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겨울은 요란했다. 너도 나도 새로운 희망을 노래했다. ‘뉴 밀레니엄’이란 생소한 단어가 일상 용어가 됐다. 그렇게 새 천년의 문이 열렸다.
2000년을 대표하는 단어는 ‘닷컴 붐’이었다. 그해 1월 신생 인터넷기업 AOL이 전통 미디어 강자 타임워너를 인수한 것은 ‘닷컴 파워’를 잘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었다. ‘닷컴’ 꼬리를 단 수 많은 신생 기업들이 전통 굴뚝 강자들을 위협했다.
그 무렵 국내에서도 ‘테헤란밸리’를 중심으로 닷컴의 꿈이 무르익고 있었다. 너도 나도 테헤란밸리로 몰려들었다. IMF 구제금융 충격이 채 가시지 않았던 대한민국은 ‘닷컴 붐’에 힘입어 새로운 도약의 기틀을 마련했다.
1999년 4천 여 개에 불과하던 벤처기업들은 2000년엔 8천800여개로 훌쩍 늘어났다. 2001년엔 1만 2천 여 개에 이르렀다.
닷컴 바람은 언론계까지 강타했다. 정보통신 담당 기자들을 중심으로 인력 대이동이 시작됐다. 여기 저기서 "거액의 스톡옵션을 받고 벤처로 옮겼다”는 소식이 들렸다.
기자들이 향한 곳은 벤처만은 아니었다. 달라진 미디어 환경에 걸맞은 멋진 매체를 만들어보자는 꿈을 실행에 옮긴 기자들도 적지 않았다. 무모해 보였던 그 때의 꿈은 한국 미디어의 물줄기를 바꾸는 거대한 혁명의 밑거름이 됐다.
■ 새 천년과 함께 시작된 독립형 인터넷신문 혁명
첫 테이프를 끊은 것은 머니투데이였다. 2000년 1월 1일 첫 출범 하면서 명실상부한 인터넷신문 시대를 열었다. 뒤이어 이데일리를 비롯한 각종 매체가 창간의 깃발을 올렸다. 초기 인터넷신문 바람을 주도했던 오마이뉴스도 그 해 2월22일 모습을 드러냈다. 3월엔 IT전문매체인 아이뉴스24가 등장했다.
지디넷코리아가 첫 발을 내디딘 것도 그 무렵이었다. 출발은 소박했다. 처음엔 미국 씨넷의 기사를 그대로 소개했다. 그 무렵 씨넷닷컴과 지디넷닷컴은 미국 대표 IT 미디어였다.
지디넷코리아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미국 최고 IT미디어들과 정식 라이선스를 체결하면서 고급 기사를 신속하게 전해줬다. 당시 지디넷코리아는 해외 소식에 목마른 많은 IT 인들의 갈증을 풀어주는 청량제였다.
지디넷코리아가 걸음마를 시작한 2000년은 인터넷신문 원년으로 꼽힌다. 물론 그 이전에도 인터넷언론은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종이신문 종속형 매체들이 주도했다. 1995년 한국 최초로 인터넷신문을 선보인 중앙일보와, 곧바로 경쟁에 뛰어든 조선일보가 치열한 속보 경쟁을 벌였다.
언론학자들은 이때를 ‘(종이신문) 종속형 인터넷신문 시대’라 부른다. 종이신문의 인터넷 서비스였기 때문이다. 일부 학자들은 ‘셔블웨어(shovelware)’란 표현을 쓰기도 했다. 종이신문 기사를 삽으로 퍼 담듯이 그대로 옮겨 싣는 관행을 비꼰 표현이었다.
2000년에 등장한 인터넷신문들은 달랐다. 자체 취재 기자와 취재망을 구축하고 차별화된 기사를 쏟아냈다. 2000년을 ‘인터넷신문 원년’으로 꼽는 건 그 때문이다. 학자들은 2000년 이후를 ‘독립형 인터넷신문시대’라 부른다.
이 무렵 가장 많은 인기를 누린 것은 오마이뉴스였다. 시민기자제를 활용한 오마이뉴스는 한국 뿐 아니라 전 세계 학자들의 관심을 받았다. 2000년 창간 이후 네이버를 중심으로 한 포털 뉴스 시대가 본격화된 2000년대 중반까지는 오마이뉴스의 시대였다.
하지만 실속 있는 변화는 오히려 다른 곳에서 조금씩 일어났다. 특히 경제 및 IT 분야에선 조용하지만 강력한 미디어 변혁이 이뤄지고 있었다. 지디넷코리아를 비롯한 주요 미디어들은 기존 언론 관행을 조금씩 허물면서 새로운 문법을 써 나가기 시작했다.
가장 큰 변화는 ‘모든 뉴스의 속보화’였다. 전통 언론의 오랜 문법이던 ‘마감시간’이 사라졌다. 기자가 기사를 완료하는 시간이 곧 마감 시간이었다. 게다가 지면 제약도 없었다. 큰 사건이 벌어지면 엄청난 관련기사들이 쏟아졌다.
지금은 상식으로 통하지만, 그 무렵엔 또 다른 미디어 혁신이었다. 당시 많은 기업 홍보 담당자들은 “돌아서면 쏟아지는 기사 때문에 혼란스럽다”고 털어놨다.
학자들도 색다른 미디어 혁신에 주목했다. 제법 그럴 듯한 학술 용어도 등장했다. ‘선발행 후편집’과 ‘실시간 저널리즘'이 대표적이다. ‘선발행 후편집’은 유기적인 인터넷 언론의 편집 관행을 묘사한 말이다. 이런 관행은 치열한 속보 경쟁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로 탄생한 것이 실시간 저널리즘이었다.
■ 독립형 인터넷언론의 짧았던 전성기, 그리고 시작된 포털의 시대
독립형 인터넷신문의 전성기는 짧았다. 2003년 무렵부터 네이버, 다음 등 포털이 득세했다. 포털이 방문자 수 면에서 언론사닷컴을 제친 것은 2003년이었다. 그때 이후 한국 인터넷 언론은 ‘생산’보다는 ‘유통’이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체제가 정착됐다.
물론 포털 뉴스 시대가 정착되기까지 몇 가지 변곡점이 있었다. (이 얘기는 2018년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출간한 ‘포털과 언론사 간 조인트벤처 성과와 과제’에 잘 소개돼 있다. 이 보고서 저술 작업엔 기자도 공동 연구자로 참여했다.)
그중 상징적인 사건이 2004년 파란닷컴 사태였다. 파란은 KT 자회사였던 KTH가 만든 포털이었다. 파란은 네이버와 다음이 주도하던 포털 뉴스 시장에 파란을 일으키겠다는 야심을 갖고 출범했다. 출범과 함께 국내 5대 스포츠신문과 독점 계약을 맺었다. 포털에서 인기를 끌던 스포츠, 연예 기사를 독점함으로써 기존 질서를 뒤흔들겠다는 속내였다.
하지만 그 결과는 엉뚱한 방향으로 튀었다. 연예, 스포츠 매체들이 우후죽순 등장한 것. 결국 파란 사태는 “차별화되지 않은 콘텐츠는 쉽게 대체할 수 있다”는 뼈아픈 교훈을 남기면서 조용하게 마무리됐다.
또 다른 변곡점은 2006년 네이버가 도입한 아웃링크 서비스였다. 뉴스 검색 때 각사 사이트로 직접 연결해주는 방식이었다. ‘가두리’란 비판을 받던 네이버가 '언론사와의 상생전략’의 일환으로 도입한 것이 검색 아웃링크 서비스였다.
아웃링크 제도는 ‘좋은 취지가 꼭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는 또 다른 교훈을 남겼다. 지금까지도 인터넷 언론의 아픈 손가락 중 하나로 꼽히는 ‘검색 어뷰징’이 본격화된 계기가 된 때문이다.
이 무렵부터 언론사들의 포털 종속이 가속화됐다. 검색어를 이용한 어뷰징 기사를 통해 트래픽 올리는 재미에 빠진 언론사들은 차별화보다는 ‘눈앞의 실적’에 주력했다. 그 결과 뉴스 생태계 황폐화가 가속화됐다.
그 무렵 지디넷코리아는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고 있었다. 씨넷코리아 체제를 마무리하고 2009년 5월 지디넷코리아로 재창간했다. 그 때부터 해외 IT 뿐 아니라 국내 이슈들을 본격적으로 파고 들면서 국내 대표 IT 미디어로의 도약을 준비했다.
지디넷코리아는 재출범과 동시에 몇 가지 혁신을 시도했다. 당시 매체로는 드물게 동영상 쪽에 많은 공을 들였다. 트위터를 비롯한 모바일 플랫폼도 선도적으로 활용했다. 모바일 앱과 모바일 웹 역시 다른 매체들보다 한발 앞서 구비했다.
■ 뉴스는 완성품이 아니다. 뉴스는 진화 발전한다
지디넷코리아가 변신을 꾀하고 있을 무렵 미디어 세상엔 또 다른 변화 물결이 다가오고 있었다. 2009년 네이버가 도입한 ‘뉴스캐스트’였다. 네이버 첫 화면에 표출되는 기사를 해당 언론사로 바로 연결해주는 제도였다.
수 천 만 이용자가 몰리는 네이버의 위력은 대단했다. 언론사들은 갑자기 몰려든 엄청난 트래픽 폭탄에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트래픽이 곧 수익인 인터넷 언론 생태계에선 더 없이 좋은 선물이었다.
하지만 뉴스캐스트는 검색 아웃링크보다 더 큰 부작용을 몰고 왔다. 언론사들의 노골적인 트래픽 장사가 계속되면서 이용자들의 불만도 커졌다. ‘공론장의 비극’이란 비판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한국 인터넷 언론 생태계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던 뉴스캐스트는 4년 만에 끝났다. 네이버는 2013년 뉴스스탠드로 전환하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이처럼 한국 인터넷언론 생태계는 암울했다. 포털이란 외생 변수에 대한 의존이 너무나 강했다. ‘만지면 만질수록 덧나는 상처’를 연상케 한다.
물론 한국 인터넷 언론 20년 역사가 부정적인 결과물로만 채워져 있는 건 아니다. 지디넷을 비롯한 인터넷 언론들은 100년 동안 이어져 왔던 저널리즘의 전통 문법을 조금씩 허물기 시작했다.
종이신문들은 ‘정지된 상품’이다. 굳이 비유하자면, 흐르는 강물의 ‘특정 지점’을 포착한다. 역동적으로 변화 발전하는 뉴스 흐름을 포착하는 덴 취약할 수밖에 없다.
미국 언론학자 미셸 스티븐스는 아예 “누구나 다 아는 사건을 다음날 아침 1면 톱으로 쓰는 이유가 뭐냐?”고 꼬집는다. 게다가 그렇게 쓴 기사들이 특별히 더 깊이 있지도, 더 정확하지도 않다는 비판도 곁들였다.
인터넷신문은 이런 개념을 허물어버렸다. 진전된 내용을 수시로 업데이트하는 보도 형태가 주류로 떠올랐다. 이런 현상을 포괄하는 것이 '과정으로서의 저널리즘(journalism as a process)’란 개념이다.
이 개념을 들고 나온 건 미국 미디어 전문가인 제프 자비스다. 그는 한국에서 뉴스캐스트가 막 태동하던 2009년 ‘상품 vs 과정 저널리즘’이란 글을 통해 이런 주장을 펼쳤다.
조금 복잡한 개념을 단순화하면 이렇다. 뉴스는 ‘완성품’이 아니라. 끊임 없이 진화 발전하는 유기적인 상품이다.
이를테면 이런 과정이다. 기자들이 취재를 해서 기사를 쓴다고 가정해보자. 주로 업계 관계자들을 취재한다. 하지만 독자들 역시 중요한 취재원이다. 그렇게 해서 기사를 쓴다. 전통 저널리즘의 기사 생산 과정은 여기서 끝난다.
‘과정으로서의 저널리즘'은 여기서 한 발 더 나간다. 뉴스란 완성된 상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꾸준히 새로운 정보를 덧붙인다. 독자들이 잘못을 지적할 경우 바로 반영한다. 별도 기사를 통해 새로운 정보를 덧붙이기도 한다.
인터넷 언론 초기의 ‘무제한 저널리즘’이 산만한 형태의 확산이었다면, 모바일 시대의 무제한 저널리즘은 ‘정제된 확장’이다. 흐르는 강물처럼 쉴 새 없이 변화 발전하는 이슈를 따라잡기 위해선 ‘과정으로서의 저널리즘’이 더 적합한 모델이다.
IT 영역에서도 이 공식은 유효하다. 한 때 종이신문이 IT 이슈를 주도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때의 이슈 경쟁은 하루 단위였다. 흐르는 뉴스보다는 ‘정리된 뉴스’ 중심으로 경쟁이 펼쳐졌다.
하지만 이젠 다르다. 독자들의 뉴스 소비 방식이 달라졌다. 시시각각 흘러가는 정보를 발 빠르게 포착하는 데 더 무게중심이 가 있다.
물론 무분별한 속보 경쟁은 오히려 제살 깎기 경쟁으로 흐를 우려가 있다. 그래서 '과정으로서의 저널리즘’이란 개념이 중요하다. 정신 없이 속보를 뒤따라다닐 것이 아니라, 그 안에 흐르는 맥락을 잡아야 한다. 그래서 단편적인 사실 속에서 거대한 시대 흐름을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 달라진 뉴스 소비 행태…인터넷 언론 앞에 던져진 또 다른 과제
그게 새로운 시대 저널리즘이 안고 있는 숙제다. 지디넷코리아는 이 부분에서 나름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해 왔다.
통신 시장의 각종 이슈부터 인터넷 분야의 빠른 쟁점들, 그리고 컴퓨팅 분야의 느리지만 묵직한 이슈들을 발 빠르게 전해줬다. 모바일 시장의 문법을 바꿔놓은 삼성과 애플 간의 특허 분쟁, 지금도 계속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는 망중립성 같은 굵직한 이슈들도 빠르면서도 깊이 있게 다뤘다.
물론 독자들의 눈높이에 미치지 못하는 부분도 적지 않을 것이다. 때론 타성에 젖어, 또 때론 능력 부족으로 독자들을 실망시킨 적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지디넷코리아는 ‘과정으로서의 저널리즘’이란 거대한 가치를 한번도 방기한 적은 없다. 팩트에 매몰되지 않고, 팩트 너머에 있는 거대한 시대 흐름을 읽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 왔다.
2010년대 들어 한국 인터넷 언론은 또 다른 변화에 맞닥뜨렸다. 가장 큰 변화는 아이폰이 촉발시킨 모바일 혁명이었다. 이와 함께 뉴스 소비의 중심축이 PC에서 모바일로 빠르게 옮겨졌다.
지난 20년 한국 인터넷 언론의 최대 변수였던 포털도 새로운 변화 바람을 몰고 왔다. 네이버는 2013년 뉴스캐스트를 폐지하고 뉴스스탠드를 도입했다.
하지만 더 큰 변화는 그 뒤에 찾아왔다. 네이버는 드루킹 사태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던 2018년 5월 “첫 화면에서 뉴스를 빼겠다”고 선언했다. 결국 1년 뒤인 2019년 4월 모바일 첫 화면에서 네이버가 편집한 뉴스를 뺐다. 대신 이용자들이 구독한 언론사 채널을 전면 노출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모바일 혁명과 네이버의 뉴스 편집 포기는 서로 다른 사건처럼 보인다. 하지만 맥락을 따지고 들어가면 같은 곳에서 만나게 된다. 적극적인 구독 경제 시대의 도래란 새로운 흐름이다. 이런 새로운 흐름은 언론사들에겐 수 십 년간 익숙했던 옷을 벗어 던지고 새로운 옷으로 갈아 입어야 한다는 새로운 과제를 선사했다.
여기서 잠시 언론학 교과서를 들춰보자.
언론의 파워는 ‘게이트 키핑’과 ‘아젠다 세팅’에서 나온다. 어떤 것이 중요한 이슈인지, 어떤 것들을 무시해야 할 것인지 결정했다. 독자들은 매일 아침과 저녁 언론이 어떤 아젠다를 정해주는지 기다렸다. 그게 그날의 여론이 됐다.
하지만 인터넷이 뉴스 소비자를 생산자로 격상시켜주면서 이런 상황이 조금씩 달라졌다. 생산의 문턱을 낮춘 것이다.
그런데 모바일 바람은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추가했다. 생산뿐 아니라 유통의 문턱까지 낮췄다. 독자들의 힘이 좀 더 강해진 것이다. 몇 년 사이에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는 구독 경제 역시 이런 변화의 산물이다.
네이버가 모바일 시작화면에서 뉴스를 폐지하고, 언론사 채널 체제로 전환한 것도 따지고 보면 이런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이처럼 모바일 혁명은 독자들에겐 축복이었다. 하지만 언론사들에겐 만만찮은 또 다른 숙제를 몰고 왔다. ‘보편적인 뉴스’로 속도 싸움을 했던 수많은 언론사들은, 이젠 익숙했던 문법이 달라진 환경에선 잘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처절하게 느끼고 있다.
■ 과정으로서의 뉴스, 지디넷의 해법은?
그게 2020년 한국 인터넷 언론의 현주소다. 인터넷신문이 막 태동하던 2000년과는 또 다른 위기와 기회가 앞에 놓여 있다.
물론 아직 한국 인터넷 언론은 많이 부족하다. 말로는 차별화와 혁신을 외쳤지만, 정작 제대로 된 차별화와 혁신은 보여주지 못했다. 늘 남들의 혁신 부족을 비판했지만, 언론 스스로는 혁신 시도조차 제대로 못 해봤다. 눈앞의 과실에 눈이 멀어, 거대한 흐름을 읽지도 못했다. 20년이란 업력이 쌓였지만, 여전히 20년 전의 걸음마 상태와 차원이 다른 질적인 전환을 보여주지 못했다.
지디넷코리아도 이런 상황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최첨단 IT 영역을 주로 취재했지만, 정작 최첨단 IT 기술을 접목하는 데는 서툴렀다. 독자들의 눈엔 서툴고 성글게 보일지도 모른다.
20번째 생일을 맞으면서 우리들의 현 주소를 다시금 돌아본다. 그리고 처절하게 반성한다.
물론 그 와중에도 지디넷코리아는 많은 의미 있는 변화와 혁신을 모색해왔다. ’선택과 집중’이란 기치 아래 다양한 차별화를 시도했다. 이슈진단 플러스를 전면에 배치하면서 IT업계의 이슈를 발 빠르게 쟁점화했다.
지디넷코리아의 이슈진단은 종이신문과는 다르다. 일회성으로 한 면 채우는 방식이 아니다. 우리는 늘 ‘과정으로서의 뉴스’란 가치를 머리 속에 새기고 있다. 때론 집요할 정도로 같은 이슈들의 흐름과 발전 상황을 포착해서 전해준다.
창간 특집으로 기획한 ‘문재인 정부 혁신성장 정책 3년 성적표’가 대표적이다. 우리는 지난 해 2년 성적표를 매겼다. 그걸로 끝내지 않고 올해 또 다시 성적표를 매겼다. 1년 사이에 문재인 정부의 IT 정책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한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내년에 또 다시 문재인 정부 혁신성장 정책에 대한 성적표를 또 매길 것이다. 이 기획은 문재인 정부 임기가 끝날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다른 기획들도 마찬가지다. ‘일회성 보여주기식 기획’보다는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기획을 통해 정책 변화와 사회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 그게 ‘과정으로서의 뉴스’를 통해 지디넷이 이루고자 하는 목표다.
모바일 공간은 ‘구독’ 문법이 작용하는 플랫폼이다. 따라서 우리도 달라진 문법에 맞게 전열을 정비해야 한다.
구독시대엔 ‘차별화’가 핵심 경쟁 포인트다. 하지만 차별화는 추상 명제가 아니다. ‘차별화, 차별화’를 외친다고 해서 되는 문제가 아니다. 어떤 쟁점을 어떻게 차별화할 것인지 냉정한 성찰과 분석이 필요하다.
또 다른 과제는 기자 개인 브랜드 육성이다. 이젠 매체 단위 기사 소비 못지 않게 기자 개인을 구독하는 독자도 늘고 있다.
종이신문 환경에선 ‘매체가 있고 기자가 존재하는’ 시스템이 지배했다. 기자들은 매체의 부속품에 불과했다.
모바일 환경에선 이런 상식을 깰 필요가 있다. 스타 기자를 적극 육성하고, 또 지원해주는 시스템이 중요하다. 지디넷코리아는 이런 변화를 선도하기 위해 기자 브랜드 육성, 더 나아가 스타 기자 육성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동영상을 비롯한 콘텐츠 형식 다양화 역시 우리 앞에 놓여 있는 또 다른 과제다. 지디넷코리아는 이미 10년 전 ‘동영상 퍼스트’를 외친 적 있다. 하지만 그 때는 상황이 무르익지 않아서 큰 성과를 내진 못했다.
이제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텍스트 못지 않게 동영상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좀 더 체계적으로 대처할 계획이다.
■ 포기함으로 좌절할 것인가, 도전함으로써 비약할 것인가
갈 길은 멀고 험난하다. 코로나19 이후 미디어 환경은 더 어려워지고 있다. 지금까지 경험했던 것보다 더 힘들 수도 있다.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다. 성찰하고 실천하는 매체에겐 또 다른 도약의 계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박경리 선생의 대하소설 ‘토지’를 좋아한다. 내용 뿐만이 아니다. 작가가 엄청난 시련 끝에 이뤄낸 결실이어서 더 좋다. 실제로 ‘토지’를 쓰던 당시 작가는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작가 스스로 “승리 없는 작업이었다. 끊임없이 희망을 도려내어 버리곤 하던 아픔의 연속이 내 삶이었는지 모른다”고 토로할 정도다.
서문에 그 내용이 잘 담겨있다. ‘토지’ 서문 마지막 단락에 이렇게 적었다.
“앞으로 나는 내 자신에게 무엇을 언약할 것인가. 포기함으로써 좌절할 것인가, 저항함으로써 방어할 것인가, 도전함으로써 비약할 것인가. 다만 확실한 것은 보다 험난한 길이 남아 있으리라는 예감이다. 이 밤에 나는 예감을 응시하며 빗소리를 듣는다.”
작가 박경리는 ‘도전함으로써 비약하는’ 길을 택했다. 그 결과 그는 한국문학사의 커다란 봉우리로 우뚝 섰다. 최악의 상황에서 최고 성과를 이뤄냈다.
우리도 ‘도전함으로써 비약하는’ 새로운 매체가 되겠다고 다짐한다. 그게 20년 동안 지디넷을 사랑해준 많은 독자들에게 보답하는 길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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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험난한 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라도, 느리지만 꾸준하게 전진해나갈 것이다. ‘긴호흡 강한 걸음’으로 힘차게 전진해 나갈 것이다.
그게 창간 20주년 기념일을 맞아 독자들에게 드릴 수 있는 우리의 약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