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균성의 溫技] SNS 시대, 진중권씨는 강력한 B급 언론이다

조선일보 능가할 수준

데스크 칼럼입력 :2020/07/23 14:39    수정: 2020/10/05 13:26

세상 돌아가는 일에 궁금해 하다가 재밌는 상상을 해보게 됐다. 진중권씨와 조선일보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진중권씨나 조선일보나 세상이 올바른 방향으로 돌아가도록 고민하고 발언한다는 자부심으로 살고 있을 테다. 그렇다면 그 점에서 누가 더 영향력이 셀지 궁금해진 것이다. ‘진중권씨를 어찌 감히 조선일보와 비교하느냐’고 생각할 사람이 많겠으나, 비교해 봐도 좋을 만한 근거가 있다.

기자협회보 22일치 보도에 따르면 우리나라 54개 언론사가 올해 상반기에 기사로 직접 인용 보도한 사람 가운데 18위가 진중권씨다. 18위는 얼핏 보기에 낮은 순위 같지만 전혀 그렇지가 않다. 기자협회보는 50위까지 순위를 발표했는데, 이낙연 안철수 홍준표 유승민 윤석열 등 차기 대권후보나 시진핑과 김여정처럼 한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는 주변국 지도자들조차 줄줄이 그 밑이다.

우리 언론은 진중권씨를 구름 너머 천상의 존재로 생각하는 듯하다.

1위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었고, 2위는 문재인 대통령이었다. 또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3위), 정세균 국무총리(4위),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5위) 등이 상위권이었다. 그래서 궁금해진 것이다. 진중권씨는 도대체 무엇이기에 국내외를 망라한 최상급 뉴스메이커로 등장한 걸까. 세상의 일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아주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진중권씨는 대체 무엇인가. 진짜 궁금하지 않나. 네이버로 인물검색부터 해봤다. 대학교수, 비평가. 이중 교수(동양대학교 교양학부) 이력은 2019년 12월에 종료된 것으로 나온다. 그러니 네이버 인물검색이 틀린 게 아니라면 진중권씨는 비평가다. 비평가는 무엇인가. 다시 검색. 국어사전에 따르면 ‘평론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다. 또한 ‘이러쿵저러쿵 시비를 잘하는 사람(국어사전 2번째 뜻)이다.

우리나라에서 그 일을 가장 잘하는 사람 하면 누가 떠오르는가.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그럴 것이다. 유 이사장도 분명히 손꼽힐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순위는 몇 위로 짐작되는가. 진중권씨보다 위일까, 아래일까. 매우 당연한 일이지만 등외다. 순위에 없다. 그러면 누구? 진중권씨에 필적할 비평가는 과연 누구일까. 독자 여러분이 국내외에서 그 누구를 상상하든 당연하게도 순위에는 없다.

50위 안에 비평가는 진중권씨가 유일하다. 그 이유가 뭘까. 진중권씨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독보적인 비평가이기 때문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누가 알겠는가. 하지만 분명한 건 그것만으로는 충분한 답이라고 느낄 사람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그럼 또 뭘까. 그 생각을 하다 찾아낸 소박한 답이 ‘진중권씨는 SNS 시대 강력한 B급 언론’이라는 가설이다. 진중권씨는 이제 ‘어떤 현상’이 되었다.

여기서 ‘어떤 현상’이라고 쓴 것은 그게 상식적이지 않은 일이지만 현실적으로 세상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분석되어야 할 일이라는 뜻이다. 상식적이지 않다는 건 세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비평가가 주요 언론의 상시 뉴스메이커로 등장한 사례는 국내는 물론이고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다는 점이다. 그런 사례를 과연 누가 찾아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둘째, 비전문 비평이 전문 비평을 압도한다는 점이다. 진짜 비평가는 전문가다. 그래야 비평이 권위를 갖는다. 권위는 설득의 주요 기제이기도 하다. 진중권씨는 과연 그가 발언한 모든 분야에서 진짜 전문가를 압도할 전문성을 갖고 있는 것인가.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주요 언론이 그의 비평을 매일 앞 다퉈 제목으로 인용하고 있으니 인정을 해야 할 것 같은데 과연 이런 일이 상식적이라 할 수 있는가.

셋째, 언론이 다른 언론의 비평을 이례적으로 팩트(혹은 보도자료)처럼 인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언론은 보도와 비평의 기능을 갖는다. 진중권씨를 B급 언론이라 칭한 건 보도는 없으면서 매일 비평을 보도처럼 쏟아내기 때문이다. 보통의 언론은 다른 언론의 무시하지 못할 팩트는 인용해 보도하지만, 비평은 거의 인용하지 않는다. 비평을 인용하는 건 대개 경쟁 매체의 관점을 논박할 때로 제한된다.

그러하므로, 대한민국을 대표한다는 언론이 매일 ‘B급 언론’의 비평을 인용해 제목으로 보도하는 게 어떻게 상식이겠는가. 각 언론마다 존재하는 수백 명의 기자와 적잖은 논설위원과 기고하는 수많은 오피니언 리더는 비평의 역할을 죄다 진중권씨에게 넘겨준 것인가. 상황이 이 정도라면, 진중권씨와 조선일보의 영향력 중 누가 센 것인지를 따져보는 일이 어찌 허무맹랑한 이야기이기만 할 것인가.

누가 알겠는가. B급 언론이 어느 언론처럼 대통령은 자신의 손으로 만들겠다고 나설지. 하도 기가 차서 하는 이야기다. 진중권씨의 비평은 사실 비평이랄 것도 없다. 그의 ‘짧은 생각’일 뿐이다. 길게 평론하지 않고 짧게 끊어 쓰니 ‘짧은 생각’이 아니고 뭐겠는가. 언론이 단지 진중권씨의 ‘짧은 생각’을 경전처럼 퍼 나르는 이유는 알고 싶은 생각조차 없다. 다만 두 기능 중 하나를 상실한 게 가련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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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련하긴 ‘B급 언론’도 마찬가지다. 저 상황이 되고 보면 세상이 얼마나 우습게 보이겠는가.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언론이 본인의 횡설수설을 금과옥조 삼아 모든 국민이 암기할 수 있게 반복적으로 알려주는 현실. 천상의 존재 아니고서야 누가 그런 경험을 하겠는가. 생각과 발언이 곱기나 해야지. 그런 것 아무 것도 상관 없어. 그냥 뱉어. 그런 현실을 경험하고도 과연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인간이 인간으로 살기 어렵다면 그게 가련한 일 아니고 뭐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