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품위법 230조' 뭐길래…트럼프, 임기 막판까지 집착

[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플랫폼 면책 조항 폐지 안되자 국방수권법 거부권

데스크 칼럼입력 :2020/12/24 14:28    수정: 2020/12/24 14:29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결국 국방수권법(NDAA)에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국방수권법은 미국의 안보와 국방 정책 뿐 아니라 국방 예산, 지출을 모두 다루고 있는 법입니다. 

국방수권법은 예산지출권한법입니다. 그러다보니 1년 짜리 법입니다. 매년 새롭게 합의해야 합니다. 국방 분야가 미국 전체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크다보니 매년 의회와 대통령은 국방수권법을 놓고 팽팽한 줄다리기를 합니다. 때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국방수권법이 확정되지 못해 연방 정부 셧다운 사태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이번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란 건 어느 정도 예견됐습니다. 트럼프는 이달 초 “통신품위법 230조를 폐지하기 않으면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경고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씨넷)

거부권 행사 이유 중 하나는 미군 감축 관련 조항입니다. 한국과 독일, 아프가니스탄 등의 미군 감축을 제한한 규정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오히려 다른 곳에 있습니다. 트럼프는 이달초 이미 “통신품위법 230조를 폐지하지 않으면 국방수권법에 서명하지 않겠다”고 경고했습니다. 통신품위법 230조는 페이스북, 트위터 같은 플랫폼의 면책 특권을 보장한 규정입니다. 

트럼프는 국방예산의 기틀이 되는 국방수권법을 볼모로 눈엣 가시 같은 존재였던 통신품위법 230조를 수정, 또는 폐기하려는 속내를 드러낸 겁니다.

1996년 제정된 통신품위법, 초기 인터넷기업 성장 견인차 역할 

트럼프는 왜 그토록 통신품위법 230조를 싫어하는 걸까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선 먼저 통신품위법부터 살펴봐야 합니다.

통신품위법(Communications Decency Act, CDA)은 1996년 제정된 법입니다. 그 무렵은 인터넷이 막 태동하는 시기였습니다. 덩달아 인터넷 음란물이 심각한 문제로 떠올랐습니다. 통신품위법은 음란물 공세로부터 미성년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강한 목적의식을 갖고 만든 법입니다. ‘품위법’이란 독특한 명칭이 붙은 건 그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처벌 규정도 무시무시했습니다. 외설, 폭력 정보를 송신할 경우 2년 이하 징역과 25만 달러 이하 벌금이 부과됐습니다. 과잉 규제 때문에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에 휘말렸습니다.

(사진=미국 전자프론티어재단)

결국 대법원 소송까지 간 끝에 일부 조항에 위헌 판결을 받았습니다.

이번에 문제가 된 230조는 나중에 추가된 조항입니다. 민주당 상원의원인 론 와이든이 공화당 소속이던 크리스 콕스 상원의원과 함께 만들었습니다.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인 프로디지가 소송 당한 사건이 계기가 됐습니다. 한 투자 회사가 프로디지에 자신들을 사기꾼이라고 비난한 글이 올라오자, 프로디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당시 소송에서 프로디지는 패소했습니다. 법원은 플랫폼 사업자들이 이용자 콘텐츠를 중재하는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에 ‘발행자(publisher)’로 봐야 한다고 판결한 겁니다.

통신품위법 230조 제정을 주도했던 론 와이든 의원.

이 판결을 본 콕스와 와이든은 플랫폼 사업자의 법적인 성격을 규정하는 작업에 착수했고, 그 결과로 나온 것이 230조입니다. 선한 의도를 갖고 콘텐츠 중재 작업을 하는 플랫폼 사업자에 대해선 ‘발행자’에 준하는 의무를 부과하지 않아야 한다는 규정입니다. 덕분에 야후를 비롯한 초기 인터넷 사업자들은 소송 걱정 없이 사업을 영위할 수 있었습니다.

전자프론티어재단(EEF) 같은 시민단체들은 통신품위법 230조가 “인터넷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는 가장 중요한 법”이라고 평가할 정도입니다.

플랫폼 사업자 책임성 강화 놓고 뜨거운 공방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 상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인터넷, 특히 소셜 플랫폼엔 허위정보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정파적 대립이 심해지면서 ‘확증편향’을 조장하는 글이나 영상도 더 널리 퍼지고 있습니다.

이런 흐름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 트럼프 대통령입니다. 현직 대통령인 트럼프는 트위터에 확인되지 않은, 혹은 지나치게 정파적인 선동성 글들을 마구 올렸습니다. 그 때문에 트위터에서 블라이드 처리를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습니다.

트럼프가 ‘통신품위법 230조’ 폐지에 유독 열을 올리는 건 이런 상황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민주당 의원들이 통신품위법 230조를 지지하는 것도 아닙니다.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도 이 조항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피력했습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 (사진=위키피디아)

물론 이유는 다릅니다. 통신품위법 230조가 보장한 면책 특권 때문에 소셜 플랫폼들이 허위정보에 좀 더 책임있게 대처하지 않는다는 게 민주당 생각입니다.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하게 되면 통신품위법 230조는 다시 쟁점이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퇴임 한 달 남은 대통령이 내년 국방예산 집행의 근거가 되는 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는 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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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합에 따라 의회에서는 다시 표결을 해야 한다.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한 법은 3분의2 이상 지지를 받아야 통과됩니다.

하원은 오는 28일, 상원은 29일 재표결을 할 계획입니다. 일부 공화당 상원 의원들이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한 법에 대해 또 다시 찬성표를 던지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어 향후 추이에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