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PC 관련 업체들이 예상보다 일찍 다가온 '수요 절벽'에 당혹감을 금치 못하고 있다. 이 업체들은 "4월 말-5월 초 '황금 연휴'를 기점으로 완제품과 조립PC, 주변기기 등 모든 영역의 판매량이 급감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노트북 판매량이 이달 초순 이후 급격히 하락한 한편 PC방이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으며 조립PC의 신규·업그레이드 수요도 전년 대비 10% 수준으로 줄었다. 대부분의 공공기관이 1분기에 PC 교체를 조기 시행하며 하반기 조달 시장 규모도 감소했다.
■ 노트북 수요 급감…"팔아도 밑진다"
노트북은 코로나19의 '블루칩'으로 꼽혔다. 시장조사업체 GfK는 지난 달 말 "교육부가 온라인 개학 방침을 발표한 3월 말 노트북 매출은 480억원, 판매량은 4만 3천대로 집계됐고 전년 동기 대비 매출 성장률도 89%에 이른다"고 밝혔다.
그러나 5월 중순 이후 노트북 수요는 크게 감소했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PC 제조사 한 관계자는 "정확한 수치는 공개하기 어렵지만 전통적인 비수기에 속하는 지난 해 같은 기간보다 더 심각하다"고 털어놓았다.
노트북 부품 조달에 필수적인 중국 내 공급망이 여전히 코로나19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또 다른 중견 PC 제조사 관계자는 "평소에는 절대 수급에 문제가 없었던 부품들이 문제를 일으켜 생산이 지연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런 생산 지연이 현금 유동성을 불러온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 대형 유통사는 지난 4월 오픈마켓 할인 행사를 통해 하루만에 수천여 대의 노트북을 판매하기도 했다. 그러나 생산이 지연되며 실제 소비자가 제품을 받는 데는 한 달 이상이 걸렸다.
이 관계자는 "오픈마켓은 소비자에게 실제로 제품을 인도해야 제조사에 대금을 지급한다. 이 때문에 생산이 지연되면 비싼 항공편으로 제품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항공편 편수도 줄고 운임도 올랐다. 결국 '밑지는 장사'지만 어쩔 수 없다"고 밝혔다.
지난 주부터 지급된 정부 긴급재난지원금 역시 PC 수요와 무관하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일부 소비자가 직접 사무실까지 찾아와 오프라인 카드 결제로 노트북이나 PC 부품을 샀다는 언론 보도도 봤지만 이런 사람이 대체 몇 명이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 "PC방 수요, 예년 10% 수준"
조립PC 시장에서 고성능 프로세서와 그래픽카드의 주요 수요처로 꼽혔던 PC방에도 빨간 불이 켜졌다. 코로나19 전파에 취약한 다중이용시설 중 하나로 PC방이 꼽히면서 매출 악화로 인한 폐업이나 휴업이 줄을 잇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3월 중순 서울시 발표에 따르면 서울시내 PC방 4천여 곳 중 1/3 가량이 휴업이나 폐업중이었다. PC 핵심 부품 유통사 관계자는 "직원 인건비와 임대료 등 고정비용 지출이 심화된 지금은 이보다 더 많은 곳이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예비 창업자들도 발길을 돌리고 있다. 또다른 유통사 관계자는 "PC방 프랜차이즈 업체들은 각급 학교 방학을 앞둔 5월 말에서 6월 초에 보통 2-3천 대 가까이 고성능 PC를 사들였다. 그러나 올해는 그 10% 미만인 월 200대 수준으로 감소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PC방 창업을 고려하던 사람들이 줄어드는 데다 대규모 업그레이드를 시행할 만큼 여력이 있는 PC방도 적다. 게임이 대규모로 PC 수요를 견인하던 예년 흐름은 올해는 안 통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 "조달 시장도 규모 급감할 것"
데스크톱PC 완제품 수요를 감당하던 조달 시장 상황도 녹록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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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IDC에 따르면 지난 1분기 공공 부문의 PC 출하량은 데스크톱은 14만 6천대, 노트북은 6천대로 총 20만 대 수준이다. 한국IDC 관계자는 "윈도10 전환을 위해 잔여 PC 대부분을 1분기에 교체한 결과 출하량이 지난 해 대비 60% 이상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들 조달 계약이 1분기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연간 40만 대 내외인 국내 조달 시장을 고려하면 한 해 절반 물량이 1분기에 쏟아졌다. 한 국내 중견 제조사 관계자는 "정부가 조달 물량을 늘리지 않는다면 한 분기당 6만 대 수요를 두고 출혈 경쟁이 예상된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