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가이드라인에도 태양광 입지규제 확산…"교통정리 필요해"

태양광 이격거리 규제 2017년 83곳→올해 123곳…50% 이상↑

디지털경제입력 :2020/09/16 17:33

태양광 설치 허가권을 가진 지방자치단체가 민원을 근거로 태양광설비 개발행위 허가를 미루거나 취소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의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에도 각 지역에서 되레 태양광 입지규제가 확산 중인 것이다.

이에 문제 해결을 기초기자체에 미룰 것이 아니라, 행정 허가권 조정을 통한 교통정리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다만, 정부는 규제가 과하다고 또다른 규제로 대응하는 것은 자칫 여론을 악화할 수 있어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권경락 기후솔루션 이사는 16일 진성준·어기구·이소영 의원과 기후솔루션이 온라인으로 개최한 '재생에너지 확산을 위한 태양광 규제개선과 지역사회와의 상생방안' 토론회에서 "226개 기초지자체를 전수조사한 결과 태양광 이격거리 규제를 도입한 곳은 올들어 총 123곳에 달했다"고 밝혔다.

권경락 기후솔루션 이사. 사진=지디넷코리아

태양광 민원 들끓자, 지자체 이격거리 규제 높였다

이격거리(離隔距離)는 혐오시설이나 위험 설비가 주거시설과 도로에 인접하지 못하게 하는 규제다. 관련 법률에 따라 지자체가 결정하는 사안인데, 지자체별로 기준이 제각각인데다 군도나 농어촌 도로 등으로부터 최대 1킬로미터(km) 이내엔 입지가 불가하도록 설정하기도 한다.

각 지역에선 최근 5년 새 태양광 설비에 대해 이격거리 규제를 강화하는 추세다. 권 이사는 "기초지자체는 민원 최소화의 관점에서 접근할 수 밖에 없고, 지역주민 요구를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이에 운영지침이나 조례 제정을 통해 이격거리 규제가 확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정부의 권고에도 지자체 단위의 태양광 이격거리 규제가 확산하고 있다는 점에 특히 주목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2017년 3월 발표한 태양광 발전시설 입지 가이드라인에서 '지자체장은 태양광 발전시설에 대해 이격거리 기준을 설정해 운영하지 않는다'는 기본 원칙을 제시한 바 있다.

기초지자체의 태양광 이격거리 규제 현황. 자료=기후솔루션

권 이사는 "2017년 83개였던 이격거리 규제는 올해 123개로 50% 이상 늘어났다"며 "정부의 가이드라인이 법적 구속력이 없고, 지자체 역시 이를 따라야 할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산업부 역시 추가적인 조치를 시행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기후솔루션에 따르면 도시와 인접해 태양광 경제성이 낮은 경기도를 제외한 대부분의 광역단체가 이격거리 규제를 도입했다. 일례로 전라남도는 태양광 발전 인센티브 부여 제도가 활성화하는 시점부터 주민 민원이 쇄도했고, 이에 도는 광역 차원의 업무 처리기준을 마련하겠다고 대응했다. 

기초지자체의 상황도 비슷하다. 기후솔루션에 따르면 충북·충남·전북·전남지역은 모든 시·군 단위가 이격거리 규제를 조례 등으로 시행 중이다.

자료=기후솔루션

폐기물 처리장보다 더 엄격한 입지규제…태양광 업계 '노심초사'

권 이사는 "도로 이격거리는 최소 100미터(m)부터 시작한다"면서 "일부 지자체에선 태양광 이격거리 규제를 폐기물 처리장·공장과 같은 기피 시설보다 오히려 더 강화한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지자체가 태양광과 관련한 주민 민원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입지 규제를 설정하다보니, 규제가 갈수록 과해진 셈이다.

그는 "좁은 국토와 인구밀도를 감안할 때 태양광 사업이 가능한 부지에 대한 고민과 함께 합리적이고 꼭 필요한 규제만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면서 "신재생에너지 법 개정이나 이격거리 표준조례안 등을 마련해 불필요한 이격거리를 최소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16일 진성준·어기구·이소영 의원과 기후솔루션이 온라인으로 개최한 '재생에너지 확산을 위한 태양광 규제개선과 지역사회와의 상생방안' 토론회 모습. 사진=기후솔루션

임성희 녹색연합 팀장은 "입지규제는 재생에너지 시설 뿐 아니라 어느 시설이나 필요하다"면서도 "현재의 도로 이격거리 규제는 그 근거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기준을 일률적으로 정하기보다 각 사례별로 들여다보고 그에 맞게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첨언했다.

관련기사

그러나 규제를 또다른 규제로 대응하는 것엔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송이 산업부 신재생에너지정책과 사무관은 "신재생에너지법의 특례조항으로 이격거리를 일률적으로 규제하는 법령을 만들더라도 민원이 급증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입지 규제 강화로 인한 불똥은 업계로도 튀고 있다. 한화큐셀에 따르면 이격거리 규제나 계획심의 과정에서 추상적인 기준에 따라 불허되는 사례로 인해 재생에너지 비용이 더 높아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정규창 한화큐셀 정책파트장은 "최근 이격거리 이슈로 중소규모 태양광, 즉 1메가와트(MW) 이하 태양광 발전소 설치에 대해 문의하는 사례가 현격하게 줄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