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스 레이디(Tax Lady)’가 타격을 받았다. 애플에 안겼던 18조원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세금 폭탄이 불발탄으로 바뀐 때문이다.
유럽일반법원은 15일(현지시간) 애플에 130억 유로(약 17조8천억원) 세금을 부과한 유럽연합집행위원회(EC) 결정이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아일랜드가 애플에 세금 혜택을 부여한 것이 부당한 처사였다는 사실을 EC가 제대로 입증하지 못했다는 것이 판결의 골자다.
"유럽 법률론 거대 IT기업 규제 한계" 절감?
이 판결은 2016년 EC 결정을 정면으로 뒤집은 것이다. 당시 EC는 애플이 아일랜드를 ‘세금 회피 창구’로 활용했다고 판단했다. 아일랜드 법인세율은 12.5%로 독일(29.27%), 프랑스(33.3%) 같은 나라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EC 반독점 위원회를 이끌던 마르그레테 베스타게르는 아일랜드가 애플에 부당한 혜택을 부여했다고 판단했다. 역내 국가들의 세제를 평평하게 만들려는 유럽연합(EU)의 정책에 정면 배치되는 처사란 게 베스타게르의 판단이었다.
하지만 유럽일반법원의 이번 판결로 베스타게르의 당시 결정이 뒤집어지게 됐다.
2014년부터 5년 동안 유럽연합집행위원회(EC) 반독점 감독관을 역임하면서 수 많은 미국 기업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베스타게르로선 처음 맛보는 패배다.
베스타게르는 반독점 감독관 시절 구글을 상대로 세 차례 반독점 조사를 통해 94억 달러 과징금을 떠안긴 것을 비롯해 아마존, 애플 등을 연이어 공격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베스타게르를 '택스 레이디'라 부른 건 이런 이력 때문이다.
5년 간의 반독점 감독관 임무를 무사히 끝낸 베스타게르는 EC 부위원장으로 승진했다.
뜻 밖의 실패를 맛본 베스타게르. 그는 어떤 행보를 택할까? 유럽 최고법원인 사법재판소에 상고를 할까?
월스트리트저널은 이 문제와 관련해 흥미로운 논점을 제기했다. 유럽일반재판소에서의 패배가 오히려 베스타게르를 비롯한 EU 지도자들의 규제 행보를 더 대담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베스타게르는 현재의 유럽 법률은 거대 IT 기업들을 규제하기에 역부족이란 주장을 계속해 왔다.
애플 사례에서 볼 수 있듯 헤드오피스를 중심으로 한 탈세 시도를 막기엔 한계가 있다는 주장이다.
이번 재판에서도 유럽일반재판소는 “아일랜드가 애플에 특혜를 제공했다는 점을 EC가 제대로 입증하지 못했다”고 판결했다. 이런 입증 책임을 지는 한 앞으로도 같은 일이 반복될 가능성이 많다.
디지털 세금 부과 등 입법활동 본격화 예상
공교롭게도 최근 유럽에선 거대 IT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디지털 세’ 부과 작업이 속도를 내고 있다. 이번 재판으로 좌절을 맛본만큼 그 작업에 더 힘을 쏟을 가능성이 많다는 게 월스트리트저널의 분석이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판결 직후 베스타게르는 “판결문을 면밀히 검토한 뒤 가능한 다음 행보를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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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또 각국들과 기업의 세금 계약에 대한 조사도 계속 추진해나가겠다고 덧붙였다.
거침없던 행보에 뜻밖의 암초가 등장하긴 했지만 다국적 IT 기업들을 향한 공세의 칼날을 늦출 생각은 없다는 걸 분명히 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