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을 글로벌 초일류 기업 반열에 올려놓은 이건희 회장이 어제(25일) 타계하면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향후 역할론에 세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부회장은 2014년 부친의 와병 이후 6년여간 실질적으로 경영을 이끌어 왔지만, 스승과도 같았던 부친을 떠나보내고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는 점에서 어깨가 더욱 무거워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부회장을 둘러싼 사법 리스크는 향후 삼성을 안정적으로 경영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로 남아있다.
2016년 국정농단 사건 뇌물혐의로 시작된 재판은 4년이 되도록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여기에 삼성 경영권 불법승계 의혹 재판이 이제 막 시작되면서 또다시 기약 없는 수년간의 시간을 쏟아부어야 할 처지다. 두 개 재판이 번갈아가며 이어질 수도 있다.
■ '국정농단 사건' 재판만 4년…뇌물공여액 쟁점
당장 이 부회장이 상주로서 故 이건희 회장 장례절차에 참석하고 있는 오늘(26일) 오후부터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이 열린다. 서울고법 형사1부(정준영·송영승·강상욱 부장판사)는 이날 오후 2시5분 이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공판준비기일을 진행한다. 지난 1월 공판기일 이후 9개월 만에 재개되는 것이다.
당장 부친 빈소를 지켜야 하는 이 부회장은 이날 재판에 출석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재판부는 이례적으로 이 부회장에게 소환장을 발송했다. 공판준비기일은 정식 재판을 시작하기 앞서 공소사실에 대한 피고인의 입장을 확인하고 향후 입증 계획을 논의하는 자리로 피고인이 출석할 의무는 없다.
이 부회장은 2017년 1심에서 징역 5년의 실형을 받고 법정 구속됐다가 2018년 2심에서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받고 경영 일선에 복귀했다. 1심에서 인정된 89억원의 뇌물 공여 혐의액이 2심에서 36억원으로 감액되면서 형량이 줄어든 것이다. 재판부는 나머지 50억원은 '수동적 뇌물'로 간주해 무죄를 선고했다.
판세는 지난해 뒤집어졌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해 8월29일 원심을 깨고 서울고법으로 파기환송했다. 삼성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 실세 최순실 씨 딸에게 제공한 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금 16억원과 마필 구매비 34억원 등을 뇌물로 판단한 것이다.
이에 이 부회장의 뇌물 공여 혐의액은 기존 36억원에서 86억원으로 늘어나게 됐다. 해당 뇌물혐의가 인정되고 감경요소를 인정받지 못하면 실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액이 50억원 이상이면 무기 또는 5년 이상 징역형을 선고해야 한다.
앞서 특검은 이 부회장 파기환송심 재판을 심리 중인 서울고법 형사1부 재판장인 정준영 부장판사가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실효성 여부를 양형 감경 사유를 삼겠다는 데 반발해 법원에 기피 신청을 냈다. 서울고법 형사3부는 지난 4월 특검이 2월 낸 기피 신청을 기각했고,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재항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를 최종 기각했다.
재판부는 준법감시제도 실효성 평가를 위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주심 강일원 전 헌법재판관을 전문심리위원으로 지정했다. 이 부회장은 지난 5월 경영권 승계, 노동 등 준법 의제를 약속, 이행하고 있다.
삼성 준법위는 전날 "삼성의 바람직한 준법문화 정착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고인(이건희)이 우리에게 남긴 과제일 것"이라고 전했다.
■ '경영권 불법승계' 재판, 이제 시작…장기간 인사·경영 악재
지난 22일에는 이 부회장의 경영권 불법승계 의혹 사건 첫 공판준비기일이 열렸다. 다음 기일은 1월14일이다. 검찰은 앞서 이 부회장과 전·현직 삼성 임원 등 11명을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시세조종행위, 업무상 배임, 외부감사법 위반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과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변경이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치밀하게 계획된 지배구조 개편 작업의 일환으로 이뤄졌다고 본다.
삼성 경영진들은 이 부회장과 미래전략실 승계 계획안에 따라 회사와 주주 이익을 보호해야 할 의무를 위반했다고도 판단한다. 삼성 측은 삼성물산 합병이 ▲정부규제 준수 ▲불안한 경영권 안정 ▲사업상 시너지 효과 달성 등 경영상 필요에 의해 이뤄진 합법적인 경영활동이라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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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인 중에는 현직에 있는 임원들도 다수 포함돼 있다. 이에 삼성 연말 이사 시기도 사법 이슈에 따라 좌우될 전망이다. 통상적으로 12월 초에 진행돼 왔지만 지난해에는 이 부회장의 국정농단 재판으로 한 달 가량 미뤄졌다. 올해에는 경영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이보다 앞당기거나, 아예 늦춰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각종 재판과 수사들이 매듭 지어져야 결과에 따라 경영에 집중할 수 있는 기회를 얻거나 책임을 지게 되더라도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