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료 없는 주식 거래로 ‘증권시장의 의적’을 표방했던 로빈후드가 궁지에 몰렸다. 고속 매매업체에 고객 거래 정보를 판매한 사실에 대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조사에 착수한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2일(현지시간) SEC가 로빈후드 마켓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고 보도했다.
고객들의 주식 주문 정보를 고속매매업체들(high-speed trading firms)에게 판매한 사실을 제대로 공지하지 않은 부분이 문제가 됐다.
고빈도매매(HFT)로도 알려진 고속매매는 고성능 컴퓨터를 이용해 빠른 속도로 내는 주문을 수천 번 반복하는 거래를 의미한다.
증시 의적 표방하면서 2013년 화려하게 등장
고속매매업체들에게 주문흐름(order flow) 정보를 판매하는 자체는 불법은 아니다. 하지만 로빈후드는 이 같은 사실을 고객들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은 부분이 문제가 됐다.
SEC의 이번 조사는 아직 초기 단계이며, 현단계에서 로빈후드가 SEC와 합의할 경우 1천만 달러 이상의 벌금을 부여받을 수도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전했다.
SEC와 합의로 마무리한 업체들은 대개 문제가 된 부분에 대한 인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벌금을 내게 된다. 다만 이 경우 강력한 처벌 조항이 있는 사기방지법 위반 혐의로 고소당하는 것을 피할 순 있다.
로빈후드는 ‘증권시장의 의적’을 표방하면서 출범한 업체다. 중세 의적 로빈후드가 기득권층인 영주에 대항했던 것처럼 증시를 주도하는 기관투자가들에 맞서 개미들의 권익을 지켜주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내세웠다.
로빈후드의 최대 경쟁 포인트는 ‘수수료 제로’ 전략이었다. 주식이나 옵션, 암호화폐 거래 때 수수료를 일체 받지 않았다.
대신 고객 예탁금 이자나 신용융자 거래의 일종인 마진 트레이딩에 부과하는 이자를 수익의 원천으로 삼았다.
2015년 초엔 주식거래를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는 앱을 내놓으면서 절정의 인기를 구가했다.
하지만 ‘증시의 의적’ 로빈후드는 최근 들어 여러 곤란한 상황을 겪었다. 지난 3월엔 거래 장애가 발생하면서 상당수 고객들이 피해를 입기도 했다. 또 20대 청년이 로빈후드 앱으로 옵션거래를 하다가 자살하는 사건도 발생해 곤경에 처했다.
2018년까지 마진 트레이딩·고객예탁금 이자만 매출원으로 공지
이런 상황에서 SEC가 또 다른 문제점을 파고 들면서 벼랑 끝으로 내몰리게 됐다.
SEC가 문제 삼고 있는 것은 로빈후드가 2018년까지 고속거래업체들에게 주문흐름(order flow) 정보를 제공하고 대가를 받아왔다는 사실을 제대로 공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2018년 10월까지 로빈후드 웹페이지의 ‘어떻게 돈을 버는가’란 항목에는 마진트레이딩과 고객 예탁금 이자 등 두 가지 수익 모델만 공지돼 있었다. 주문흐름 판매 매출은 거론도 하지 않았다.
물론 로빈후드 웹페이지의 다른 곳에는 주문흐름 판매 관련 정보가 올라와 있었다. 하지만 SEC는 투자자들이 거래 결정을 할 때 알기 원하는 모든 정보를 반드시 공개하도록 하고 있어 규정 위반에 해당될 가능성이 많다.
특히 2017년과 2018년 로빈후드 주문흐름 판매 관련 매출이 전체 매출의 절반 가량에 이른다는 점에서 이 같은 정보 누락은 적지 않은 사안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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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후드는 2018년 10월 둘째주에 웹페이지를 업데이트하면서 이 같은 내용을 추가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전했다.
‘증시의 의적’ 로빈후드는 코로나19 이후 특히 많은 인기를 누렸다. 소액 투자자들이 대거 가입하면서 이용자가 1천300만 명을 웃도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