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신문엔 편집 기자란 직종이 있다. 그들은 매일 “어떻게 하면 기사를 잘 읽게 만들까” 고민한다. 레이아웃을 할 때도, 제목을 달 때도 같은 고민을 한다.
독자의 시선 흐름도 중요한 고려사항이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일반적으로 독자들은 톱 기사를 읽은 뒤 대각선으로 훑어내려간다. 그래서 시선이 가는 중간에 눈을 잡아챌 기사나 사진을 배치한다. 그런 다음엔 톱 옆 자리로 다시 올라간다. 그래서 그 곳에 또 큰 기사를 배치하는 식이다.
신문 전체의 흐름도 중요하다. 그 역할은 주로 편집부장과 편집국장이 담당했다. 종합면과 각 지면 간에 기사가 적절하게 배치되었는지, 제목은 중복되지는 않는지 살핀다. 물론 독자들이 신문을 넘길 때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하는 것도 중요한 작업이다.
신문에서 개별 지면은 아파트 단지 속 개별 가구와 비슷한 존재다. 전체와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독립성을 유지한다.
이런 흐름에서 독특한 존재가 ‘오피니언 면’이다. 외부 필진들의 글이 모여있는 공간. 그래서 그곳은 독립된 성이다. 가끔은 튀는 글들이 실리기도 한다. 독자들도 그 곳의 특수성을 이해하고 걸러서 읽는다.
그런데 온라인 시대가 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뉴스와 오피니언 간의 칸막이가 사라졌다. 독자들은 더 이상 제작자들이 안내하는 순서대로 기사를 읽지 않는다. 소셜 플랫폼을 경유한 뒤 곧바로 개별 기사로 넘어오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
■ '병력을 보내라'는 칼럼 실은 NYT 오피니언 편집장 결국 사임
최근 뉴욕타임스에서 벌어진 ‘칼럼 소동’은 달라진 독자 관계를 잘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뉴욕타임스의 오피니언면을 책임지고 있던 제임스 베넷 편집장이 이달 초 사임했다. 톰 코튼 공화당 상원의원이 쓴 '군대를 보내라(Send In the Troops)’는 칼럼 때문이다. 미국 전역으로 확대되고 있는 인종차별 반대 시위를 무력 진압해야 한다는 내용의 칼럼이었다.
이 칼럼이 출고되자 마자 항의가 빗발쳤다. 독자들 뿐만이 아니었다. 편집국 내부 기자들도 강한 비판을 쏟아냈다. 아서 슐츠버거 뉴욕타임스 회장까지 "편집 절차의 중대한 붕괴를 목도했다”고 논평했다. 결국 베넷 편집장은 지난 3일 결국 사임했다.
이번 사건의 발단은 사회 분위기와 동떨어진 칼럼을 게재한 데서 출발했다. 지금 미국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는 인종 차별 문제다. 그 때문에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OTT 플랫폼에서 일시적으로 사라졌다. 앤드루 잭슨 전 대통령 동상도 수난을 겪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무력진압'을 주장하는 칼럼을 게재한 건 썩 적절해 보이진 않는다. 그런데 뉴욕타임스는 왜 그런 칼럼을 실었을까? 신중하기로 유명한 뉴욕타임스 편집진은 왜 문제 소지가 적지 않은 칼럼을 그냥 내보냈을까?
대부분의 신문은 외부 칼럼에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다’는 문구를 붙인다. “이건 우리 기자가 쓴 뉴스가 아니니, 그렇게 알고 읽으라”는 의미다. 뉴욕타임스 편집진 역시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다양한 의견'을 소개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외부 의견은 '안전한 보호막'을 쳐뒀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독자들은 그들이 짜놓은 틀 내에서 읽을 테니 큰 문제 없을 것으로 믿었을 것이다.
언론 전문매체인 니먼랩은 “그 부분이 잘못된 생각이었다"고 지적했다. 온라인에선 독자들이 편집진이 설계해 놓은 순서나 방식대로 읽지는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독자들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읽는다. '지면 속’에서 기사를 소비하는 독자보다 독립된 상품으로 접하는 독자가 훨씬 더 많다. 게다가 이런 칼럼은 굉장히 빠른 속도로 확산된다. 뉴욕타임스는 지면에 넣어서 편집했지만, 독자들은 기사를 독립 상품으로 소비했다.
■ 편집진의 의도와 독자 인식 간의 괴리, 생각보다 클 수도
이어지는 니먼랩의 설명을 좀 더 들어보자.
베넷이 사임할 무렵 뉴욕타임스는 매주 120건 가량의 외부 칼럼을 게재했다. 오피니언 페이지를 온라인 공간으로 확대한 덕분이다. 칼럼이 양적으로 훨씬 풍부해졌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오피니언과 뉴스 면을 가로막고 있던 장벽이 사라졌다. 종이신문과 달리 인터넷 공간에선 둘을 확연하게 구분할 방법이 없다. 독자들은 한 공간에서 양쪽 글을 모두 접한다. 소셜 플랫폼을 통해 개별 기사로 바로 접속하는 독자들은 아예 그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예전 같으면 ‘부적절한 칼럼이다’는 정도 비판에 머물렀을 수도 있다. 하지만 격화된 미국 내 ‘인종차별 반대 여론'에다 달라진 미디어 환경까지 겹치면서 오피니언 편집장 사퇴로 이어지게 됐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니먼랩은 “온라인 상에 많은 칼럼들이 올라오는 시대엔 독자들이 뉴스와 오피니언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할 가능성이 많다”면서 “따라서 뉴욕타임스 같은 조직이 외부 칼럼을 통해 공중의 대화를 심화시키려면 소비자들에게 뉴스와 오피니언 사이에 존재하는 ‘벽’에 대해 좀 더 잘 설명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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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난 이번 소동을 조금 다르게 받아들였다. ‘완성된 상품’인 종이신문과, 흐르는 물과 같은 존재인 인터넷신문의 차이가 생각보다 더 크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신문을 제작하는 사람이 의도한 방식과, 독자들이 읽는 방식 간의 괴리가 꽤 멀 수도 있다는 생각도 했다.
종이신문과 인터넷신문 사이에는 하루 한번 발행하는 상품과, 실시간으로 쏟아내는 상품이란 외형상의 차이보다 훨씬 더 큰 거리가 존재한다. 매일 뉴스를 만드는 입장에선 그 차이에 대해 좀 더 세밀하게 따져봐야겠다는 다짐을 해보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