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여전히 뜨거운 소셜 플랫폼 책임공방

데스크 칼럼입력 :2020/11/18 15:50    수정: 2020/11/18 18:59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결국 당신이 최종 편집자 아니냐?”

17일(현지시간) 열린 미국 상원에서 한 의원이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에게 던진 질문입니다.

이 질문을 한 것은 린지 그레이엄 공화당 의원입니다. 공화당 의원 중 상당수는 그레이엄 의원과 비슷한 불만을 갖고 있습니다. 페이스북 같은 소셜 플랫폼들의 ‘좌편향’이 심각하다는 강한 피해 의식을 갖고 있는 겁니다.

이들의 불만은 미국 대통령 선거전을 통해 더 극대화됐습니다. 특히 뉴욕포스트 기사 유통 때문에 공화당의 불만은 극에 달했습니다. 

뉴욕포스트는 지난 10월 충격적인 기사를 게재합니다. 조 바이든의 아들이 우크라이나 기업인을 만났다는 내용입니다. 바이든이 부통령 재직 당시 우크라이나 기업에 특혜를 줬다는 의혹을 제기하는 기사였습니다. 사실일 경우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수도 있습니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 (사진=씨넷)

하지만 기사의 신뢰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습니다. 결국 페이스북과 트위터는 해당 기사 유통을 막았습니다. 사흘 만에 다시 풀긴 했지만 모처럼 호재를 잡은 공화당 측은 대놓고 불만을 터뜨렸습니다. 

‘브레이킹 더 뉴스: 검열, 억압, 그리고 2020년 선거’란 제목이 붙은 이번 청문회가 열린 것도 이런 불만 때문이었습니다. 공화당 내부에선 대통령 선거 전부터 페이스북과 트위터 두 소셜 플랫폼의 최고경영자(CEO)를 불러서 청문회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소셜 플랫폼, 발행자일까 단순 유포자일까 

이런 특수한 사정이 작용하긴 했지만, 이날 청문회에선 소셜 플랫폼을 둘러싼 쟁점이 모두 거론됐습니다.

쟁점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소셜 플랫폼은 발행자인가, 아니면 단순 유포자인가.

둘째. 소셜 플랫폼에서 유포되는 허위정보에 대해 어디까지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하나.

“당신이 최종 편집자 아니냐”는 그레이엄 의원 질문엔 공화당의 속내가 그대로 들어 있습니다. 사실상 편집자 역할을 하면서도, 그에 적합한 책임은 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와 잭 도시 트위터 CEO 생각은 다릅니다. 자신들은 콘텐츠를 직접 생산하진 않기 때문에 발행자로 간주해선 안 된다는 겁니다. 잭 도시는 이용자들이 볼 콘텐츠를 결정하는 건 ‘알고리즘’이란 말을 되풀이했습니다.

이 문제는 두 번째 쟁점과 그대로 연결됩니다. 발행자로 보느냐, 단순 유포자로 보느냐에 따라 책임 범위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사진=미국 전자프론티어재단)

페이스북 같은 소셜 미디어들은 그 동안 플랫폼에서 유통되는 콘텐츠에 대해선 책임을 지지 않았습니다. 1996년 제정된 통신품위법 230조 덕분입니다. 이 규정은 포털이나 플랫폼 사업자들이 소송 당할 걱정 없이 사업을 할 수 있는 방패 역할을 해줬습니다.

선거에서 패배한 공화당 의원들은 ‘통신품위법 230조’를 폐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소셜 플랫폼들이 이 규정을 방패 삼아 ‘좌편향 편집’을 마구 자행하고 있다는 시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민주당이 ‘통신품위법 230조’가 보장한 플랫폼 사업자의 면책특권을 곱게 보고 있는 건 아닙니다. 그 규정 때문에 페이스북 같은 소셜 플랫폼 사업자들이 적절한 책임을 수행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문제가 됐던 뉴욕포스트 기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입장입니다. 공화당 쪽은 ‘유통을 제어’한 편집 행위를 문제 삼습니다. 반면 민주당은 ‘허위정보 유통을 방치’하면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입장입니다.

지금 분위기로는 소셜 플랫폼 사업자의 면책 조항은 어떤 행태로든 수정될 것 같습니다. 공화당 주장처럼 ‘완전 폐지’로 가진 않더라도, 좀 더 강한 책임을 부여하는 쪽으로 바뀔 가능성이 많아 보입니다.

마크 저커버그, 잭 도시 등 두 소셜 플랫폼 CEO들도 1996년 제정된 통신품위법 230조를 보완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습니다. 다만 이들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수정해야 할지에 대해선 입을 꾹 닫고 있습니다.

저커버그의 흥미로운 발언…"투명성 보고서 의무화하자"

그런데 이날 청문회에서 저커버그가 흥미로운 발언을 했습니다. 미국의 신생 IT 매체 프로토콜이 그 소식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저커버그는 “의회가 콘텐츠 모더레이션 투명성 표준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저커버그의 생각은 간단합니다. 소셜 플랫폼들이 주기적으로 투명성 보고서를 내도록 의무화하자는 겁니다. 그렇게 하면 여러 회사들이 콘텐츠 모더레이션을 어떤 방식으로 처리하는 지 비교해볼 수 있지 않냐는 겁니다.

‘통신품위법 230조’는 어떤 형태로든 손을 볼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렇게 되면 소셜 플랫폼들도 예전 같은 ‘무한 자유’를 누리긴 힘든 상황입니다. 저커버그가 ‘투명성 보고서 발행 의무화’ 제안을 한 건 이런 상황 인식에서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

한 때 뉴스 앵커들이 미국 여론을 주도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시절엔 월터 크롱카이트 같은 스타 앵커들이 여론 주도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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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젠 소셜 플랫폼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얼굴 없는 알고리즘이 여론 생성의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게 우리가 살고 있는 인공지능 시대의 현주소입니다.

플랫폼 책임성과 알고리즘 투명성은 미국 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미국의 통신품위법 230조 공방에 유난히 많은 관심을 갖게 되는 건 그 때문일 겁니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