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트렌드 못 읽으면 창업 생각 말라"

[라떼는닷컴] 최종욱 마크애니 대표

컴퓨팅입력 :2020/08/05 09:23    수정: 2020/08/05 11:14

90년생들에게는 낯설게 들릴 이야기다. 약 20여년 전 우리나라에 IT와 인터넷 분야를 뜻하는 이른바 '닷컴 산업' 열풍이 불었다. 내로라 하는 우리나라 IT 기업들도 대부분 이때 등장했다. 말 그대로 버블에 해당한 벤처기업들은 다 도산했고, 알짜 기업들은 지금까지 살아남아 기업·공공·개인 소비자 영역에서 명맥을 잇고 있다. 그렇게 생존한 20년 전 젊은 창업자들은 어느덧 중견기업 대표로 살아가고 있다. '라떼는 말이야(나 때는 말이야를 뜻하는 신조어)'라고 운을 떼며 그간 겪은 산전수전을 털어놓을 법 하다. 이들의 그간 소회와 인상 깊은 기억들을 릴레이로 들어보고자 한다.[편집자주]

"괜찮은 아이디어에 의지해 창업을 하는 경우가 있다. 처음엔 성과가 나오더라도 5년 정도가 지나면 시장이 포화된다.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하는데, 그럴 능력이 있어야 한다. 기술을 볼 줄 아는 사람이어야 그 다음에 도래할 기술을 예측할 수 있다." 

최종욱 마크애니 대표가 제시한 창업의 조건이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국내외 기업들은 여러 기술들로 각축전을 벌여왔다. 교수였던 최종욱 대표는 지난 1999년 창업가로 변신해 회사를 운영해왔다. 지난 세월 동안 남들보다 한 발 앞서 새로 주목받는 기술들을 읽어내고, 공부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는 게 최종욱 대표의 자부심이다. 

이런 노력은 경영자로서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메시지다. 경영자가 새로운 기술 트렌드에 대응해 시장경쟁력을 갖추고자 하는 고민을 하지 않거나, 그럴 역량이 없다면 회사가 망하는 건 시간 문제라고 강조했다. 

최종욱 마크애니 대표

■MP3가 불러온 '워터마킹' 붐…DRM으로 활로 개척

최 대표는 상명대 컴퓨터과학부 교수로 재직하던 지난 1996년, 디지털 콘텐츠에 다양한 정보를 입력할 수 있는 '워터마킹' 기술 관련 논문을 접하고 연구를 시작했다. 이후 1998년 MP3의 등장은 글로벌 IT 기업들의 워터마킹 기술 경쟁을 불러왔다.

"1999년 워터마킹 기술이 신문에도 등장했다. 우리나라에서 개발된 MP3 때문이었다. 이 MP3가 미국으로 넘어가면서 시장을 뒤흔들었다. CD가 더 이상 팔리지 않을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워터마킹 기술은 이런 우려를 해소할 수 있다는 기대를 모았다. 워터마킹 기술로 음악 파일에 재생 가능 횟수를 입력해 저작권을 보호하자는 취지였다. 그 때 삼성전자에서 투자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투자금 10억원을 받고 연구실 학생 3명과 함께 회사를 창업했다.

당시 워터마킹 기술 보급을 위한 협의체인 'SDMI'가 구성됐다. 전세계 전자 회사들이 참여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인텔, IBM, 소니, LG전자 등이 포함돼 있었고, 마크애니도 삼성전자와 손잡고 참여했다. SDMI에서 최고의 기술을 뽑는 테스트로 'STEP 2000'를 실시했는데, 3차전까지 통과해 글로벌 전자 기업 중 4강까지 진출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최종욱 마크애니 대표

그러나 4차전이 진행되던 중 이 기술을 무효화할 수 있는 취약점이 발견돼버렸다. 기술 수요가 사라지게 되면서, 최 대표가 눈을 돌린 곳이 디지털권한관리(DRM)다. 이후 DRM과 워터마킹 기술을 활용해 인터넷으로 증명서를 발급받는 시스템을 개발해냈다.

"DRM으로 방향을 틀 때, 당시엔 함께 창업한 연구실 학생들이 왜 다른 길로 가냐며 엄청 반대했다. 10여년 뒤 블록체인 사업을 시작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회사 내부 직원들은 아날로그 기술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만 새로운 기술을 봐야 한다."

■기술 연구자 저력으로 경영 개선…"좋은 사람들 놓친 게 아쉽다"

2008년 최 대표는 회사에 전문 경영인을 두고, 병행해오던 교수로서의 삶에 전념했다. 교육자 생활이 보다 성미에 맞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경영 상황이 악화되면서 지난 2015년 경영 일선에 복귀했다. '기술을 아는 경영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도 이 때의 경험 때문이다. 

"학교생활에 전념하는 동안 전반적으로 회사 관리가 되지 않았다. 회사에 돌아온 이후 불필요한 인력을 내보내는 등 내부 정비를 했다. 지난 4년간 생겼던 빚을 다 정리했다."

회사를 운영하면서 아쉬움이 남는 부분으로는 '사람'을 꼽았다.

"좋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사람을 잘 다루지 못해서 훌륭한 사람들을 놓친 게 마음에 남는다. 미안함도 있고, 잘할 수 있었던 부분을 잘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 아쉽다."

최종욱 마크애니 대표

워터마킹 기술을 시작으로 DRM, 블록체인, 인공지능(AI) 영상분석 등 다양한 차세대 기술로 사업을 꾸려온 마크애니가 현재 눈여겨 보는 기술은 어떤 것일까. 최 대표는 LSH(Locally sensitive hash)를 언급했다.

"LSH를 적용했을 때 해볼 수 있는 것들이 많다. AI 기술 중 순환신경망(RNN) 모델을 LSH와 결합하면 표절 문서를 찾아내는 기술을 개발할 수 있다. 이미지의 일부분을 복사한 내용도 찾아내 차단할 수 있고, 문서를 자동으로 분류하는 데에도 활용할 수 있다. 지난해부터 관심을 갖고 보는 기술이다."

■"뉴딜 예산, 30%만 잘 쓰여도 미래 경제 성장 인프라 구축될 것"

20여년간 국내 IT 업계의 성장을 지켜본 입장에서, 최 대표는 최근 정부가 발표한 '한국판 뉴딜' 정책에 대한 의견도 밝혔다. 해당 사업은 정부가 2025년까지 160조원을 투자해 일자리 190만개를 창출하는 계획으로 마련됐다. 디지털 산업을 선도하기 위해 국가 경쟁력을 키우는 '디지털 뉴딜'과 친환경 경제로의 전환을 가속화하는 '그린 뉴딜'로 구성된다. 

"2019년에 '더 그린 뉴딜'이란 책이 나왔다. 책을 읽어보면 그린 뉴딜은 무조건 가야 하는 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똑똑한 AI 개발을 위한 '데이터 댐'(디지털 뉴딜 과제의 일환)도 매우 잘한 결정이다. 

대규모 예산이 투입되는데, 예산이 허투루 쓰이는 문제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쏟아붓는 예산의 70%는 손실이 생긴다고 보는 게 맞다. 그러나 30%만 효율적으로 쓰여도 결과적으로 잘 쓰인 것이다. 

벤처 붐 당시 정부가 IT 분야에 적극적으로 투자할 당시에도 과잉투자 얘기가 나왔다. 야당에서는 이런 투자에 정치적 속셈이 반영됐다고 비판했다. 모 여당 국회의원도 이게 맞는 방향인지 묻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1998년 IMF 때 정부가 유도한 '벤처 붐'과 통신망 투자는 현재의 IT 인프라를 만들었다. 마찬가지로, 지금 추진하는 뉴딜은 미래에 AI 인프라를 구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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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이후 하고 싶은 일로는 그 동안 자주 방문한 인도네시아에서 가난한 학생들을 위한 학교를 만들고 싶다는 소망이 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도 가난한 학생들이 많았던 시기가 있었지 않냐. 그 때 장학금이 많았다. 인도네시아에서 그런 일을 하고 싶다. 유망한 학생들의 학업을 지원해 좋은 대학에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