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AMD의 시장 확대에 크게 일조했던 콘솔게임기용 칩 사업이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대만 파운드리인 TSMC를 통해 분기당 웨이퍼(wafer) 15만 장 분량의 생산량을 확보하고 있지만 이 중 80% 가량이 차세대 콘솔게임기용 칩 납품에 쓰이고 있다.
이 때문에 AMD는 라이젠 5000 프로세서와 라데온 RX 6800 그래픽칩셋, 노트북용 라이젠 4000 시리즈(르누아르)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텔의 영향력이 약화된 현 시점에 대규모 물량을 통해 시장 점유율을 높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 "AMD, 전체 생산량 중 20%만 자사 제품에 쓴다"
지난 달부터 국내를 포함한 전 세계 시장에 판매에 들어간 소니 플레이스테이션5(PS5)와 마이크로소프트 X박스 시리즈X 등 양대 차세대 콘솔 게임기에는 전량 AMD 프로세서가 투입된다.
지난달 24일 대만 공상시보(工商時報)에 따르면 올 4분기 AMD가 확보한 TSMC 7nm급 공정 생산 물량은 웨이퍼 기준 약 15만 장 가량이다. 여기에는 지난 9월 말 미디어텍이 위탁하려던 물량 1만 3천장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이런 막대한 물량 중 80%에 달하는 12만 장 규모에서 생산된 칩은 AMD가 소니와 마이크로소프트에 납품해야 한다. AMD가 순수하게 자사 제품용으로 쓸 수 있는 분량은 결국 웨이퍼 3만 장 분량이다.
■ 프로세서·그래픽칩셋 모두 부족현상 심화
AMD는 웨이퍼 3만 장 분량을 적절히 조절해 데스크톱·노트북용 프로세서와 라데온 그래픽칩셋까지 생산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과정에서 모든 제품군의 공급 부족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먼저 국내외 시장에서는 '인텔 코어 i9-10900K 킬러'로 등장한 라이젠 9 5000 시리즈의 품귀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국내 유통 상황은 다른 나라에 비해 비교적 원활한 편이지만 미국이나 유럽 등지에서는 많은 소비자들이 한 달 가까이 제품을 받지 못한 상황이다.
AMD는 라이젠 5000 시리즈와 라데온 RX 6000 시리즈 출시를 앞두고 온라인 유통채널에 "대규모 사재기나 되팔이 행위를 방지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실 수요자의 수량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상황이다.
■ 노트북용 프로세서 일부·그래픽칩셋도 '품귀'
노트북용 고성능 프로세서인 라이젠 4000(르누아르) H 시리즈는 이미 9월 중순부터 적체 현상에 시달리고 있다.
국내 상당수 노트북 판매 업체들이 이들 프로세서를 탑재한 노트북을 판매하고 있지만 구매 후 짧게는 2주, 길게는 한 달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일부 유통사는 다른 제품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소비자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엔비디아 지포스 RTX 30 시리즈의 경쟁자로 부상한 라데온 RX 6800 시리즈 그래픽칩셋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1일 현재 가격비교사이트 다나와에는 3개 제조사 14개 제품이 등록되어 있지만 이 중 실제로 판매가 이뤄지는 것은 단 세 제품에 불과한 상황이다.
■ TSMC 생산 물량 단기간 확대 어려울 듯
문제는 AMD 프로세서와 그래픽칩셋을 위탁생산하는 대만 파운드리인 TSMC의 생산 여력이 여의치 않다는 것이다. TSMC는 AMD 프로세서와 그래픽칩셋 뿐만 아니라 퀄컴 스냅드래곤, 애플 A시리즈 AP, 엔비디아 지포스 RTX 20 시리즈 등을 생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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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MC 역시 최근 이사회를 통해 5nm·7nm급 생산 시설을 확충하기로 결정했지만 신규 장비 도입과 시험 생산을 거쳐 실제 공정이 가동되기까지는 1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 것으로 보인다.
결국 막대한 생산 물량을 확보하고도 이를 소니와 마이크로소프트 콘솔게임기용 칩에만 써야 하는 AMD의 딜레마는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