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LA다저스 vs 탬파베이' 월드시리즈가 기대되는 이유

'가치투자+혁신'과 야구의 행복한 만남

데스크 칼럼입력 :2020/10/20 16:23    수정: 2020/10/28 15:21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월가에서 잔뼈가 굵은 스튜어트 스턴버그는 2005년 흥미로운 투자를 단행한다. 미국 프로야구팀 탬파베이 데블레이스를 인수한 것이다. 골드만삭스에서 은퇴한 지 3년 만에 단행한 투자였다. 당시 탬파베이는 시즌 100패를 밥 먹듯 하던 만년 꼴찌 팀이었다.

탬파베이를 인수한 스턴버그는 골드만삭스 시절 동료였던 맷 실버맨을 사장으로 영입한다. 그리고 실버맨을 통해 베어 스턴스에서 투자자로 일하고 있던 앤드류 프리드먼을 꼬드기는 데 성공했다. 프리드먼은 만년 꼴찌팀 탬파베이의 단장직을 맡았다.

월가 3총사가 인수할 당시 탬파베이는 부끄러운 팀이었다. 올초 방영됐던 ‘스토브리그’의 드림즈와 비슷했다. 그 드라마에선 한 유망주 선수가 “드림즈에 지명됐다”는 소식을 듣고 “야구한 걸 후회한다”는 글을 올리는 장면이 나온다. 2005년 무렵 탬파베이 팀이 실제로 그랬다.

월드시리즈가 열리는 글로브 라이프 필드. (사진=알링턴)

하지만 ‘월가 3총사’는 만년 꼴찌 탬파베이를 빠르게 변신시킨다. 그들은 야구판의 상식과 전통을 과감하게 던져버렸다. 월가에서 사용했던 현대적 분석기법을 야구에 그대로 접목했다.

월가 애널리스트의 기본은 ‘가치 투자’다. 저렴할 때 매입한 뒤 최고 가격에 도달하기 직전에 파는 전략. 그들은 세이브메트릭스를 비롯한 각종 선진적인 분석 기법을 토대로 선수의 가치를 평가한 뒤 한 발 앞서 트레이드했다. 그 대신 ‘저평가 유망주’를 데려와 다시 가치를 높이는 방식으로 팀을 운영했다.

탬파베이, 가치투자 개념+상식 틀 깬 운영으로 조직 혁신 

그 무렵 미국 메이저리그에선 '머니볼'이 각광을 받았다. 머니볼은 오클랜드 팀 빌리 빈 단장의 혁신 전략을 일컫는 말이다. 

'머니볼'의 출발점은 “어떻게 하면 득점을 많이 할 수 있을까”란 질문이다. 그 해답으로 나온 것이 그 때까지 저평가됐던 '출루율 높은 타자'를 집중 매입하는 전략이었다. 오클랜드는 이런 전략을 통해 ‘적은 투자로 높은 효과’를 내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탬파베이를 이끌던 앤드류 프리드먼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머니볼 전략'엔 한 가지 치명적인 허점이 있다는 사실을 간파한 것. 출루율 높은 선수들은 대부분 발이 느리고 덩치가 큰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보니 수비에 문제가 생겼다. 

(사진=탬파베이 레이스 공식 트위터)

탬파베이의 성공 전략을 분석한 조나 케리의 '그들은 어떻게 뉴욕 양키스를 이겼을까’엔 이렇게 설명돼 있다.

"출루율이 높은 선수들만 찾다보면 수비는 소홀하게 취급되는 수준을 넘어 완전히 뒷전으로 밀려나게 된다. 거구의 애덤 던 같은 장타자들은 파워와 인내심의 조합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세이버메트릭스 계열에서는 거의 신적인 존재로 추앙받았다. 하지만 매년 40개의 홈런과 100개의 볼넷을 얻어낼 수 있는 능력에도 불구하고 던은 좁은 수비 범위와 빈약한 수비 본능 때문에 공격을 통해 얻은 가치의 많은 부분을 갉아 먹었다." (그들은 어떻게 뉴욕 양키스를 이겼을까, 200쪽)

탬파베이 3총사’는 가치 투자 정신을 바탕으로 한 효율 극대화에만 치중한 건 아니다. 월가 투자의 기본인 ‘위험 부담 최소화’도 중요한 팀 운영 방침이었다. 그 방안 중 하나가 선수와 장기 계약을 할 때는 ‘팀 옵션’을 꼭 넣었다. 가능하면 팀이 선택권을 갖기 위한 전략이었다.

타성처럼 굳이 있던 관행을 깨고, 남들이 그냥 지나치던 가치를 한발 앞서 포착했던 탬파베이의 전략은 성공했다. 그들은 3년 만인 2008년 월드시리즈 진출에 성공했다. 필라델피아에 패해 우승컵을 들어올리진 못했지만, 꼴찌팀의 변신은 많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 뒤에도 프리드먼은 탬파베이 팀의 단장으로 다양한 혁신을 주도했다. 뉴욕 양키스와 보스턴 레드삭스란 두 전통 강호가 버티고 있는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에서 꾸준한 강팀으로 군림했다.

LA다저스는 '혁신 아이콘 탬파베이'의 부잣집 버전  

앤드류 프리드먼은 2014년 시즌이 끝난 뒤 부자구단 LA다저스 야구단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곤 전임 단장의 무분별한 투자 흔적을 깔끔하게 지워내면서 ‘지속 가능한 강팀'으로 변모 시키는 데 성공했다.

부임 당시 클레이튼 커쇼, 코디 벨린저, 코리 시거 같은 뛰어난 프랜차이즈 선수들을 물려 받았던 프리드먼은 이후 저스틴 터너, 크리스 테일러 같은 '숨은 진주’들을 싼값으로 영입해 오는 탁월한 역량을 발휘했다.

또 워커 뷸러, 윌 스미스 같은 주축 투포수를 드래프트로 영입하면서 팀의 기반을 단단하게 다졌다.

무키 베츠를 트레이드로 영입한 건 프리드먼이 ‘부잣집 경영자’로도 탁월한 역량이 있다는 걸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였다. 무키 베츠는 내셔널리그 챔피언 시리즈에서 신들린 수비로 팬들을 매료시키면서 월드시리즈 진출의 일등 공신이 됐다. 

효율과 가치란 두 가지 개념을 토대로 미국 프로야구의 강자로 떠오른 LA다저스와 탬파베이 레이스가 21일(한국시간)부터 시작될 미국 프로야구 월드시리즈에서 멋진 승부를 겨룬다. 코로나19 때문에 단축시즌으로 열리면서 야구 열기 위축을 우려했던 메이저리그 사무국 입장에선 더 할 나위 없이 좋은 조합이다.

(사진=LA다저스 공식 트위터)

탬파베이 레이스와 LA 다저스는 야구 뿐 아니라 전 분야를 통틀어 ‘혁신’과 ‘가치 투자’를 대표하는 팀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두 팀은 양대 리그(내셔널리그와 아메리칸리그) 승률 1위 팀들이다. 덕분에 단축 시즌 '월드시리즈 우승'이란 비판으로부터도 비교적 자유롭게 됐다.  

이런 사정을 갖고 있는 '코로나19시대 월드시리즈'의 중심엔 두 팀 모두의 혁신을 주도했던 앤드류 프리드먼이 있다. 프리드먼은 탬파베이를 최고 혁신 구단으로 변신시킨 뒤 LA다저스로 넘어와 또 다시 비슷한 일을 해냈다.

그러다보니 탬파베이엔 아직도 프리드먼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투수 블레이크 스넬과 리그 최고 중견수 케빈 키어마이어는 프리드먼이 단장 시절 직접 뽑았던 선수다. 

'가치 투자' 개념을 기반으로 한 효율 극대화 전략 역시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2018년 투수 찰리 모튼을 2년 3천만 달러로 영입한 건 투자 위험을 최소화하면서도 전력을 극대화한 자유계약(FA) 사례로 꼽힌다. 모튼은 휴스턴과의 아메리칸리그 챔피언 시리즈 7차전 승리의 영웅이 됐다. 

프리드먼은 떠났지만 탬파베이는 여전히 꾸준한 강팀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혁신 삼총사' 중 두 축인 스턴버그와 실버맨이 건재하기 때문이다. 경기장에서 팀을 이끄는 케빈 캐시 감독은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창의적인 전략을 구사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LA 다저스는 '프리드먼 방식'이 진행 중인 팀이다. 그의 탁월한 운영전략은 팀에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선사했다. 월드시리즈 우승은 왕조로 가는 마지막 남은 퍼즐이다.

‘프리드먼 시리즈’에서 마지막에 웃는 팀은 어느 쪽이 될까? 야구팬이라면 두 팀의 고급 야구를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즐거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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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IT와 혁신에 관심 있는 독자들에게도 이번 시리즈는 흥미롭게 지켜볼만한 경기다.  실리콘밸리와 월가를 지배하는 ‘가치 투자’와 ‘혁신’이란 가치로 무장한 대표적인 두 팀의 뛰어난 지략 대결을 지켜보는 재미도 만만치 않을 터이기 때문이다.

한국인 투수(류현진)가 몸 담았던 팀과, 한국인 타자(최지만)가 몸 담고 있는 팀의 대결이란 측면에서도 이번 월드시리즈는 그 어느 때보다 흥미로운 대결이 될 것 같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