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러닝이 AI의 전부가 아니다. 다양한 AI 분야에서 우리가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분야를 선택해 집중적으로 육성해야한다.”
20일 서울 중구 밀레니엄힐튼호텔에서 열린 '제2회 과학기술미래포럼'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국내 AI 경쟁력 강화를 위한 방안으로 ‘선택과 집중’이 필수라고 입을 모았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배경에는 우리나라의 AI 기술력이 글로벌 선진국에 비해 한 발 뒤처져 있다는 위기의식이 자리잡고 있다. AI 시장을 주도하는 국가는 미국이다. 미국은 기술과 생태계 측면에서 가장 앞서고 있다. 미국의 뒤를 이어 중국은 기업 창업 생태계를 앞세워 선두를 바짝 뒤쫓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공공데이터 분야를 제외한 플랫폼 기술·논문 점유율·기업활동 등 면에서 경쟁력이 부족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문제는 AI 분야에서는 선두 국가가 모든 시장을 독차지하는 ‘승자독식’ 구도가 두드러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날 발표를 맡은 이현규 IITP 인공지능사업단장은 “글로벌 AI 시장은 데이터양에 따라 승패가 좌우되다 보니 승자독식에 따른 양극화 문제가 심화되고 있다”며 “우리는 미국 중국에 비해 데이터양이 많을 수 없는 만큼, 적절한 데이터를 사용해서 또 다른 알고리즘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고 말했다.
■ 성과 낼 수 있는 분야 집중해 성공사례 만들어야
전문가들은 최근 AI 연구 분야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딥러닝에 대해 ‘단점이 분명한 기술’이라고 전제했다. 많은 데이터를 입력할수록 정확한 출력값이 나오는 기술이라는 점에서. 경쟁력 강화를 위해 대규모 데이터와 막대한 컴퓨팅 자원이 필수라는 설명이다.
AI에 투입할 수 있는 자원이 한정적인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거대한 규모로 투자를 이어가는 미국·중국을 따라잡기 어렵다. 이 때문에 딥러닝이 아닌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아 AI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조성배 연세대 교수는 “미국이나 중국은 대규모 자원을 투입할 여력을 가진 만큼 문제가 없지만, 우리는 입장이 다르다”며 “가령 우리가 AI에 1조원을 투입한다 해도 모든 AI 분야에서 메이저로 성장하기는 어려운 만큼, 해야만 하고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선택해 위험부담을 감수하고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AI 경쟁력 강화를 위해 차근차근 성공사례를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강상기 한양대 AI솔루션센터 센터장은 “성과를 낼 수 있는 AI 분야에 우선 집중해서 성공사례를 하나씩 만들고,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는 것이 우선”이라며 “우리나라가 보유한 강점을 명확히 이해하고 이를 극대화 할 수 있는 AI 분야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 턱없이 부족한 AI 인재…어떻게 키울까
전문가들은 국가 AI 경쟁력 강화를 위해 역량 있는 인재의 확보가 우선돼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강조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AI 전문인력 규모는 주요국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이에 정부는 AI 인재 1만명을 양성하겠다는 계획을 내놓기도 했다.
김성훈 홍콩과기대 교수는 우리나라가 AI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기본적인 인프라가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성훈 교수는 “우리나라의 AI 인재의 능력은 뛰어나지만, 실질적인 측면에서 잡무가 많고 금전적인 보상이 부족해서 연구에 집중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국내에서 개최하는 챌린지는 단순 이벤트성이 다수인 만큼, 상시적인 협의체를 만들어서 글로벌 연구자가 모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성과를 내는 대규모 연구실에 연구비를 집중적으로 지원하고 글로벌 인재를 유치하기 위한 노력도 병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성훈 교수는 “연구비를 100곳의 작은 연구실에 나눠주기보다 실질적인 성과를 낼 수 있는 1~2개 연구소에 집중하는 것도 검토할 수 있다”며 “글로벌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국내 취업 비자 발급 등 현실적인 제도 개선도 병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인재 양성에 시너지를 내기 위해 ‘AI 교육 허브’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조성배 연세대 교수는 “국내 AI 전문 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 연구기관이 각각 흩어져 있는데 AI 교육 허브를 조성한다면 이들 간 시너지를 낼 수 있다”며 “현재 전국 8곳에 구축된 AI 대학원이 협업할 수 있도록 AI 대학원 협의체를 만드는 것도 자원의 낭비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AI 연구에 걸림돌…“GPU 활용 지원해야”
국내 AI 연구를 활성화하기 위해 정부가 GPU를 지원할 필요가 있다는 요청도 나왔다. 구글 등 글로벌 IT 기업은 AI 기술개발에 개인당 2천여 개의 GPU를 지원하는 반면, 국내 연구진은 개인당 1~2개의 GPU만을 활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다.
강상기 한양대 AI 솔루션센터 센터장은 “우리나라는 대부분 대학에서 AI가 연구되는데, 한정적인 GPU 자원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며 “경쟁력 있은 AI 연구를 위해 GPU를 마음껏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네이버의 AI 서비스인 클로바를 개발했던 김성훈 홍콩과기대 교수는 “과거 네이버에서 카이스트에 80개 정도의 GPU를 지원한 결과, 한 학기 만에 AI 경쟁력이 높아진 사례가 있었다”며 “AI를 하려고 해도 GPU의 한계가 있는 만큼, 연구자가 무제한으로 GPU를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하고, 실제로 그런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최기영 장관 “AI 정책 고민…연구→사업화에 노력해 달라”
이날 포럼에 토론까지 참여한 최기영 과기정통부 장관은 AI 경쟁력 강화 방안에 대해 국내 전문가들의 의견을 주의 깊게 청취했다. 실제로 이날 포럼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12시까지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최기영 장관의 요청에 따라 오후 1시까지 이어졌다.
최 장관은 이날 학계의 목소리를 반영해 AI 정책을 고민하겠다고 밝혔다. 최 장관은 “출연연인 ETRI가 국내 AI 산업의 콘트롤 타워 역할을 해나가는 한편, 다른 출연연과 함께 AI 교육 연구 허브 조성을 고민할 것”이라며 “GPU 활용 문제에 대해서는 광주 AI 클러스터 등을 활용해 민간 기업이 컴퓨팅 자원을 지원받을 수 있도록 고민을 이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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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의 핵심인 데이터와 관련해서는 데이터 댐을 통해 많은 부분 개선이 이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 장관은 “데이터 댐을 통해 많은 데이터를 모으고 있고, 네이버 등도 데이터를 지원하기로 한 만큼 달라지는 변화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특히 데이터 3법을 통해 공개가 가능해진 공공데이터 분야에서 의료·금융 등 좋은 데이터가 많이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학계에서 연구된 AI 기술이 사업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는 당부의 말도 덧붙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연구소나 대학에서 거둔 성과가 사업화로 이어지는 경우가 적다는 지적에 대한 답변이다. 최 장관은 “이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연구소·대학과 산업 사이 데이터 중계 연구를 활성화할 것”이라며 “연구 성과가 사업화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단순 연구와 논문에 그칠 게 아니라, 기업이 직접 쓸 수 있도록 한 걸음 더 나아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