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인공지능 스타기업이 탄생하려면

전문가 칼럼입력 :2020/12/30 09:42

조재홍 정보통신산업진흥원 AI혁신TF팀 수석

"한국은 대형병원이 많아 질환별 데이터 확보와 검증이 용이하고, 보편화된 건강검진과 병원 내 트렌디한 최신 의료기기 도입경쟁, 또 의료진의 높은 진단역량으로 미국에 비해서도 의료수준이 높습니다.”

필자가 현장에서 만난 한 AI 의료기업 경영인이 밝힌 창업 이유다. 국내 오프라인 의료 환경 수준이 높아 AI 사업에도 유리하다는 거다. 국내 식약처 AI 의료기기 허가를 획득한 스타트업은 약 10개 내외다. 아직 그 수는 적지만 폐질환, 뇌질환, 유방암 등 국민 주요질환에 대한 의료영상 판독정확도가 90%에 달하는 등 높은 수준의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다. 또, 제품화에 성공한 한국 AI 의료 스타트업은 세계 최대 북미와 유럽 시장은 물론 UAE, 사우디아라비아, 베트남 등 글로벌 시장에 진출, 가시적 성과를 보이고 있다.

시장조사기업 마켓&마켓에 따르면 세계 AI 의료시장 규모는 2020년 49억달러에서 2026년 452억불로 연평균 44.9%씩 성장할 전망이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안전한 원격의료에 대한 수요가 증가한 북미를 중심으로 AI 의료시장 성장세가 높다. 특히 의료영상을 AI로 분석해 병변 존재 여부를 판별하고 질환 위치와 크기를 자동으로 판독하는 의료영상 판독시장이 2026년 75억달러에 도달, 최대 AI 의료 응용서비스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됐다.

조재홍 NIPA 선임

현재 한국은 미국, 유럽과 달리 의료진과 환자 간 직접적인 원격의료가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또 1960년대부터 정부, 기업, 커뮤니티가 오픈소스를 기반으로 협업하며 머신러닝 기술을 개발해온 미국에 비해 AI 기술력도 뒤진다. 규제 등으로 쉽지 않은 한국 AI 의료시장에서 글로벌 시장에 도전하는 AI 스타트업이 잇달아 생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한국은 제조업 강국이다. 스마트폰, 카메라, CCTV 등 세계 최고 수준의 전자제품을 생산하며 축적한 컴퓨터 광학 응용기술이 AI 스타트업 탄생으로 이어졌다. 국내 주요 AI 의료 스타트업 탄생 시기는 2014년 무렵이다. 컴퓨터 비전 기술을 비롯한 인공지능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적었던 시기다. 이 시기에 창업한 AI 의료 스타트업은 대기업 기술연구소나 대학 내 산학협력 과제 수행을 통해 습득한 컴퓨터 비전 기술을 핵심역량으로 보유, 창업에 나섰다. 또 의료영상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스타트업은 의류 가상피팅, 제조 공정 내 제품결함 감시 등 컴퓨터 비전 기술을 산업에 적용, 핵심 비즈니스 모델을 발굴했다. 여기에 의료영상 판독에 인공지능 활용을 계획하던 의사 및 병원과 AI 기술 실증경험이 더해져 AI 의료영상 판독 서비스들이 나오게 됐다.

둘째, 2016년 3월 알파고와 이세돌 9단 간 바둑대결은 인공지능 인식확산에 크게 기여하며 대형병원을 중심으로 스타트업과의 본격적인 AI 의료협업을 촉진하는 계기가 됐다. 당시만 해도 국내 의료계는 의술은 의사의 고유 영역으로 IT, 소프트웨어와 같은 기술로 접근할 수 없다는 인식이 보편적이었다. 일부 영상의학 학회를 중심으로 AI를 의료영상 진료에 활용하려는 논의가 있었지만 AI 스타트업은 병원과 협업하며 의료영상 데이터를 학습하고 알고리즘을 개발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곤했다. 알파고의 바둑대결 승리는 인공지능의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인식을 넓히는 데 성공했고 이후 병원의 AI 스타트업 협업에 대한 요청이 쇄도했다.

셋째, 민간, 공공기관의 초기 스타트업에 대한 자금 투자는 스타트업의 제품 개발을 가속했다. 카카오벤처스 등 민간 투자처에서 최초 투자를 받은 후 더 자신감을 얻고 큰 규모의 공공기관 투자를 받는 곳도 생겨났다. 특히, AI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으나 자금이 부족하던 스타트업은 초기 투자자금 덕분에 1~3년간의 개발기간을 거쳐 AI 의료영상 판독 솔루션 개발에 성공할 수 있었다. 또한 다양한 정부 프로젝트의 AI 의료영상 실증사업에 참여하며 AI 스타트업은 병원과의 협력을 더욱 확대했다. 비록 병원 의료영상 데이터를 소유할 수 없지만 연 700만 건 내외의 데이터 학습은 스타트업의 AI 알고리즘을 강화, 글로벌 정상 수준의 영상판독 기술을 확보하는 데 기여했다.

결론적으로, 현재 한국 AI 의료영상 분야를 대표하는 기업들은 제조 산업현장에서 축적한 컴퓨터 비전 기술이 발판이 됐고 여기에 민관 투자와 정부의 실증 실험 등이 크게 기여했다. 최근 코로나19로 비대면 시대가 성큼 우리 곁에 다가왔다. 비대면 시대에는 AI, 5G, IT 등 4차 산업혁명 핵심기술이 기존 산업과 융합, 서비스 수준을 높이며 비용은 낮출 것이다. 또 디지털 서비스 특성상 스타트업은 창업과 동시에 한국은 물론 글로벌 시장에도 동시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가 높아졌다. 

AI분야에서도 중국 약진은 놀라운데, 중국은 이미 2017년부터 AI+X(응용서비스) 확산 전략을 추진하며 중국 대기업과 스타트업 간 협업환경(자본·기술 투자, 데이터 제공)을 조성하고 있다. 대규모 투자도 확대중이다. 또 중국은 지방정부와 기업이 협업해 자율주행차, 원격의료, 인프라관리 등의 AI+X 서비스를 실증하고 있다. 성공적으로 실증한 서비스는 중국 전역으로 확산함과 동시에 글로벌 표준화를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2020년 디지털 뉴딜 정책 일환으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AI+X'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등 미래 유망산업 육성을 위한 정책적 노력에 매진하고 있다. 의료, 에너지, 자율주행차 등 미래 유망 시장을 선도할 AI 스타트업이 더욱 많아지고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데이터 생성 및 공유, AI 응용서비스 실증 확대, 비즈니스 친화적 규제 개선 등에 더 속도를 냈으면 한다.

--------------------------------------------------------------------------------------

조재홍/ 정보통신산업진흥원 AI혁신TF팀 수석(경영학 박사). AI 의료·반도체·에너지 등 융합산업 분야 국가 AI 정책사업을 기획하고 있으며 인도, 미국 등 해외 주재 경험을 바탕으로 글로벌 소프트웨어 협력 다이내믹스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