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의빈 라인 최고개발책임자(CTO)는 모바일 메신저 ‘라인’ 안에서 모든 생활이 가능한 세상을 꿈꾸고 있다.
라인 개발자 행사를 맞아 지난 25일 일본에 있는 박 CTO를 화상 인터뷰로 만나본 결과, 그 꿈은 꿈이 아닌 명확한 목표이자 달성 가능한 계획으로 보였다.
이미 많은 글로벌 이용자들이 메시지를 주고받는 것은 물론, 심심할 때 웹툰이나 TV를 보고, 또 결제나 은행 업무도 라인으로 해결한다. 배가 고플 땐 음식을 배달시키고, 필요한 생필품이나 옷도 라인에서 고르고 주문한다. 최신 정보가 궁금할 땐 라인으로 뉴스도 본다. 그야말로 대부분의 생활이 라인 서비스 하나로 해결되는 세상이다. 이미 이 꿈은 상당 부분 이뤄졌고, 완성될 예정이다.
높은 검색 시장의 벽...2011 일본 대지진 이후 기회 잡은 '라인'
라인은 국내에서 카카오톡에 밀려 ‘세컨 메신저’에 불과하지만 익히 알려진 대로 일본, 태국, 대만, 인도네시아 등의 시장에서는 ‘국민 메신저’로 귀한 대접을 받는다. 월 활성 사용자(MAU) 수는 1억8천600만에 달하며, 일본·대만·태국·인도네시아 톱4 국가 MAU는 1억6천700만에 이른다. 카카오톡의 MAU 4천600만과 비교하면 거의 4배에 달하는 실 이용자를 갖고 있는 셈이다.
일본을 중심으로 현재 라인의 성공 이면에는 네이버의 ‘맨땅에 헤딩’스러운 노력이 있었다. 2001년 일본 문을 두드린 네이버는 당시 야후재팬 등 강력한 경쟁자에 밀려 2005년 사업을 철수했다. 그리고 2006년 검색 기업 ‘첫눈’을 인수한 뒤 2007년 다시 네이버재팬을 설립해 일본 검색 시장에 재도전 했다. 이 때 첫눈에서 네이버에 합류한 박의빈 CTO는 일본으로 건너가 네이버 일본 서비스 개발에 힘을 보탰다. 그런데 기대와 달리 네이버는 또 실패했다. 결국 네이버는 일본에서 검색 서비스와 사전 서비스를 2013년 12월 종료했다.
“검색 서비스를 하기 위해 제가 일본에 온지 10년이 넘었는데, 검색의 벽은 굉장히 높았어요. 당시 전문가들은 네이버가 일본에 가면 성공한다고 했는데, 현실은 달랐어요. 채용 자체가 힘들었죠. 그래서 많은 서비스를 만들었어요. 한 달에 하나 만들고, 하나 접고 할 만큼요. 라인도 그 중 하나였고, 소수정예로 만들었어요.”
네이버 일본 법인 네이버재팬(현 라인)의 ‘무모한 도전’은 뜻밖의 행운을 가져다 줬다. 2011년 일본 대지진 이후 안전하고 빠른 소통을 원하는 이용자들의 니즈가 커지면서 모바일 메신저 ‘라인’이 큰 인기를 끌게 된 것이다. 대지진 당시 직원들의 안전을 생각해 일본에서 근무 중인 직원 절반을 본국으로 귀국시킨 상태에서 이뤄낸 값진 성과였다. 라인의 회장이자 이해진 글로벌 투자 책임자(GIO)는 당시 느낀 큰 압박감에 “눈물을 펑펑 쏟았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라인 출시와 성공을 주도한 박의빈 CTO 역시 라인 서비스에 대한 아찔한 경험담을 갖고 있다. 소수정예 멤버가 밤샌 노동으로 서비스를 이어가다 보니 데이터베이스가 날아간 사고가 벌어진 것이다. 이 때문에 3일 간 라인 서비스가 돌연 중단되고 말았다.
“라인은 처음 오픈하자마자 일본, 홍콩, 대만 등에서 갑자기 터졌어요. 불어난 트래픽을 대응하기 위해 전직원이 밤을 새워야했는데, 그러다 개발자 한 명이 DB를 날리는 바람에 서비스가 3일 간 중단됐어요. 그 땐 초기였기 때문에 복구 프로그램을 만들 여력도 없었죠. 장애 직후 3일간 잠도 못자고 복구 프로그램을 짰어요. 그런데 인상 깊었던 건 기획, 사업 등 모든 스태프들이 내 일처럼 지원을 해주면서 아무 탓도 안 했어요. 그 때 한 팀이라고 느꼈죠. 그 이후 365일 장애 없는 라인이 모토가 됐습니다.”
"라인은 아직도 카오스...주인 의식 가진 개발자 필요해"
이제 서비스도 안정화 되고 대규모 개발 조직까지 갖췄으니 박의빈 CTO도 라인과 전혀 다른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하거나, 나만의 사업을 하고 싶은 사업가적 욕심은 없을까 궁금했다. 이에 박 CTO는 아직도 정신이 없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고 답했다. 한눈 팔 여력이 없다는 뜻이었다.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답했어요. ‘라인은 아직도 카오스다’ 라고요. 라인을 오픈하고 나서 국가별로 대응해 왔는데, 각 나라별 조직을 세팅하고 현지에 맞는 서비스들을 구현하려면 엄청난 힘이 들어요. 또 라인 내에서도 엄청나게 많은 도전을 시도해 봤고요. 최근에는 이용자한테 꼭 필요한 서비스를 해보자는 판단 하에 선택과 집중으로 전략을 바꾸긴 했지만, 여전히 조직 세팅과 플랫폼 투자를 계속 병행해야 하는 상황이에요. 새로 뭘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할 여력이 없죠. 다만 만약 기회가 된다면 개발자로서 하나의 프로젝트를 집중해서 하고 싶은 욕심은 있어요. 지금은 CTO로 개발 전체를 총괄해야 하다 보니 어렵지만요.”
서비스 10년이 다 돼 가지만 여전히 정신없이 바쁘게 일한다는 라인의 개발자 문화에 대해서도 궁금증이 생겼다. 많은 개발자들이 구글, 페이스북, 애플 등 글로벌 기업을 꿈꿀 텐데, 라인의 강점은 무엇일까. 또 개발 조직을 이끌고 있는 박 CTO의 인재상은 어떻게 될까.
“개발자 채용은 정말 어려워요. 큰 물에서 모든 것들이 정해진 상태에서 일하고 싶은 개발자는 구글이나 페이스북에 가는 게 좋겠지만, 판에 박히지 않은 플랫폼이나 서비스 프로젝트를 밑바닥에서부터 들여다보고 싶은 개발자는 라인이 맞을 거예요. 저는 개발자의 제일 중요한 덕목을 주인의식이라고 봐요. 누가 시켜서 하는 개발자는 필요 없죠. 본인 스스로 이끌어가는 주체성, 내 프로젝트라는 마인드가 있어야 해요. 이런 주체성을 갖는 개발자들은 결과가 확실히 달라요. 또 기본을 확실히 알고 넘어가려는 자세도 중요해요. 대충하고 넘어가는 건 성장에 전혀 도움이 안 되거든요. 여러 국가의 멤버들이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오픈 마인드도 상당히 중요해요. 문제를 정의하고, 이를 문서화 하는 데 능숙해야 해요. 서로 솔직한 코드리뷰를 함으로써 장애에 대해 회의하고, 똑같은 문제를 반복하지 않는 것도 필요합니다. 여기에 서로 믿고 존중하는 팀워크도 중요하고요.”
이용자 사생활 보호 최우선...금융·블록체인·배달 등 새 사업 공격 투자
아무리 좋은 서비스도 이용자들의 개인정보 관리를 소홀히 하거나, 보안의 취약점이 드러나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수 있다. 얼마든지 대체될 수 있는 서비스들이 많기 때문이다. 좋은 서비스도 튼튼한 기반 위에 쌓아올려져야 하는 것이다. 이에 박의빈 CTO는 이용자 사생활 보호와 보안을 최우선시 한다고 강조했다.
“사생활 보호는 최우선 항목이에요. 메신저만 해도 저희 회사를 비롯해 아무도 들여다 볼 수 없어요. 심각한 범죄 발생 시에 들여다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할 수 있겠지만, 저희는 이것보다 이용자 보호를 우선시해요. 특히 글로벌 시장에서 이용자 보호 규약은 더욱 까다롭죠. 모든 텍스트와 위치 메시지에 엔드투엔드 암호화를 적용했고, 글로벌 정보보안 회사인 그레이해쉬를 인수하는 등 보안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어요. 나아가 투명성 리포트를 통해 저희 활동들을 외부에서 감시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외부 전문 인증기관으로부터 보안성 인증 획득도 다양하게 해 나가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서비스들이 활성화 되면서 라인도 큰 수혜를 입었다. 대면 접촉이 줄면서 온라인 소통이 늘었고, 주문 음식 뿐 아니라 콘텐츠 소비 또한 급증했기 때문이다. 라인의 경우 글로벌 시장에서 쇼핑, 여행, TV, 영상통화 등 거의 전 부문에서 고른 성장을 보였다. 소상공인들에게는 고객들과의 온라인 접점을 찾는데 힘을 보탰다.
“소상공인들에게 공식 계정을 통해 무료 영상 통화가 가능하도록 지원하고, 예약에 있어 클로바를 통한 AI콜을 제공함으로써 다양한 지원 혜택들을 늘렸어요. 뉴스나 콘텐츠 소비도 많이 증가했는데 대만이나 태국에서는 TV 서비스도 큰 성과를 거뒀어요. 일본에서 데마에칸이라는 배달 회사를 인수했는데, 이 역시 우상향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작년 대비 올 8월 기준 활성 이용자가 131% 가량 증가했어요. 라인 영상통화의 경우 2월 이후 점점 사용량이 증가해 5월에는 235%나 뛰기도 했고요.”
라인은 최근 금융 서비스에도 힘을 쏟고 있다. 결제는 물론 은행 업무를 대신하는 역할까지 사업을 확장하는 것이다. 나아가 블록체인 사업에도 여전히 적극적인 모습이다. 앞서 언급했듯 라인에서 모든 생활이 안전하게 가능하도록 만든다는 전략 하에서 이뤄지고 있다.
“이용자들이 필요한 모든 것을 라인에 구현하자는 비전인데, 그 중 제일 어려운 게 사실 금융이에요. 선진국의 경우 관습을 바꾸는 게 더 힘들거든요. 유럽이나 일본을 보면 답답할 때가 있어요. 그래도 누군가는 개선해야 하는데, 저희가 이것을 개선해 보려는 거죠. 라인 페이를 통해 결제 방식을 편하게 바꾸고, 얼마 전 태국에서 오픈한 은행 서비스를 통해 대출 등의 은행 업무를 편리하게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라인은 사용자 친화적인 서비스예요. 화면 구성부터 기능 하나까지 기존 금융권이 할 수 없는 것들을 저희는 할 수 있습니다. 라인 내에 다양한 서비스가 있는 만큼 이용자 데이터도 풍부하고, 함께 연동해서 시너지 낼 수 있는 부분이 엄청나죠. 이용자 동의 하에 이용자들에게 꼭 필요한 서비스를 타깃팅 해서 제공할 수 있습니다. 블록체인의 경우 아직 이용자들이 직접 사용할 수 있는 큰 서비스 성공 사례가 없기 때문에 체감하기 어렵겠지만 블록체인 기술의 핵심인 신뢰성 담보라는 측면에서 계속 투자할 예정입니다.”
"선택과 집중으로 이용자 모든 일상 빠르게 잡겠다"
앞으로 라인의 비전을 끝으로 인터뷰를 마무리 했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사업의 불확실성이 커졌지만, 박의빈 CTO는 자신감에 넘쳤다. 이용자들이 일상에서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빠르게 구현해 내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전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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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이 이용자의 모든 일상을 잡겠다는 게 저희의 비전이라고 했잖아요. 팬데믹을 겪으면서 이 방향이 확실히 맞았다는 걸 느꼈어요. 이용자가 필요로 하는 인프라에 더 빠르게 다가갔으면 더 좋은 기회를 잡았을 텐데 아쉬움도 들었죠. 어떻게 하면 더 빠르고 공격적으로 이용자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구현할까, 속도를 내기 위해 어떤 것들을 할 수 있을까가 고민이에요. 일본 야후와의 합병과 선택과 집중 전략을 통해 더 성장해 나갈 라인을 기대하고 응원해주세요.”
라인은 글로벌 개발자들을 위한 연례 컨퍼런스 행사인 ‘라인 데브데이 2020’를 개최 중이다. 27일까지 진행되는 이번 컨퍼런스는 코로나19로 온라인으로만 참석이 가능하며, 약 7천명의 신청자들이 몰렸다. 라인은 이번 행사에서 다양한 주제의 세션을 150개 이상 마련했으며, 기술적 깊이가 있는 강연뿐 아니라 참가자들이 지루하지 않게 가볍게 들을 수 있는 강연 등도 준비했다. 또 역대 최대 게스트 스피커를 초청해 유익함을 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