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전격 사퇴 의사를 밝힌 정정화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 위원장이 지역·환경단체와의 공론화 과정이 부진한 데 대해 일차적으로 정부에 책임이 있다고 쓴소리를 쏟아냈다. 정부가 재검토위 출범 당시 이해 당사자를 배제한 중립적인 인사를 단행해 논의가 제대로 진행될 수 없었다는 지적이다.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이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고 적극 해명했다. 또 향후 의견수렴 과정이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돕겠다고 밝혔다. 다만 위원장의 사퇴로 재검토위가 사실상 파행에 이르면서, 월성원전 핵폐기물 임시저장시설 증설 등 촌각을 다투는 논의엔 빨간 불이 켜졌다.
■ 공론화 실패 이유? "산업부가 판을 잘못 짰다"
정 위원장은 이날 오전 서울시청 인근 식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재검토위는 모든 이해 관계자들이 참여해 의견을 낼 수 있는 채널이어야 하는데, 산업부가 소통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며 "대표성을 확보하지 못한 채 공론화가 진행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논의 구조에 탈핵(脫核) 시민사회계를 포함한 이해 당사자들이 논의의 장에 없었다"며 "재검토위는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꼬집었다.
정 위원장은 재검토위의 출범 단계에서부터 정부가 '판을 잘못 짰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해관계자 중심으로 (위원회를) 구성할 것이냐, 중립적인 인사로 할 것이냐는 의견이 엇갈렸다"면서 "그러나 산업부는 이해관계자가 들어오면 공론화 진척이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 중립 인사로 위원회를 구성했다"고 말했다.
정 위원장은 정부의 독단이 이후에도 이어졌다는 입장이다. 특히, 경북 월성원전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인 맥스터와 관련, 지역주민의 의견을 수렴하는 창구를 경주시 지역실행기구에 맡기면서 지역주민들 간의 갈등이 증폭됐다고 그는 주장했다.
맥스터 증설에 대한 주민 의견수렴 과정에서도 문제가 나타났다고 정 위원장은 설명했다. 정 위원장은 "재검토위는 지난 4월 당시 맥스터 증설 여부에 대한 의견수렴을 위해 시민참여단 구성을 위한 설문 문항을 만들었다"며 "그러나 지역실행기구가 위원회와의 상의도 없이 설문 문항을 모두 바꿔버렸다"고 주장했다.
이어 "의견 수렴이라는 근본 취지를 훼손하는 방향으로 설문 문항이 바뀐 것을 보고 위원장직 사퇴를 결심하게 됐다"며 "지금 이 자리에서 정확히 어떤 식으로 설문 문항이 바뀌었는지에 대해 밝힐 순 없지만, 나중에라도 원본은 공개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책임 떠넘기는 사이에…월성원전 맥스터 포화율 95%
산업부는 즉시 설명자료를 내고 정 위원장의 주장에 반박했다. 위원회 구성에서 이해관계자를 배제한 사실이 없고,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의 논의 협조를 독려했지만 시민단체가 참여를 거부했다는 것이다.
산업부는 "재검토준비단에선 위원회 구성 과정에서 환경단체 추천 위원들이 회의 직전 참여의사를 철회했다"며 "이에 정부는 절차의 공정한 관리를 위해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사례를 참조해 중립인사로 구성했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는 모든 의견수렴 과정에서 이해관계자들의 균형된 참여기회를 보장하고 다양한 의견수렴을 위해 참여와 협조를 지속적으로 설득·독려해왔다"면서 "국민과 원전지역 주민 의견을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수렴하기 위해 추진해왔던 모든 노력들이 시민사회계의 불참을 이유로 '불공정', '반쪽 공론화'라고 평가받은 것은 유감스럽다"고 강조했다.
산업부는 탈핵 시민사회계가 공론화에 적극 임해야 논의에 진척이 있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그동안 수 차례 시민단체에 토론회 참여를 요청했지만, 이들이 참여 자체를 거부해왔다는 것이다.
산업부는 "사용후핵연료 관리에 대한 공론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정작 탈핵 시민사회계가 공론화 과정에 참여를 거부하고 토론장 밖에서 불공정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자기모순"이라며 "중장기·지역주민 의견수렴 절차에 탈핵 시민사회계가 적극 참여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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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지난해 15명의 인원으로 출범한 재검토위는 정 위원장의 사퇴로 이제 11명밖에 남지 않았다. 그마저도 남아있는 위원 중 2명이 곧 사퇴 의사를 밝힐 것이라는 게 정 위원장의 설명이다.
이에 따라 당장 월성원전 맥스터 증설 논의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방사성폐기물학회가 내놓은 연구결과에 따르면 월성원전 맥스터는 오는 2022년 3월 포화 상태에 이를 것으로 예측됐다. 현재 이 시설의 포화율은 95.36%에 달한다. 맥스터 증설이 조만간 결정되지 않으면, 월성원전 2~4호기를 멈춰야하는 사태가 올 수도 있다는 게 원전 업계의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