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의료보험 보험료 조정을 둘러싼 정부와 보험업계의 줄다리기가 시작됐다. 정부는 대다수 소비자의 부담 가중을 우려해 보험료 인상에 부정적인 반면, 보험사는 손해율(보험료 수입 대비 보험금 지출 비중)을 고려했을 때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뜻을 고수하면서다.
특히 내년 7월 '4세대 실손보험'이 출시된다고는 하나, 그 효과를 가늠하기 어려운 만큼 기존 상품의 보험료를 조정해야 한다고 업계는 주장한다.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와 보건복지부는 18일 공사보험협의체를 연다. 이 자리에서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이 실손보험에 어느 정도의 효과를 안겼는지에 대한 연구 결과를 공개하는데, 이는 곧 실손보험 보험료 조정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정부는 2017년 이후 건강보험 적용 범위를 매년 확대함으로써 실손보험료 인상을 억제해왔다. 급여항목이 늘어나면 비급여 진료비를 보장하는 실손보험의 보험금이 줄어드는 반사효과가 나타난다는 논리다.
이로 인해 작년말엔 보험업계가 2009년 10월까지 팔린 '1세대 실손(구실손)'과 2017년 3월까지 판매된 '표준화 실손'에 대해 두 자릿수 보험료 인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으나, 정부의 반대로 9%대에 그친 바 있다.
그러나 보험업계는 내년엔 큰 폭의 보험료 인상이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일부 가입자의 과도한 진료로 실손보험 적자폭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보험연구원 등의 통계에서 올 3분기까지 실손보험 누적 손해율은 약 130%로 조사됐으며, 손실액은 작년보다 8.9% 늘어난 2조134억원으로 집계됐다.
이에 주요 보험사는 내년 1월 실손보험 갱신을 앞둔 가입자에게 안내문을 보내 가입한 상품에 따라 최고 20%에 이르는 예상 인상률을 공지한 상태다.
보험업계가 이처럼 보험료 인상을 밀어붙이려는 것은 '4세대 실손보험'의 효과에 대한 의구심 때문이기도 하다. 1~3세대 상품의 문제점이 개선되긴 했지만, 당장 보험사의 손해율 개선을 도울 것으로 기대되지 않는 탓이다.
정부가 지난 9일 공개한 '4세대 실손보험'은 도수치료 등 비급여 진료를 받은 정도에 따라 보험료가 할인되거나 할증되는 구조를 띤다. 보험료 상승의 주된 원인인 비급여 진료를 특약으로 분리한 뒤 이와 연계한 보험료 차등제를 도입하는 게 특징이다. 가령 비급여 지급보험금을 받지 않은 사람에겐 보험료를 5% 할인해주고, 300만원 이상 받은 사람에겐 300%를 할증한다. 소비자의 부담을 덜고, 보험사의 손해율을 낮추고자 마련한 조치다.
문제는 기존 가입자가 새로운 상품으로 갈아타야만 정부와 보험업계 모두가 원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보험료가 저렴한 대신 자기부담금이 10%씩(급여 20%, 비급여 30%) 오르고, 통원공제금액도 높아 단기간에 가입자가 늘어나진 않을 것이라고 업계는 진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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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업계 관계자는 "4세대 실손보험이 소비자 간 형평성 문제 해소에 초점을 맞춘 것은 사실이지만, 어느 정도가 '상품 갈아타기'에 동참할지는 예단하기 어렵다"며 "악순환을 막기 위해 기존 상품의 보험료를 조정할 수 있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보험업계의 목소리를 정부가 얼마나 수용하느냐가 관건이다. 다만 보험료가 인상될 경우 결국 피해를 보는 쪽은 결국 선량한 소비자인 만큼 합리적인 수준의 인상폭을 결정하는 것은 물론, 근본적인 해결책을 함께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