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기업이 일본시장 진출에 번번이 실패하는 이유

"일본을 너무 몰랐다...코로나19는 새로운 기회”

컴퓨팅입력 :2020/08/26 18:12    수정: 2020/08/27 06:02

“그동안 수많은 정보기술(IT) 기업이 일본 시장에 도전했다가 번번이 실패하고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기본 중의 기본인 일본을 잘 몰랐다는 것입니다. 변화가 느린 일본과 비즈니스를 하려면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장기전으로 해야 할 때가 있고 속공으로 해야 할 때가 있는데 우리 기업은 대부분 (많은 자금을 들인) 속공작전으로 나섰기 때문에 시장이 성숙해지기 전에 철수해야 했습니다.”

25일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이 온라인으로 개최한 ‘일본시장 진출 세미나’에서 첫 번째 강연자로 나선 염종순 이코퍼레이션닷제이피 대표는 ‘일본 IT 시장 진출전략’을 주제로 한 발표에서 일본 시장 진출 실패 원인으로 일본을 제대로 알지 못 한 점을 꼽았다.

염종순 이코퍼레이션닷제이피 사장이 일본 IT시장 진출 전략을 발표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지리적으로 가깝고 같은 한자 문화권인 데다 어순도 비슷하고 행정·금융·사법 시스템이 유사하다. 해외 진출을 생각하는 기업이 첫 번째 진출 국가로 일본을 꼽는 이유다.

염 사장은 대한민국과 일본을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에 비유했다. 남녀 사고방식이 달라 소통이 힘들고 마찰을 일으키는 것처럼 일본을 공략하려면 일본이 어떤 사고방식으로 살아가는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팔방미인’ ‘친일파’ ‘한’ 등 한국과 일본에서 같이 쓰지만 의미가 180도 달라지는 말도 많아 의미를 제대로 알고 써야 한다고 덧붙였다.

염 사장은 “제안서를 잘 쓰는 것보다 일본과 어떤 역학관계를 갖고 임해야 하는지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염 사장은 “과거 이코퍼레이션닷제이피라는 작은 정보화 컨설팅 기업이 일본 지자체 정보화 프로젝트를 수주해 삼성SDS와 LG CNS에 외주를 줄 수 있었던 것은 삼성이나 LG의 접근방식과 달랐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염 사장은 “가장 중요한 것은 (정보화와 관련한) 대한민국이 일본보다 선진국이라는 점을 전제로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염 사장은 “삼성이나 LG는 일본이 선진국이라고 생각하고 프로젝트를 수주하려고 했지만 이코퍼레이션닷제이피는 반대로 대한민국이 선진국이라는 것을 알고 일본 지자체를 설득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염종순 이코퍼레이션닷제이피 사장이 25일 정보통신산업진흥원이 주최한 '일본진출 전략 세미나'에서 주제 발표를 하고 있다.

흔히 이야기하는 일본 전문가에 대해서도 꼬집었다.

염 사장은 “일본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고 해서 모두 다 일본 메인스트림에 들어갔다고 생각하면 안 되고 일본에서 태어나 자랐다고 해서 일본 속마음과 속살을 다 안다고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일본에서 오래 생활해도 실질적으로 일본인과 부대끼면서 일본 속마음, 속살을 알 기회는 드물다”며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역설했다.

일본에 진출하려면 일본 시장을 제대로 알아야 하고 제대로 조언을 받아야 하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 정보는 장님 코끼리 만지듯 얻은 단편적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염 사장은 또 “일본 시장은 덤으로 얻을 수 있는 시장이 아니다”며 “경영자가 전력투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은 금방 바뀔 수도 있고 안 바뀔 수도 있기 때문에 나설 때와 물러설 때를 잘 판단해 지구전으로 해야 할 지 속도전으로 해야 할 지 잘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염 사장은 “우리 기업인을 만나면 좋은 파트너를 소개해달라고 하는데 내가 원하는 파트너를 찾지 말고 여러분을 원하는 파트너를 찾는 게 관건”이라고 덧붙였다.

‘일본인이 바라본 일본의 IT 현황과 한국의 기술력’을 주제로 나선 기무라 다케시 닛케이컴퓨터 편집위원은 “변화가 더딘 일본이 코로나19로 완전히 바뀌었다”며 “(한국 IT 기업이) 활동하기 쉽게 바뀌고 있다”고 밝혔다.

기무라 편집위원은 “그동안 엄두도 내지 못한 재택근무를 하게 됐고 공부도 온라인으로 해야 한다고 하고, 소비도 오프라인 접점이 없어져 전자상거래를 강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움직임이 생기기 시작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기무라 다케시 닛케이컴퓨터 편집위원이 '일본의 IT 현황과 한국의 기술력'을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기무라 편집위원은 “한국이 코로나19로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한 것 처럼 일본도 일자리를 잃은 국민에게 재해지원금 10만엔을 지원하기로 했는데 시스템이 엉망이어서 제대로 지급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국민이 웹사이트와 모바일을 활용해 신청했는데 정작 신청사이트와 지자체 전자정부 시스템이 연계되지 않아 지자체 공무원이 엑셀로 정리해서 출력한 다음 다시 전자정부 시스템에 입력하는 일이 벌어지면서 아직 지원금을 받지 못한 사람도 많다는 후문이다.

기무라 편집위원은 “일본은 2000년에 ‘e재팬 전략’을 발표하고 3~5년 안에 세계 최첨단 IT 국가를 만들겠다고 했는데 20년이 지난 지금 겨우 이 정도”라며 “코로나19를 겪으면서 IT 후진국임을 깊이 인식했을 것이고 앞으로 바꿔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기무라 편집위원은 “한국에서도 많이 알려졌겠지만 팩스로 코로나19 감염자 자료를 받아 집계했다는 것도 그렇고, 일본 사회에서 이런 부분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컨센서스가 이뤄지고 있다”며 “IT 기업에는 새로운 시장이 생긴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기무라 편집위원은 그러나 ‘한국기업에 비즈니스 기회가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일본에서 한국기업 브랜드 파워가 없다는 점을 들었다.

기무라 편집위원은 10여 년 전 한국이 반도체·가전산업에서 일본을 추월하고 가전왕국을 자처하는 일본이 무너지면서 일본에서도 ‘한국에서 배워야 한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한일 정치상황이 악화하면서 없어졌다고 설명했다.

기무라 편집위원은 “일본에서 삼성이 약간 유명하고 한국 전자정부 시스템이 선진적이라는 인상은 남아있지만 일본 SI 기업은 여러분 제품을 절대로 팔아주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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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무라 편집위원은 SI 기업이 마이크로소프트(MS), 오라클 등 글로벌 메이저 제품 외에 가져오지 않는 이유로 “일본이 한국 보다 큰 시장이지만 일본어 버전, 일본화, 인터페이스, 일본 영업 교육프로그램 등 여러 가지 요구사항이 많아서 들어오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기무라 편집위원은 “한국 IT 기업은 최근 활발하게 움직이는 일본 IT 벤처와 협력하는 방법을 하나의 가능성”으로 꼽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