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두 회사 이야기…구글과 페북의 상반된 플랫폼 전략

'안정성 vs 정확성'의 기로에서

데스크 칼럼입력 :2020/08/26 17:04    수정: 2020/10/05 13:36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의 세기이자 의심의 세기였으며 빛의 계절이자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면서 곧 절망의 겨울이었다.”

찰스 디킨스의 소설 ‘두 도시 이야기’는 이런 멋진 문장으로 시작한다. 프랑스 혁명 직전의 혼란스러운 사회상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작가는 최고와 최악, 지혜와 어리석음, 믿음과 의심, 빛과 어둠 중 무엇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것 같은 당시의 상황을 실감나게 묘사한다.

우리는 늘 최고와 최악 사이에서 선택을 한다. 그리고 늘 자신의 선택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아니 애써, 그렇게 믿는다.

하지만 그 선택은 때론 엉뚱한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디킨스가 '두 도시 이야기'에서 잘 보여준 것처럼. 

구글과 페이스북, 코로나19 이후 리뷰 인력 정리 '고민' 

여기 두 회사가 있다. 그들도 ‘지혜’와 ‘어리석음’을 놓고 고민에 빠졌다. 프랑스 혁명 같은 거창한 화두는 아니다. 하지만 ‘코로나19 시대’를 살아가는 플랫폼들이 피할 수 없는 질문이다.

화제의 주인공은 구글과 페이스북이다. 무대는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지난 3월 코로나19 팬데믹 사태가 확대되면서 두 회사 모두 ‘콘텐츠 모더레이터’들을 대거 정리했다. 플랫폼 내에 올라온 폭력, 음란 영상들을 걸러내는 작업을 하던 인력이었다. 거기서 고민이 시작됐다. 

그 동안 두 회사는 인공지능(AI)이 문제 소지가 있는 영상에 깃발 표시를 하면, 사람 리뷰어들이 최종 검토했다. 그리곤 최종적으로 삭제 여부를 결정했다.

(사진=씨넷)

코로나19 사태 이후 이런 작업이 불가능해졌다. AI가 사실상 삭제 여부에 대한 최종 결정자 역할을 했다. 사람과 달리 AI는 알고리즘이 필요했다. 두 회사는 이 부분에서 확연하게 다른 길을 택했다. 

그 선택은 3개월 뒤에 상반된 성적표로 나타났다. 유튜브는 1분기에 비해 영상 삭제 건수가 두 배로 늘었다. 반면 페이스북은 삭제 건수가 오히려 크게 줄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유튜브의 2분기 결과 보고서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미국 IT 전문매체 프로토콜에 따르면 유튜브는 콘텐츠 전략의 핵심을 이렇게 설명했다. 

“코로나19 이후 사람 리뷰 과정을 대폭 줄이면서 과소 규제와 과잉 규제 중 한 쪽을 선택해야 했다. 그리고 우리는 후자 쪽을 택했다.”

과잉 규제 택한 유튜브, 최소 규제 택한 페이스북 

선택의 기로에 선 유튜브는 ‘과잉규제 위험’을 감수하기로 했다. 표현의 자유보다는 플랫폼의 책임성이 우선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평소 같으면 삭제되지 않았을 영상까지 ‘규제’했다. 폭력 조장이나, 어린이들의 안전을 위협할 우려가 있는 영상은 평소보다 3배 가량 더 많이 삭제 조치했다.

당연히 항의하는 사람이 늘게 마련이다. 그래서 유튜브는 항소 절차를 강화했다. 그 과정을 통해 상당수 콘텐츠를 구제했다.

반면 페이스북이 운영하는 인스타그램은 다른 결과를 받아들었다. 아동 성적 학대 관련 영상은 2분기 삭제 건수가 전분기의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자살 관련 콘텐츠 삭제 건수는 무려 79% 감소했다. 평소 같으면 삭제됐을 콘텐츠 중 상당수가 살아남았다. 대신 페이스북은 항소 절차를 줄였다.

표현의 자유 쪽에 좀 더 무게를 둔 것이다. 이런 면모는 트럼프 대통령의 선동성 글 처리 때 잘 드러났다. 과감하게 규제한 트위터와 달리 페이스북은 조금 신중하게 접근했다. (그래서 욕도 많이 먹었다.)

(사진=씨넷)

코로나19 때문에 초래된 비상 상황을 접하는 페이스북과 구글(유튜브)의 상반된 접근이 흥미롭다. 

유튜브는 청결한 환경을 더 중시했다. 그러면서 해가 되지 않는 콘텐츠를 올린 사람까지 규제하는 위험을 감수했다.

반면 페이스북은 정확성에 초점을 맞췄다. ‘도둑을 놓치는 한이 있어도 무고한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면 안된다’는 격언을 연상케하는 접근 방식이다.

지혜로운 선택일까, 어리석은 선택일까 

다시 ‘두 도시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이 소설에서 두 도시는 영국 런던과 프랑스 파리다. 당시 런던은 최고 시절을, 파리는 최악의 시기를 겪고 있었다. 하지만 최악 상황이던 파리에선 프랑스 대혁명이란 새로운 희망이 싹트고 있다.

디킨스는 이처럼 프랑스혁명 직전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보여주면서 최고와 최악, 지혜와 어리석음, 믿음과 의심 등 무엇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을 실감나게 묘사했다. 

앞에서 인용한 소설 첫 문장은 이런 상황을 함축적으로 묘사했다. 그런데, 이어지는 문장은 더 의미심장하다.

"우리는 모두 천국 쪽으로 가고자 했지만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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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랬을까? 디킨스는 "전문가들조차 선 아니면 악, 극단적 대조로만 시대의 성격을 규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란 설명을 덧붙였다. 

구글과 페이스북의 상반된 정책을 접하면서 문득 '두 도시 이야기'가 떠올랐다. 둘 다 최선이라고 생각한 선택을 했지만, 그 선택의 잡음 또한 만만치 않을 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두 회사의 엇갈린 결과를 '극단적인 대조로만' 바라보지 않으려 한다. 둘 모두 플랫폼 사업자의 고민 끝에 나온 최선의 선택이자, 지혜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