 뒤 플랫폼의 지배자가 됐다. 

테슬라와 애플이 자동차시장에 던진 또 다른 질문 

최근 테슬라가 돌풍을 일으키고, 애플카가 화두로 떠오르면서 또 다시 ‘플랫폼 선택’이 도마 위에 올랐다. 애플, 구글 같은 IT 강자들이 연이어 뛰어들면서 뜨거운 전운이 감돌고 있다. 스마트폰 시장이 막 열리던 때를 연상케 만든다.

물론 자동차와 스마트폰은 차원이 다르다. 요구되는 제조 역량이나, 부품 생태계 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 때와 지금을 수평 비교하는 것은 다소 무리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버랩 되는 부분도 적지 않다. 기존 자동차 강자들 입장에선 ‘내연기관’ 중심의 기존 자동차와 친환경 전기차와 스마트 자동차라는 새로운 플랫폼을 놓고 치열한 고민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관련기사

내가 최근의 자동차 시장 상황을 보면서 10여 년 전 스마트폰 시장을 떠올린 건 이런 사정 때문이다. 앞으로 5년 뒤 자동차 시장은 어느 쪽으로 흘러갈까?

내연기관 중심의 기존 자동차업체들이 주도하는 ‘체제 내 혁신’이 여전히 대세로 자리잡을까? 아니면 IT와 플랫폼에 강점을 갖고 있는 외부 세력의 ‘파괴적 혁신’이 시장을 바꿔놓을까? 테슬라와 애플카를 둘러싼 시장의 뜨거운 관심을 지켜보면서 이런 질문을 던져보게 된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