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법원은 넷플릭스에도 면죄부를 줄 것인가

기자수첩입력 :2020/10/29 17:24

‘자유와 책임(Freedom & Responsibility)’. 넷플릭스의 대표적인 기업문화로 꼽힌다. 넷플릭스를 창업하고, 현 최고경영자인 리드 헤이스팅스가 저술한 책 ‘규칙 없음(No Rules Rules)’에서도 말단 직원부터 대표까지 자유롭게 결정하고 업무를 진행하는 사내 분위기가 많이 표현돼 있다.

세계 최대 동영상 스트리밍 회사로 성장한 비결로 특별한 규칙 없이, 자유와 함께 그에 맞는 수준의 책임도 부여하는 식이다. 넷플릭스를 대표하는 키워드로 자유와 책임을 이야기 하지만, 국내에서 사업 방식은 어떤 자유와 어떤 책임을 갖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먼저 콘텐츠 생태계 측면에서 보면, 유례없는 규모를 내세운 제작 투자로 시장에 새로운 활기를 넣고 있는 점은 분명하다. 반면 네트워크 산업 생태계 측면에서 보면 협상 우위의 힘만 내세우면서 시민단체의 비판 성명에 이어 최근 국회에서는 ‘갑질’ 지적까지 듣고 있다.

콘텐츠 사업자(CP)와 인터넷서비스사업자(ISP) 사이의 망 이용대가 문제는 항상 논쟁을 불러일으키지만 넷플릭스의 경우에는 특별하다. 시민단체가 꼼수라 일컫고 국회서 갑질 비판이 쏟아지는 충분한 이유가 보이기 때문이다.

넷플릭스는 SK브로드밴드와 법적 공방을 시작한다. 30일 SK브로드밴드에 망 이용대가를 낼 이유가 없다고 제기한 소송의 첫 변론이 예정돼 있다.

소송을 제기하기 전까지는 회사 간 분쟁을 정부가 중재하는 재정 절차에 참여했다. 양측의 입장을 들은 정부의 중재안이 나올 즈음에 수개월의 행정절차를 무시하고 돌연 법정으로 향했다. 중재 방향이 불리할 것 같으니 김앤장과 같은 대형 로펌을 내세워 법원의 판단으로 싸움의 무대를 바꾸겠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넷플릭스는 망 이용대가를 내야할 이유도 없고 세계 어디에서도 망 이용대가를 내지 않는다는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또 통신망에 가해지는 트래픽 관리 제어는 자신들이 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선을 긋고 있다. 국회에서는 증언 위증에 따른 고발의 여지가 있으니 “한국 ISP가 요구하는 형태의 망 이용대가는 납부하지 않는다”며 말을 살짝 바꾸면서 질책을 받기도 했다.

한국에서 주장과 달리 넷플릭스는 코로나19 펜데믹 상황에서 유럽연합의 요청에 따라 전송 트래픽을 4분의 1로 줄이면서 유럽 지역의 인터넷망 과부하를 막는 동시에 서비스 품질도 떨어지지 않았다고 자랑했다.

또 국내 ISP가 법으로 특정 인터넷 서비스를 차단하지 못하는 반면 미국과 유럽에서 서비스 차단 우려가 생기면 망 이용대가 협상에 성실히 응했다. 자사 서비스의 최소 품질을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 넷플릭스는 그런 적이 없다고 하지만 최근 미국 법원에서도 넷플릭스의 망 이용대가 납부 사실을 확인시켰다.

넷플릭스의 국내 법적 다툼은 이번 민사소송 1건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 승소 여부에 따라 항소가 이어지고, 또 이용대가에 대한 반대 소송도 진행될 예정이다. 이 모든 과정이 회사의 협상전략으로 자유에 해당하기 때문에 막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 자유에 걸맞는 책임을 스스로지지 않겠다면 법원의 판단을 기대해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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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최근 법원의 디지털 플랫폼이라는 새로운 질서에 대한 판결을 보면 우려가 큰 것이 사실이다. 페이스북과 방송통신위원회의 행정소송에서는 이용자 피해를 일으켰지만 책임 소재를 물을 수 없다며 국내 SNS 이용자를 구제할 수 없는 피해자로 만들었다.

페이스북과 같이 넷플릭스도 국내 ISP와 글로벌 CP 간 망 이용대가 협상에서 일어난 일이다. SNS에서 OTT라는 새로운 서비스를 두고도 법원이 디지털 플랫폼에 대한 다른 시각의 판결을 내린다면 책임을 물어야 할 곳에 다시 한 번 면죄부를 주게 된다. 그 면죄부는 한국에서만 통하는 면죄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