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어느 가수와 기획사의 분쟁, 그리고 인앱 결제 공방

수수료 못지 않게 중요한 독점 시스템

데스크 칼럼입력 :2020/09/24 10:18    수정: 2020/10/05 13:35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노예계약을 더 이상 참고 있을 수 없다.”

어느날 가수 A가 폭탄 선언을 했다. 소속사인 B사로부터 상상을 초월하는 통제와 학대를 당했다고 폭로했다. ‘가요계 은퇴’도 불사하겠다면서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그가 제기한 문제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 지나친 간섭. 외부 소통 통제.

둘째. 기여도에 비해 너무 낮은 대가.

그러자 B사도 가만있지 않았다. 내부 지침을 어겼다면서 곧바로 활동을 정지시켜버렸다. 신인 시절부터 온갖 공을 들여 키워왔더니 이제 와서 딴소리 한다고 비판했다.

둘의 다툼은 법정 소송으로 확대됐다. A는 B사가 ‘공정거래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부당한 계약조건을 강제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B사는 ‘계약을 위반했다’고 맞제소했다.

(사진=씨넷)

"가수 한 명 키워내는 비용 얼만지 아는가?" vs "노예계약으로 옥죄고 있다"

A가 폭로한 내용은 생각보다 엄청났다. 연습생 시절부터 노예 같은 생활을 했다고 주장했다. 모든 건 소속사 허락을 받아야만 했다. 친구도 마음대로 만날 수 없었다. 외부 사람과 통화하는 것도 통제 당했다. 

인기를 얻으면 모든 게 달라질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모든 조건을 감내했다. 그런데 뜨고 다니 더 큰 문제가 생겼다.

엄청나게 많은 수입을 올리는데, 정작 손에 떨어지는 건 생각보다 적었다. B사가 떼 가는 수수료가 너무 많았다. 전속 계약의 범위가 지나치게 넓은 것도 문제였다. 아무리 인기를 얻어도, 혼자서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어느 순간 그는 B사의 처분대로 살아야만 하는 노예가 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B사 생각은 다르다. “과도한 규제를 한다”는 A의 반발은 말도 안 된다는 입장이다. 그렇게 관리를 해줬기 때문에 지금 같은 스타가 될 수 있었다고 반박했다. 사생활을 통제하지 않았더라면, 벌써 옆길로 샜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수수료가 과도하다는 주장도 터무니 없다고 일축했다. “소속 가수 중 제대로 데뷔해서 돈 벌어오는 건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90% 가까운 가수들은 그냥 관리만 해주다 사라진다고 했다. 

(사진=씨넷)

가수 한 명 키워내기까지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그러니 몇몇 스타 가수가 벌어들이는 돈에서 가져오는 수수료는 최소 관리 비용 충당하고 나면 남는 게 별로 없다고 목청을 높였다.

B사가 가장 괘씸하게 생각하는 건 “신인일 땐 가만 있다가, 좀 뜨니까 이제야 딴소리를 한다”는 점이었다. 결국 ‘돈 때문’이라면서 A를 맹비난했다. 수수료 배분 특혜를 요구했다가 거절당하니까 돌발 행동을 했다고 폭로했다. 계약 위반으로 A를 제소한 건 그 때문이다.

‘뜨니까 딴소리 한다’는 주장에 대해선 A도 할 말이 많다. 물론 B사의 ‘트레이닝 시스템’이 있었기 때문에 스타가 될 수 있었던 건 맞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비인간적인 노예계약’이 정당화되는 건 아니다. 그나마 자기 정도 되니까 이런 문제로 공방을 벌일 수 있지, 무명 가수였으면 그 순간 바로 소리 소문없이 퇴출됐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A와 B의 공방이 시작되자 언론은 일제히 ‘수입 배분 문제’로 국내 최고 가수와 소속사가 분쟁을 벌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가수들에게 어느 정도 몫이 돌아가는 게 정당하냐를 놓고 열띤 공방이 벌어졌다. 

둘의 분쟁이 '수익 배분 공방'으로 틀 지어지면서 연예기획사의 비인간적인 시스템과 독점적 횡포에 대한 관심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돈 잘 버는 가수'와 '돈 잘 버는 가수를 보유한 기획사' 간의 분쟁이 돼 버렸다.  

너무나도 비슷한 인앱 결제 강제화 공방 

인앱 결제와 앱스토어 독점 문제를 가수와 기획사에 빗대 가상으로 써 본 글이다. A는 에픽, B는 애플(혹은 구글)로 바꿔 읽으면 된다. 현재 둘은 법정 공방을 앞두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 문제는 첨예한 관심사다. 구글이 그 동안 게임에만 적용해 왔던 인앱결제 강제 조치를 다른 디지털 콘텐츠에도 확대할 방침이 알려진 때문이다. 

따라서 국내의 관심사는 미국이나 유럽연합(EU) 등 해외와는 조금 다르다. 앱스토어 전체 시스템의 독점적 관행보다는 '인앱 결제 확대' 쪽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안 내던 수수료를 내야 할 상황인 만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데 인앱 결제만 지나치게 강조하게 되면 사안이 단순해질 우려가 있다. '인앱 결제 독점'은 '앱 배포 시스템 독점'에서 파생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30% 수수료'가 쟁점의 중심이 될 경우엔 사안이 더 복잡해진다. "30%가 과하다"는 문제를 제기한 쪽에서 입증해야 하는 데, 이게 생각처럼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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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인앱 결제로 촉발된 앱스토어 생태계의 독점적 횡포 문제는 좀 더 거시적 관점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가수 A와 기획사 B의 분쟁을 '수익 배분 다툼'으로 보는 게 지나친 단순화인 것과 마찬가지다. 

생활 필수 공간이 된 모바일 생태계의 독점적 횡포 문제로 시야를 확대해야 사안의 본질에 제대로 접근할 수 있다. 법은 지속 가능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규제 장치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이 사안을 다뤄야만 더 생산적인 토론이 가능할 것 같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