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배터리' 독립 25년史…구본무 뚝심과 구광모 결단

"높은 시장성에 지금이 분사 적기" R&D·선제적 투자로 세계 1위 도약

디지털경제입력 :2020/09/17 15:40    수정: 2020/09/18 07:47

90년대부터 시작된 LG 배터리 사업이 25년 만에 독립의 길을 걷게 됐다. 故 구본무 LG그룹 선대 회장부터 수조원을 투자하며 공을 들인 LG화학 배터리 사업의 미래 성장을 위해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분사라는 특단을 내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에 반도체가 있다면 LG에겐 배터리가 있다'는 말은 업계에서 오랫동안 회자돼온 말이다. 그만큼 배터리 사업은 LG그룹에게 비장의 무기이자 세계 일등 도약을 위한 핵심 사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전기차 배터리 사업은 장치 산업과 비슷해 매년 수조원의 어마어마한 투자 자금이 필요하다. LG화학이 현재 전기차 배터리 세계 시장점유율 1위 사업자이지만 향후 치킨게임 같은 경쟁 격화가 예상되는 만큼 중국·일본 등 주요 경쟁자들과 다투고, 후발 주자들의 추격을 뿌리치기 위해서는 전문경영과 지속적인 투자금 조달이 필수적이다. 완성차 사업자들의 대응에 따라 미래 전기차 배터리 사업이 '돈 싸움'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번 LG화학의 배터리 사업부문 분사도 이같은 배경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미래 생존과 전진을 위해 지금이 분사에 최적기라는 게 그룹 경영진의 판단인 셈이다.

LG화학은 17일 이사회를 열고 배터리 사업을 분사하는 회사분할안을 결의했다고 밝혔다. 다음 달 30일 임시주주총회 승인을 거쳐 12월1일 신설법인 'LG에너지솔루션(가칭)'으로 공식 출범시킬 예정이다. LG화학은 물적분할 방식을 통해 비상장 신설법인 지분 100%를 갖게 된다.

LG그룹은 그간 내부적으로 LG화학 배터리 사업 분할을 꾸준히 논의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배터리 산업이 급속하게 성장하고 LG화학 전기차 배터리 수익 구조가 자리를 잡으면서 구광모 회장과 경영진들은 분사 결정을 내렸다. 

구광모 LG 대표가 29일 미래 소재부품 개발 현황을 살피기 위해 대전 LG화학 기술연구원을 방문했다.

■ 故 구본무 회장, 90년대 초반 배터리 사업 씨앗 뿌려

故 구본무 회장은 1990년대 초반 불모지와 다름없었던 배터리 사업에 씨앗을 뿌렸다. 1992년 부회장 시절 영국에서 2차 전지를 처음 접한 뒤 샘플을 가져와 럭키금속에 연구하도록 했고, 1995년 회장 취임 이후 LG화학으로 이전해 연구를 지속했다. 구 전 회장은 경제불황 속에서도 연구개발(R&D)에 적극 나섰고, LG화학은 이 같은 선제투자를 발판 삼아 탄생한 핵심 계열사로 꼽힌다.

동생인 구본준 LG고문(전 LG 부회장)도 故 구 회장을 보필하며, 적자를 이어가던 전장부품 등 사업을 흔들림 없이 일군 인물로 꼽힌다. 구 고문은 2016년 (주)LG 신성장사업추진단장 자리에서 LG화학 등기이사로서 신사업을 챙겨왔다.

2018년 6월 그룹 총수로서 경영 전면에 나선 구광모 회장은 취임 이후 R&D 경영과 B2B 사업 고도화에 매진해왔다. 지난해에는 LG화학 기술연구원을 직접 방문해 3세대 전기차용 배터리 등 전략을 논의하는 등 현장경영에 나서기도 했다. LG화학이 2차 전지 기술력으로 재도약하고 시장을 주도해야 한다는 의미에서였다.

아울러 구 회장은 올해 들어서는 코로나19와 글로벌 무역전쟁 등 예상치 못한 위기 속에서도 LG 계열사에 성장동력 발굴을 꾸준히 당부했다.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2분기에도 LG화학 전지(배터리) 부문은 분기 사상 최대 매출과 영업이익(1천555억원)을 기록했다.

2002년 10월 구본무 회장이 전기차배터리 개발을 위해 만든 시제품을 테스트하고 있는 모습. (사진=LG)


LG화학은 1995년 리튬이온전지 개발을 시작해 1998년 국내 최초 양산 체제를 구축했다. 이듬해인 1999년에는 청주공장 월 100만셀 생산공장을 완공했다. 2000년에 들어서는 전기차용 중대형 2차 전지 개발에 본격 착수, 미국에 연구법인을 설립했다.

이후 2001년 노트북용 원통형 리튬이온전지 출시, 2004년 청주공장 LEV용 전지 최초 양산, 2007년 NCM(니켈·코발트·망간) 배터리 양산 등 세계 최초 타이틀을 단 성과를 이뤄냈다.

2007년 현대 HEV(아반떼)와 2009년 GM볼트용 배터리 공급업체로 선정되며 전장 시장에서도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현재는 현대·기아차를 비롯해, 미국의 GM, 포드, 크라이슬러, 유럽의 폭스바겐, 르노, 볼보, 아우디, 다임러, 메르세데스벤츠, 재규어, 포르쉐 등 세계 주요 고객사를 아우르고 있다.

생산기반도 꾸준히 다져왔다. LG화학은 2016년 말 폴란드에서 전기차배터리 공장 기공식을 열었으며 2018년 1분기에 가동을 시작했다. 오창(韓)-홀랜드(美)-남경(中)-브로츠와프(歐)로 이어지는 업계 최다 글로벌 4각 생산체제를 구축했다. 2019년 12월 미국의 제너럴 모터스와 전기차 배터리 합작법인 설립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LG화학 오창공장에서 임직원들이 전기차 배터리를 점검하고 있다. 사진=LG화학

■ 시장 성장성 높지만 막대한 투자 지속해야…IPO 통해 신규자금 확보 분사 배경

새로 출범하는 LG에너지솔루션(가칭)은 이번 분할을 통해 신규 자금을 확보, 급성장하는 전기차 시장에 맞춰 생산능력을 키우는 데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올 연말까지 4각 생산체제의 총 배터리 생산 능력을 100GWh 이상으로 확장할 계획이다. 이는 1회 충전시 380km를 주행할 수 있는 고성능 순수 전기차를 165만대 생산할 수 있는 양이다. 2023년까지는 200GWh 이상으로 확장할 예정으로 고성능 순수 전기차를 330만대 생산할 수 있게 된다.

신기술 개발도 지속한다. 내년 하반기에는 니켈 함량이 90%에 달하고 코발트는 5% 이하인 NCMA 배터리를 양산할 계획이다. 니켈을 극대화해 에너지 밀도를 높이고 값비싼 코발트를 최소화해 원가도 절감할 수 있는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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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화학은 신설법인을 2024년 매출 30조원 이상을 달성하고, 배터리를 중심으로 하는 세계 최고의 에너지 솔루션 기업으로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신설법인의 올해 예상 매출액은 약 13조원 수준이다. 

LG 관계자는 "이번 분할을 통해 대규모 투자자금을 유치할 수 있는 기반을 확보했다"며 "전문화된 사업에 역량을 집중하고, 사업 특성에 맞는 독립적이고 신속한 의사결정으로 경영 효율성을 한층 높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