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중앙은행 디지털화폐'를 연구할 수밖에 없는 이유

현금 사용 감소세 확대·민간 디지털화폐 확산 가능성에 선제적 대비

컴퓨팅입력 :2020/09/10 10:45    수정: 2020/09/10 11:28

한국은행이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시스템을 연구하고 있다. 현금을 블록체인 분산원장 위에서 디지털화된 방식으로 발행하고, 이를 민간 은행이 국민에 유통, 서비스할 수 있는 시스템을 설계하고 구현까지 해 본다는 계획이다.

이미 신용카드와 간편결제 시스템이 잘 갖춰진 우리나라 같은 지급결제 환경에서 중앙은행이 '디지털 원화' 발행을 진지하게 연구하는 이유는 뭘까.

당장은 아니지만 미래 지급결제 환경이 급변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선제적으로 대비하기 위해서라는 게 한은의 설명이다.

한은이 예의주시하고 있는 변화는 '현금 사용이 극도로 낮아질 가능성''비트코인, 리브라 등 민간화폐가 널리 확산될 가능성' 두 가지다. 이런 상황에서 공공재로써 디지털 지급결제 수단을 제공하고, 통화 주권을 지키기 위해 CBDC가 필요할 것으로 봤다.

한국은행 윤성관 디지털화폐연구팀장 (이미지=코인데스크코리아 유튜브)

■한은 전국민 쓰는 CBDC 연구 왜?

한은 디지털화폐연구팀 윤성관 팀장은 최근 코인데스크코리아가 온라인으로 개최한 DAXPO 컨퍼런스에서 한은이 CBDC를 진지하게 연구하는 이유에 대해 "미래 지급결제 환경이 크게 변화할 가능성에 선제적으로 대비하기 위해서다"고 강조했다.

윤 팀장은 우리나라가 CBDC 발행을 고려하는 다른 나라와 지급결제 환경에서 차이가 있다는 점을 먼저 짚었다.

대부분의 개발도상국가에서는 금융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지고 지급결제 자체가 낙후돼 있어 이를 개선하기 위한 대안으로 CBDC를 고려하고 있다.

중국이나 스웨덴의 경우에는 현금 사용이 극단적으로 낮아지면서, 특정 민간 기업에 의해 시장이 독과점되고 지급결제 안정성을 전적으로 의존하게 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CBDC에 관심을 두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지급결제 시스템이 낙후되지도, 현금 사용이 심각하게 낮지도 않다.

윤 팀장은 "우리나라는 지급결제 수준이 높고 금융 포용도도 굉장히 높다"며 "지급결제 서비스를 추가적으로 고도화하려는 목적으로는 CBDC가 필요하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또 "현금 사용이 줄어들고는 있지만 여전히 상당부분 사용되고 있어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중간 정도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미래 지급결제 환경은 지금과 크게 달라질 수도 있다. 한은이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본 변화는 '현금 사용의 감소 추세'와 '민간 디지털화폐의 확산 가능성'이다.

윤 팀장은 현금 사용 감소 추세에 대해 "우리는 아직 현금 사용이 높은 편이지만 미래에 정말 현금이 쓰이지 않는 상황이 올 수도 있으므로 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금 사용 감소세가 커졌을 때 모든 사람이 민간이 제공하는 지급수단을 써야 하므로 선택권이 제약되고, 재해로 민간 서비스가 작동하지 않을 때 백업 수단이 없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대비해 중앙은행이 공공재로써 지급수단을 제공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민간 디지털화폐 확산 가능성에 대해서는 "비트코인이나 페이스북 리브라 같은 스테이블코인들이 확산돼 법화나 은행예금을 대체하면 통화정책, 금융안정, 지급결제에 미칠 영향이 지대할 것"이라며 "화폐 주권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대응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한은은 올해 4월부터 소액결제용 CBDC 시스템의 설계와 테스트 완료를 목표로 CBDC 연구를 시작했다. 전국민이 CBDC를 사용하는 시나리오를 가정해, CBDC를 발행하고 이를 유통, 서비스, 회수할 수 있는 일련의 프로세스를 설계해 보는 연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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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이 CBDC 발행·환수를, 민간이 유통과 서비스를 담당하는 것으로 역할을 나누고, 이용자들이 민간이 제공한 전자지갑을 통해 현금·예금을 CBDC로 바꾸거나 개인 간 전송하고 대금결제에 쓸 수 있게 하는 구조를 구상하고 있다. CBDC 발행과 환수에는 블록체인 분산원장을 사용하고, 시스템 운영에 민간을 참여시키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윤 팀장은 이번 연구에 대해 "(미래 지급환경이 변화 했을 때를 대비해) 꾸준히 연구를 진행해 역량을 축적할 필요가 있다"며 "한은은 지난해 1월부터 CBDC 기본연구를 해왔고 이번 연구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