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LA다저스 우승 이끈 '앤드류 프리드먼의 혁신'

가치 투자와 혁신, 32년만에 우승 결실

데스크 칼럼입력 :2020/10/28 15:17    수정: 2020/10/30 12:34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1년 중 가장 슬픈 날은 야구가 끝나는 날이다.”

야구팬들은 누구나 공감하는 이 말을 한 사람은 토미 라소다 전 LA다저스 감독이다. 라소다는 대학생이던 박찬호 선수를 스카우트해 메이저리그 특급 투수로 키워낸 인물이기도 하다.

2020년 미국 야구팬에게 가장 슬픈 날은 10월 27일(현지시간)이었다. 하지만 LA다저스는 이 날을 ‘가장 기쁜 날’로 만들면서 화려하게 시즌을 마무리했다. 1988년 이후 무려 32년 만에 월드시리즈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한국팬 중에선 다저스의 우승이 그리 달갑지 않은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 같다. 지난 해까지 류현진 선수가 몸 담았던 팀이기 때문이다. 류 선수가 떠나자마자 우승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씁쓸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꽤 볼 수 있었다. 게다가 상대팀인 탬파베이엔 최지만 선수가 뛰고 있다.

앤드류 프리드먼이 2011년 탬파베이 단장으로 재직하던 모습. (사진=위키피디아)

하지만 LA 다저스는 우승할만한 팀이다. 다저스의 우승은 투자와 혁신의 행복한 결실이란 점에서 IT업계에서도 배울 점이 적지 않다.

잘 아는대로 LA 다저스 혁신을 주도한 것은 앤드류 프리드먼 야구부문 사장이다. 프리드먼은 월드시리즈 상대인 탬파베이에서 오랜 기간 단장으로 재직하면서 ‘저비용 고효율 경영’의 본을 보여줬던 인물이다.

비효율 조직 대명사였던 다저스에 빠르게 효율경영 접목 

프리드먼은 2014년 시즌이 끝난 뒤 LA다저스 야구단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더 정확하게는, ‘고비용 저효율 경영’에 위기 의식을 느꼈던 다저스 팀이 귀하게 모셔왔다. 결국 프리드먼은 부임 6년 만에 팀에 월드시리즈 트로피를 안겨줬다.

IT 기자가 왠 야구 칼럼이냐고 핀잔하실 분이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프리드먼이 LA 다저스를 개혁하는 과정은 그 어느 IT 기업의 혁신 못지 않게 흥미롭다.

프리드먼 부임 당시 다저스는 ‘돈 많이 쓰고도 성적을 못 내는’ 대표적인 팀이었다. 그 무렵 다저스는 비싼 돈 들여 스타급 선수들을 무차별 영입해 놓은 상태였다.

당시 다저스엔 외야수 안드레 이디어, 칼 크로포드, 맷 캠프 등이 몸담고 있었다. 이름 값으론 어느 선수에도 뒤지지 않았다. 문제는 효율성이었다. 내야엔 유격수 헨리 라미레스가 버티고 있었다. 타격은 뛰어났지만, 수비에 일부 문제가 지적됐던 선수였다. 게다가 몸값이 너무 비쌌다. 

그러다보니 포지션 중복과 예산 낭비란 두 가지 함정에 빠져 있었다.

LA다저스 홈 구장인 다저스타디움.

그 무렵 다저스는 우승 조급증에 걸려 있었다. 찬찬히 따져보고 인재를 영입하기 보다는, 그냥 잘 하는 선수들을 마구 끌어 모았다. 그 결과 팀워크 뿐 아니라 효율성 면에서도 최악의 상황이었다. 과정과 결과 모두 낙제점에 가까웠다.

프리드먼은 이런 다저스를 빠르게 혁신했다. 무엇보다 ‘이름값’ 대신 ‘필요한 인재’를 영입하는 데 주력했다. 이런 의사 결정 역시 그냥 감에 의존하지 않았다. 데이터 분석을 토대로 팀에 꼭 필요한 선수들을 싼 가격에 영입했다. 팀을 만드는 과정에서 효율과 가치투자란 두 가지 덕목을 잘 조화시켰다.

부임 당시 클레이튼 커쇼, 코디 벨린저, 코리 시거 같은 뛰어난 프랜차이즈 선수들을 물려 받았던 프리드먼은 이후 크리스 테일러, 맥스 먼시 같은 '숨은 진주’들을 싼값으로 영입했다. 워커 뷸러, 윌 스미스 같은 주축 투포수를 드래프트로 영입했다.

테일러는 여러 포지션을 소화하면서 알토란 같은 활약을 해줬으며, 먼시는 다저스의 4번 타자로 성장했다.

효율적 인재 영입의 대표 사례는 저스틴 터너다. 다저스의 3루를 든든하게 지킨 터너는 뉴욕 메츠에서 방출됐던 선수였다. 여러 팀을 전전하던 전형적인 '저니맨'이었다.  

다저스는 이런 터너를 싼 가격에 잡았다. 그리곤 화려하게 부활시키면서 리그를 대표하는 해결사로 키워냈다. 

2년 연속 실패로 좌절할 때도 '원칙' 굳게 지켜 

프리드먼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2017년과 2018년 2번 연속 월드시리즈에서 실패한 것. 그리고 지난 해엔 리그 디비전 시리즈에서 일찌감치 탈락하면서 부자 구단을 경영하기엔 2%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상황은 조금 다르다. 다저스는 2017년과 2018년 저스틴 벌랜더를 비롯한 특급 선수를 영입할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반대급부가 너무 컸다. 상대 팀이 다저스의 미래로 꼽히던 특급 유망주를 원한 때문이었다.

한 번의 우승보다는 ‘지속 가능한 왕조’를 구축하는 게 중요했던 프리드먼은 달콤한 유혹을 뿌리쳤다. 이런 인내심의 대가는 컸다. '부자 구단엔 어울리지 않는 경영자'란 비판이 쏟아졌다.  

이런 비난 속에서도 원칙을 고수했다. 그리고 올해초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무키 베츠를 영입하면서 그 동안의 비난을 씻어낼 수 있었다. 만년 우승후보 다저스에게 무키 베츠는 ‘화룡점정’ 같은 존재였다.

프리드먼이 무키 베츠를 영입한 과정은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뛰어난 선수를 확보하는’ 모범이나 다름 없었다. 협상 상대였던 보스턴 레드삭스가 팀을 재정비하고, 연봉 총액을 낮춰야 하는 상황을 잘 활용해 ‘미래를 퍼주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면서도 꼭 필요한 인재를 영입하는 데 성공했다.

월드시리즈가 열린 글로브 라이트 필드. (사진=알링턴)

무키 베츠는 포스트 시즌 내내 경기 흐름을 바꾸는 뛰어난 수비로 투자가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잘 보여줬다. 이날 월드시리즈 6차전에선 빠른 발로 결승 득점을 올린데 이어 우승을 확정 짓는 솔로 홈런을 날렸다.

애널리스트 출신인 앤드류 프리드먼은 실리콘밸리와 월가를 지배하는 ‘가치 투자’와 ‘혁신’이란 두 가지 가치를 야구단에 성공적으로 접목했다. 첫 결실은 8년 연속 리그 우승이었다. 

하지만 월드시리즈 우승은 이뤄내지 못하면서 여전히 '2% 부족'을 느꼈다. 이제 마지막 과제까지 성공시키면서 그 간의 아쉬움을 모두 씻어내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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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하던 팀도 아닌 다저스의 우승에 내가 유난히 관심을 갖는 건 순전히 프리드먼의 혁신 때문이다. 게다가 다저스의 혁신과 조직 관리에서 배울 부분이 적지 않다. 기회가 된다면 첨단 기술을 활용한 다저스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에 대한 글도 한번 써보려고 한다. 

현재와 미래를 함께 잡은 다저스의 우승에 다시 한번 축하를 보낸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