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더미에서 일군 '애니콜 신화'…갤럭시로 혁신 이끌다

故 이건희 회장 품질 철학, 위기를 기회로…폴더블 혁신 선봉에 서다

홈&모바일입력 :2020/10/25 14:20    수정: 2020/10/25 15:00

1993년 신경영 선언 당시 이건희 회장 모습. (사진=삼성전자)
1993년 신경영 선언 당시 이건희 회장 모습. (사진=삼성전자)

"휴대폰 품질에 신경 쓰십시오. 고객이 두렵지 않습니까? 비싼 휴대폰, 고장 나면 누가 사겠습니까."

1995년 3월 9일. 삼성전자 구미사업장 운동장엔 거친 불길이 솟아올랐다. 2000여 명의 직원들이 모여 자신들이 만든 휴대폰을 비롯한 전자제품 15만대를 제 손으로 부수고, 불태웠다. 불량률이 많다는 이유로 이건희 회장이 화형식을 지시한 것. 당시 불태워진 15만대는 약 500억원에 달했다.

자신의 제품을 제 손으로 불태울 정도로 품질을 중요시한 삼성전자의 경영철학은 이후 삼성전자를 전 세계 스마트폰 1위, 휴대폰 1위 기업으로 만들었다.

고(故) 이건희 회장은 1993년 6월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이른바 신경영 선언을 한 이후, 삼성의 신수종 사업으로 휴대폰 사업을 찍었다.

당시 그는 "반드시 1명당 1대의 무선 단말기를 가지는 시대가 온다"며 "전화기를 중시해야 한다"고 예견했다.

삼성 애니콜 광고 캠페인. (사진=삼성전자)

삼성전자는 1994년 모토로라가 전 세계 휴대폰 시장을 제패한 당시 첫 휴대폰인 애니콜을 출시했다. 하지만 애니콜은 불량률이 11.8%에 달하며 시장에 외면을 받고, 결국 이건희 회장은 이른바 '애니콜 화형식'까지 진행하게 됐다. 애니콜 화형식은 '품질 혁신'을 일으키겠다는 삼성전자의 결단이자 외침이었다.

마침내 국내 무선전화기 시장에서 4위를 차지했던 삼성전자는 1995년 8월 애니콜로 모토로라를 제치고, 51.5%의 점유율로 국내 시장 점유율 1위 업체로 올라선다. 애니콜 신화가 시작된 것. 당시 모토로라는 유일하게 한국에서만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지 못했다.

삼성전자 최초 단일 모델로 1000만 대가 팔린 ‘SGH-T100’. (사진=삼성전자)

이후 삼성전자는 2002년 이 회장이 직접 제품 개발에 관여한 일명 '이건희 폰'인 'SCH-T100'으로 전 세계 1000만대 판매량을 처음 돌파하게 된다. 휴대폰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브랜드 입지를 굳히게 된 시점이다.

삼성전자는 새로운 스마트폰 시장에서 또 한 번의 고비를 겪게 된다. 2007년 애플이 첫 스마트폰인 아이폰을 내놓게 되고, 이후 피처폰에서 스마트폰으로 급격한 시장 변화가 일어난다.

갤럭시S. (사진=삼성전자)

삼성전자는 아이폰에 대항하기 위해 2008년 옴니아를 내놨지만, 시장 반응은 차가웠다. 하지만 2010년 자사의 첫 스마트폰인 '갤럭시S'가 2천500만대 이상이 팔리며 흥행에 성공하며, 2011년 스마트폰 세계 1위 자리에 올라서게 된다.

삼성전자 '갤럭시노트7' 코랄블루 색상 (사진=삼성전자)

삼성전자는 2016년 배터리 폭발문제로 갤럭시노트7 불량 문제에 또 한 번 위기를 맞는다. 이에 삼성전자는 그동안 생산한 250만대 전량 리콜을 결정한다. 리콜 비용은 1조원에서 1조 5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됐지만, 삼성전자는 전량 리콜을 통해 다시 한번 품질경영을 바로 잡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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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갤럭시Z폴드2, 갤럭시 Z 플립 5G. (사진=삼성전자)

이후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혁신의 선봉장 역할을 맡고 있다. 지난해 좌우로 접히는 갤럭시폴드를 출시하며, 새로운 폼팩터인 '접는 스마트폰'의 길을 앞장서 열고 있다. 

갤럭시폴드는 2019년 2월 출시 당시 품질 논란에 휩싸여 9월 재출시를 하기도 했지만, 올해 갤럭시Z플립, 갤럭시Z폴드2 등 후속작까지 출시하며 시장에서 폴더블폰의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