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M 매각설에 반도체 업계 초긴장…생태계 붕괴 우려

[이슈진단+] 소프트뱅크, ARM 재매각·상장 검토

반도체ㆍ디스플레이입력 :2020/07/16 16:06    수정: 2020/07/17 16:38

2016년 ARM을 인수했던 소프트뱅크가 재매각을 고려중이다. (사진=씨넷)
2016년 ARM을 인수했던 소프트뱅크가 재매각을 고려중이다. (사진=씨넷)

여기에 30년 된 밀가루 회사가 있다. 세계 모든 빵집들이 이 회사의 밀가루를 공급받아 빵과 과자를 만들었다. 한 빵집은 식빵을, 다른 빵집은 단팥빵을, 또 다른 빵집은 마카롱을 만들었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밀가루를 팔던 이 회사를 모두 좋아했다.

상황이 달라진 것은 4년 전부터다. 우유를 팔던 회사가 비싼 돈을 주고 밀가루 회사를 사들였다. 이 회사는 밀가루를 더 많은 곳에 비싸게 팔아 본전을 챙기고 싶었다. 그러나 당초 예상보다 이득이 적다는 것을 깨달은 이 회사는 손해를 보더라도 밀가루 회사를 다시 팔려고 한다.

지금 빵집들은 눈치보기에 여념이 없다. 행여라도 다른 빵집이 밀가루 회사를 사 버린 뒤 우리 빵집에 밀가루를 안 팔까 걱정한다.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은 바다 건너 빵집에서 밀가루 회사를 사들여도 문제다. 바로 반도체 칩 설계전문업체 ARM 이야기다.

■ "소프트뱅크, ARM 재매각·상장 고려 중"

ARM은 여러 반도체 회사에 저전력 반도체 설계도와 명령어셋을 공급하고 이에 대한 기술료를 받는 회사다. 현재는 스마트폰 뿐만 아니라 IoT(사물인터넷) 기기, 자동차, PC와 서버까지 이 회사에 의존하고 있다.

후지츠 슈퍼컴퓨터 '후가쿠'(富岳). Arm 기반 프로세서로 작동한다. (사진=Arm)

지난 13일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소프트뱅크는 2016년 243억 파운드(약 35조원)를 주고 인수한 ARM을 재매각하거나 상장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소프트뱅크는 코로나19 영향과 위워크 관련 투자 손실로 2019 회계연도에 7천500억엔(약 8조4천500억원)에 이르는 막대한 순손실을 기록할 전망이다. 소프트뱅크가 운영하는 비전펀드 역시 1.8조엔(약 20조30억원)의 손실을 입었다.

이외에도 글로벌 공유오피스 업체 위워크에 대한 투자로 800억엔(약 9천억원)에 이르는 손해를 봤다. 손실액을 합치면 약 2조6천300억엔(약 30조원)으로 2016년 ARM 인수 대금에 약간 못 미치는 어마어마한 규모다.

■ 부진한 IoT 사업.."매출 압박에 시달렸다"

소프트뱅크는 IoT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보고 ARM을 인수했다.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은 2016년 영국 런던에서 열린 기자간담회를 통해 "IoT는 기회이고 ARM의 미래 성장여력을 감안하면 저가에 인수한 것"이라며 "ARM 인수는 내 인생에서 가장 흥미로운 일"이라고 밝히기까지 했다.

그러나 IoT 시장의 성장세는 소프트뱅크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결국 ARM은 이달 초 IoT 사업 부문인 'IoT 플랫폼'과 'IoT 트레져 데이터'를 소프트뱅크 그룹 계열사로 이전하기로 결정하고 ARM에는 반도체 설계 부문만 남겼다.

2016년 Arm 테크콘 행사에 참석한 소프트뱅크 손 회장. (사진=Arm)

뿐만 아니라 소프트뱅크 피인수 이후 ARM은 엄청난 매출 압박에 시달렸던 것으로 파악된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글로벌 반도체업체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ARM의 비즈니스 모델은 각 반도체 회사에서 명령어셋과 아키텍처에 대한 이용료를 일정 주기로 거둬 들이면 되는 너무나 안정적인 구조였다. 그러나 소프트뱅크 인수 이후 투자액에 대한 이익을 실현하려는 매출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는 이야기가 ARM 외부로 심심찮게 흘러 나왔다."

■ ARM 중국 지사 지분 51%, 중국 정부가 보유

ARM의 중국 사업 구조도 실적 문제를 낳는 원인이다. 2017년만 해도 ARM 전체 매출 중 중국 시장의 비중이 20%에 달했고 중국에서 생산된 반도체 중 95% 이상이 ARM 아키텍처를 이용했다.

그러나 소프트뱅크는 2018년 ARM의 중국 사업 지분 중 51%를 7억 7천520만 달러(약 8천306억원)에 중국 정부에 넘겼다. ARM 인수에 따른 자금 부담을 덜기 위해서라는 것이 당시 유력한 이유로 꼽혔다.

결국 ARM이 중국 시장에서 매출을 거둬도 그 수익 중 절반 이상이 중국 정부로 돌아가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자연히 ARM의 실적은 악화될 수밖에 없다.

■ 이해 관계 없는 제3자 인수는 불가능

소프트뱅크가 ARM에서 빠져나오는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는 ARM과 이해관계가 없는 제3자, 다시 말해 비메모리 반도체, 특히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를 만들지 않는 기업이 ARM을 인수하는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19로 현금 유동성 확보가 중요한 상황에서 선뜻 35조원을 투자할 수 있는 기업은 찾기 힘들다. 또 ARM 인수시 지불한 243억 파운드 이상을 챙기려는 소프트뱅크와 대금을 깎으려 하는 인수 후보자의 입장 차이로 무산 가능성도 크다.

인텔이 Arm 인수에 나설 경우 반독점법 적용대상이 된다. (사진=인텔)

일각에서는 의외의 인수대상자로 인텔이나 AMD를 꼽는다.

그러나 이 사안을 오래 지켜 본 한 관계자는 "인텔이 ARM을 인수할 경우 반독점법에 따라 기업분할을 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또 AMD의 시가 총액은 640억 달러(약 74조원)지만 실제 현금 보유액은 15억 달러(약 1조 5천억원, 2월 기준)에 불과해 인수 여력이 없다"고 지적했다.

■ 특정 기업 인수시 ARM 생태계 붕괴 우려

특정 반도체 기업이 ARM을 인수하고 'ARM 아키텍처 독점'을 선언할 경우 엄청난 후폭풍이 예상된다. 경쟁사를 견제하는 수단으로 ARM 라이선스 거부를 발동하거나 특허권 침해 소송을 벌이면 30년간 유지되었던 ARM 생태계는 자연히 모래성처럼 허물어질 우려가 있다.

특정 회사가 Arm을 인수할 경우 '라이선스 전쟁'으로 생태계가 붕괴될 가능성이 크다. (사진=Arm)

ARM에 의존하고 있는 삼성전자, 애플, 퀄컴, 미디어텍, 하이실리콘(화웨이) 등 모든 회사들이 동등한 지분으로 컨소시엄을 구성해 ARM을 인수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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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화웨이 등 중국 기업이 컨소시엄에 참여하는 순간 ARM은 미국 정부의 제재 대상이 된다.

결국 소프트뱅크는 ARM 매각으로 발을 빼고 싶어도(엑시트) 전체 매각이나 상장 모두 쉽지 않은 상황이다. 어느 방안이든 ARM 생태계를 뒤흔들 수 있는 파급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이런 제반 문제때문에 소프트뱅크는 ARM 매각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애매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