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피쳐폰·스마트폰…금융 앱은 항상 필수였다

90년생들에게는 낯설게 들릴 이야기다. 약 20여년 전 우리나라에 IT와 인터넷 분야를 뜻하는 이른바 '닷컴 산업' 열풍이 불었다. 내로라 하는 우리나라 IT 기업들도 대부분 이때 등장했다. 말 그대로 버블에 해당한 벤처기업들은 다 도산했고, 알짜 기업들은 지금까지 살아남아 기업·공공·개인 소비자 영역에서 명맥을 잇고 있다. 그렇게 생존한 20년 전 젊은 창업자들은 어느덧 중견기업 대표로 살아가고 있다. '라떼는 말이야(나 때는 말이야를 뜻하는 신조어)'라고 운을 떼며 그간 겪은 산전수전을 털어놓을 법 하다. 이들의 그간 소회와 인상 깊은 기억들을 릴레이로 들어보고자 한다.[편집자주]

스마트폰으로 주식 시세를 실시간으로 살펴보고, 주식을 구매하는 게 일상화된 시대가 됐다. 경우에 따라 거액이 오고 갈 수도 있지만, 복잡한 패스워드를 입력할 필요도 없다. 지문이나 얼굴 인식만 거치면 가능하다.

모바일 금융 서비스가 이처럼 간편해지기까지 여러 차례의 변화가 있었다. 그 중 핵심 수단인 스마트폰이 등장하기 전엔 피처폰이 쓰이고 있었다. 그 이전에는 PC였다. 그 때는 주식 거래를 어떻게 했을까? 은행 예금 확인과 적금 납입은 어떻게 했던 것일까? 아톤(구 에이티솔루션즈)은 이런 금융 서비스 변화의 중심에 서 온 회사다.

금융을 비롯한 모바일 서비스 시장은 지난 이십여년간 격동했다. 이런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아톤이 추구한 전략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어떤 회사보다도 빠르게 차세대 서비스를 만드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당당히 제 값 받고 팔 수 있는, 스스로 경쟁력을 자부할 수 있는 서비스 개발에 집중하는 것이다.

김종서 아톤 대표는 "경쟁을 실력이 아니라 가격으로 하면 업종 전체가 망하게 된다"며 "국내 시장에서 제 값을 받고 팔 수 있어야 해외에서도 제 값에 팔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공짜' 마케팅 등 가격 경쟁력으로 사업 몇 개를 따가도, 결국 회사가 성장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전체 시장의 파이를 줄여 망가뜨리게 된다는 것.

이를 위해서는 "내가 원하는 게 아닌, 고객이 원하는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은행 등 '골리앗' 같은 규모의 회사를 고객사로 두고 이들의 혁신을 지원해온 경험에서 우러나온 조언이다.

김종서 대표에게 창업 이후 금융 서비스 변화의 물살을 헤쳐온 경험을 들어봤다.

■'실시간 주식 시세 확인'으로 모바일 금융 시장 진출 첫 발

김 대표는 어릴 때부터 사업가를 꿈꿔왔다. 건설 분야 사업가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다. 전산학과를 졸업한 뒤 창업 준비의 일환으로 다우기술에 입사했다.

"회사에 갔더니 선물 거래 시스템을 만들어야 했다. 당시 우리나라엔 선물이라는 개념이 없다가, 선물지수가 막 개설되던 시기였다. 증권 거래 시스템도 만들었다. 이 때 자바 기술이 처음 나올 때였다. 자바 애플릿을 활용해 실시간으로 시세 정보를 받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바뀌어 나타나게 하는 기술이 혁신이던 시기였다. 이 때를 계기로 금융 분야에 집중하게 됐다."

이후 1999년 다우기술에서 만난 엔지니어 7명과 회사를 세웠다. 회사 근무 경험을 살릴 수 있는 홈트레이딩시스템(HTS) 관련 사업에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IMF 등 경제 침체 여파 때문에 시장 상황은 악화되고 있었다.

"HTS 구축 사업 하나에 13~15억원이 책정됐는데, 쭉 떨어져서 창업 당시에는 7~8억원 정도 했다. 이게 3억원까지 떨어졌다. 회사들이 직원들이 어차피 놀기 때문에, 개발비의 반이라도 건져야겠다는 생각에 3억원이라는 가격도 받아들이곤 했다. '이건 끝났다. 하면 안 되겠다'란 생각을 했다."

김 대표는 위기에서 솟아날 기회를 '모바일'에서 봤다. 휴대폰이 등장하고, 휴대폰에 탑재되는 모바일 브라우저가 나타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2002년도에 모바일 금융 시장에 진출했다. 퀄컴이 당시 무선인터넷 플랫폼 '브루'를 내놨다.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내려받을 수 있었다. 그때 KT가 휴대폰에 브루를 탑재하고, 전자계산기 등 여러 서비스 구축 사업 공모를 실시하고 있었다. 이 사업에 유망성이 있다고 판단해 모바일 증권 서비스를 개발했다. 금융 서비스 경험이 많았기 때문에 발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고, 같은 선상에서 경쟁하는 회사가 없었다. 동종업계 회사들은 당시 무선 애플리케이션 프로토콜(WAP)로 제품을 개발 중이었다. HTS 개발 자체는 훨씬 잘 하는 회사들이 있었지만, 모바일 시장을 잘 살피질 못했다.

이렇게 방향을 트는 과정에서 직원들 반발도 있었다. 함께 창업한 엔지니어들이 술자리에서 꼭 그래야겠냐며 아우성치기도 했다. 그렇지만 배가 침몰하기 전에 뛰어내려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당시 HTS 개발사들은 지금 다 없어졌다."

■스마트폰 등장 이후 '보안' 집중…"비대면 시대서 더 중요"

모바일에 집중한 전략이 성공한 이후 아톤은 증권, 뱅킹 등 모바일 금융 시장을 추가 공략해왔다. 성공적으로 시장에 안착한 서비스도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서비스도 있었다.

"실시간성이 중요하고, 돈이 오가고, 보안이 중요한 모바일 서비스 구축 사업은 다 저희에게 왔다. 증권, 뱅킹...여러 플랫폼 개발 운영을 도맡았고, 이런 쪽은 대개 잘 됐다. 실시간 데이터 조회에 대한 수요가 확실하니까.

잘 안 쓰는 앱도 있었다. 모바일 경마 앱도 내놨었지만, 주 소비자층이 모바일 서비스를 원하지 않았다.

모바일 커머스도 아쉬움이 남는 사업 중 하나다. '**080'을 누르고 특정 번호 누른 뒤 전화를 걸면 특정 홈쇼핑 서비스로 바로 연결되는 서비스를 구축했는데, 그 때는 그게 혁신이었다. 데이터 비용도 홈쇼핑사가 부담해서 소비자는 무료로 쇼핑할 수 있었다. 통신 3사랑 전체 홈쇼핑사와 계약해 서비스를 내놨는데 잘 안 됐다. 채널 홍보가 잘 되지 않기도 했고, 당시엔 사람들이 무선 인터넷 비용이 무료일 것이라는 생각을 잘 못 했다. 이용 문의 대부분이 진짜로 데이터 비용이 무료냐는 질문이었다."

스마트폰의 등장은 회사 경쟁력을 저해하는 위기로 작용하기도 했다.

"모바일 금융 서비스 개발 회사가 일단 많지 않았다. 이 시장은 기술력 외에도 통신사와 친밀한 관계가 필요하고, 시장에 대한 이해도 높아야 하는 등 진입 장벽이 높았다. 근데 스마트폰이 나오면서 이런 장벽이 거의 사라졌다. 업종에 대한 이해만 있으면 시장에 뛰어들 수 있게 됐다. 무한 경쟁이 시작된 것이다.

2009년에 스마트폰이 처음 등장했을 때 미리 대비했다. 안드로이드용 모바일 증권 앱을 만들고 증권사들과 계약해 시장을 잘 잡았다. 문제는 스마트폰 가입자가 급증하면서 나타났다. 대기업들이 스마트폰 시장에 대응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관련 인력들을 대거 뽑기 시작했다. 당시 회사 과장, 대리 급이 다 나갔다. 20명 중에 7~8명이 퇴사했다. 부장과 사원이 일을 하는 시절이었다. 우리 회사랑 스카웃 받은 대기업 중 고민하는 직원에게 가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누구나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는 시대에서 아톤이 주목한 것은 '보안'이다. 김 대표는 스마트폰에서도 여전히 불편을 유발하는 공인인증서를 대체할, 안전하면서도 간편한 대안을 제시하면 모바일 금융 분야의 새로운 혁신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공인인증서가 짜증나는 이유는 안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키 하나만 가지면 다 쓸 수 있으니 보안에 구멍이 생길 수밖에 없다. 탈취가 쉬우니 특수문자 등 패스워드는 어렵게 설정해야 하는데, 또 갱신은 매년 해야 한다. 시큐어엘리먼트(SE)에 그래서 집중했다. 스마트폰 속 안전한 영역을 만들어 키랑 프로그램을 보관하는 기술이다.

모바일 OTP, 사설인증 등 솔루션은 일찍이 만들었지만 금융사들을 설득하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고객이 뭘 월하는지 은행들도 관심을 아주 많이 갖게 됐다. 카카오뱅크 등 인터넷 은행의 출현이 기여한 부분이 있고, 정부의 노력도 있었다. 금융규제 샌드박스 제도도 가장 활발한 상황이다. 가장 보수적이었던 분야에서 이런 모습이 나타나는 것은 긍정적인 신호다."

김 대표는 이런 보안 인증 기술이 비대면 문화가 확산되는 상황에서 갈수록 어떤 기업, 사용자든 필요하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