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바이든 정책 시나리오 '촉각'…투자 변화는

대중(對中) 강경기조 유지…반도체·폰 제한적 영향 속 일부 투자 우려

디지털경제입력 :2020/11/12 07:30

전자사업계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정책 시나리오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외교에 있어서 트럼프 대통령와 비교해서는 일부 완화될 것으로 점쳐지지만, 자국중심주의 기조를 유지하면서 대중(對中) 정책으로 기술패권 경쟁을 이어갈 전망이다. 국내 기업들의 반도체, 스마트폰 등 사업과 투자 기조 등에 올 변화에 관심이 모아진다. 

11일 재계와 부품업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대기업들은 새 미국 대통령 체제로 당분간 혼란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 큰 틀에서 준비 태세에 들어갔다. 4대 그룹 한 관계자는 "아직 본격화되지 않은 정책에 대해 세세하게 대책을 마련하기에는 어렵지만, 예상되는 반(反) 대기업 정책과 자국중심 등 큰 틀에서 준비가 가능한 부분을 보고 있다"며 "현 단계에서는 단기적·장기적 관점으로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는 바이든 당선인이 동맹과 다자주의 중요성을 잘 인지하고 있는 인물이지만, 미국-중국 견제구도 아래 '트럼피즘'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바이든은 2016년 민주당 정강정책에서 중국을 7번 언급, 2020년에는 22번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처럼 관세 인상과 제재를 직접 가하는 방식 대신 동맹국과 체계적인 접근을 할 전망이다. 이에 한국이 한발 뒤로 물러서있기 어렵지 않겠냐는 분석도 나온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사진=뉴시스)

안호영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전 주미대사)는 "바이든은 체계적인 대중 통상정책을 펼칠 것이기 때문에 우리 입장에서 선택의 폭이 좁아질 수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독단적으로 대중정책을 폈다면, 바이든 후보는 동맹국의 피해까지 고려한 구상을 하고 이를 동맹국에 제안하면 한국은 대응하기 힘든 입장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바이든은 트럼프와 비교해 불필요한 마찰을 줄이자는 주의인 만큼, 반중(反中) 정책을 완화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바이든은 2015년 "우리는 중국이 성장하는 것을 보고 싶다", 2020년 1월에는 "우리가 중국을 도와야 한다"고 발언한 바 있다. 유진투자증권은 "바이든이 과거 친중 면모를 보인 만큼 바이든 당선시 미국과 중국 간 관계가 가까워질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반도체와 스마트폰 업계는 바이든 체제가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 당장 대중 제재가 기존과 크게 달라지지 않을 전망이기 때문이다. 바이든은 대선 캐치프레이즈로 '바이 아메리칸'을 내세웠다. 바이든은 연방 정부에 향후 4년간 4천억달러 규모 미국산 제품과 서비스를 구매하도록 하고, 이에 따른 신규 일자리 창출을 기대하고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바이든의 '바이 아메리칸'은 트럼프의 '아메리카 퍼스트'와 큰 차이가 없어보인다. 이 가운데 화웨이 제재라는 한 나라의 정책이 갑자기 바뀌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대중 제재 기조가 달라지지 않는다면 반도체 업계에 미치는 영향도 기존과 비교해 제한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기업들이 화웨이와 거래를 위해서 미국 기술과 장비가 사용된 반도체와 부품에 대해 미국 정부의 사전 승인을 받도록 했다. 이에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삼성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 등 기업은 지난 9월 화웨이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패널 공급을 중단했다. 이중 삼성디스플레이가 일부 모바일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에 대해 수출 라이선스를 받았다. 중국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 업체 SMIC도 미국의 거래 제한 기업 리스트에 포함됐다. 

사진=뉴시스

미국의 대중 제재에 따라 국내 반도체와 스마트폰 업계는 반사이익과 우려를 동시에 전망해 왔다. 최근에는 전자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유진투자증권은 "바이든 당선에도 미국의 중국에 대한 압박이 약화될 가능성이 높지 않다"며 "국내 반도체, 스마트폰 분야는 '플러스'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반도체 업체의 경우 화웨이를 주요 고객사로 두고 있어 4분기부터 매출 공백이 생기게 됐다. 가트너에 따르면, 지난해 화웨이 반도체 구매액은 208억달러로 애플(361억달러)과 삼성전자(334억달러)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주요 고객군이기도 하다. 증권가에 따르면, 지난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화웨이 매출 비중은 각각 3.2%와 11.4%로 추산됐다. 

하지만 화웨이 스마트폰의 빈자리를 오포, 비보, 샤오미 등 다른 중국 제조사들이 대체하면서 이같은 타격을 일부 상쇄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 언론 36kr에 따르면 이들 업체는 최근 스마트폰 부품 주문량을 최소 10% 이상 늘렸다. 내년에는 각각 연간 스마트폰 생산량 2억대를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는 화웨이를 최대 경쟁사로 두고 있었던 만큼, 중국 외 스마트폰 시장에서 반사수혜가 기대되고 있다. 화웨이가 3분기까지 집중 비축했던 부품 재고가 떨어지면 점유율 감소가 불가피하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화웨이 판매량은 9월 중순 이후 미국 무역 제재가 강화되면서 하락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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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의 투자 기조에는 간접적인 영향이 예상되고 있다. 바이든은 미국 공급망 강화를 위한 공약으로 연방정부가 직접 4년간 7천억달러 재정 투입을 밝혔다. 또 빅 테크기업에 대한 반독점 규제가 강화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국내 기업 투자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삼성전자 등 기업들은 일단 "시황에 따라 투자를 이어간다는 기조에 변함이 없다"는 입장이다. 

재계 관계자는 "미국 민주당에서 빅테크 기업들에 대한 독점 규제에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만큼, 이에 반도체 경기에도 간접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투자가 지연되는 등 우려는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