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사업자들과의 역차별 해소에 나서야할 정부와 국회가 국내 인터넷 사업자들의 숨통만 더 조이는 법안 개정을 졸속 처리해 업계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특히 통신재난을 대비해 통신사에 대한 규제 수준을 상향하는 방송통신발전기본법 개정안에 돌연 부가통신사업자까지 대상에 포함시켜 논란이 더욱 확산되는 분위기다. 법안 발의 과정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입법예고나 업계 의견 수렴 등이 생략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또 국내외 기업 간 망 이용료 역차별 이슈를 해소한다는 명분으로 국내 인터넷 사업자들에게 더 큰 피해를 끼칠 우려가 큰 법안과, n번방 사태를 방지한다는 명분으로 국내 플랫폼 사업자에게만 책임 의무와 규제를 가하게 되는 실효성 없는 법안에도 쓴 소리가 높다.
■ “정부도 문제 소지를 알면서 중복규제하려는 거 아닌가?”
지난 7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이하 과방위) 전체회의에서는 인터넷 규제 3법으로 불리는 ▲전기통신사업법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방송통신발전 기본법 각 일부개정법률안과 시행령이 통과됐다.
이 중 특히 더 문제가 커지고 있는 법안은 방송통신발전기본법 개정안이다.
인터넷 업계에 따르면 지난 6일 열린 법안2소위에 상정된 해당 개정안 2건은 통신재난을 대비해 통신사에 대한 규제수준을 상향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돌연 심사 안건에 오르지 않았던 부가통신사업자도 대상에 넣는 내용이 사전 협의 없이 심의과정에서 추가됐다. 그 결과 네이버와 같은 데이터센터 운영사업자 등 부가통신사업자도 통신사와 같은 수준의 규제를 적용받게 될 전망이다.
데이터 중요성이 높아짐에 따라 방송통신재난으로 인한 데이터센터의 데이터 소실이 기업과 소비자에 미칠 피해가 있으니, 이를 정부가 지도 및 점검하는 등 그 책임을 사업자에게 지우겠다는 것이다. 만약 시정명령을 따르지 않을 시에는 매출액 100분의 3 이하의 과징금, 자료 제출 거부 또는 전담인력 미운용 시 3천만원 이하의 과태료도 물게 된다.
이에 인터넷 업계는 입법 진행 과정에서 갑자기 부가통신사업자가 포함됨으로써 절차상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관련업계 의견수렴 등 기본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것인데, 이는 지난 7일 과방위 전체회의에서도 문제가 불거졌다.
이상민 위원은 과기부 측에 “방송통신발전법에 데이터센터를 포함해 규제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보나. 사업자들은 클라우드 등 데이터산업이 4차산업의 핵심인데 규제를 과도하게 하면 국내에서 이탈 현상이 있을 수 있다는 지적이 있는데 (방송통신발전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데이터 산업 육성이 아닌 규제를 주는 거 아닌가”라고 따졌다.
또 “시행령을 검토 후에 법을 제정해야지 과도한 규제, 중복 규제라는 논란이 있는데 시행령을 논의하고 소위에서도 제시됐어야 하지 않나”라고 지적했다.
이에 과기부 담당자는 “시행령을 만들면서 업계 의견을 수렴하겠다. 시행령 중복 규정 사업자를 뺄 수 있도록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그러자 이 위원은 “사업자 측으로부터 문제제기를 받고 있는데 그런 염려나 우려가 불식될 수 있도록 시행령을 제시했어야 한다”면서 “나중에 마련하겠다고 하면 안 된다. 문제점에 대한 시행령의 방향이나 구체적인 내용을 묻는 건데, 그 다음은 우리 알아서 할 테니 상관하지 말라는 건가”라고 비판했다.
또 같은 지적에 최기영 과기부 장관이 “문제의 소지가 있음을 파악했고, 검토가 필요할 것 같다. 큰 사안이 아님으로 시행령 단에서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고 답하자 이 위원은 “장관 말은 문제가 있다는 건데, 그렇다면 국회에서 입법적 확신이 들 수 없는 것 아닌가”라고 꼬집어 말했다.
이어 “정부도 문제의 소지를 인지하고 있다는 건 중복규제, 과도한 규제라는 사업자 입장에 힘을 실어주는 것 밖에 안 된다. 법안에 숙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그는 방송통신발전법 개정안에 예정돼 있지 않은 내용이 소위에서 절차에 맞지 않게 들어갔다고도 지적했다. 통신재난을 대비하고자 통신사에 대한 규제 수준을 상향하고자 한 방송통신발전기본법 개정안에 돌연 부가통신사업자까지 대상에 포함시킨 것은 문제란 것이다.
이상민 위원은 “소위 과정에 느닷없이 끼워 넣기 해서 소위 의원 몇 명에게 확인했더니 서면도 확인 안 하고 구술로 확인해서 법안이 만들어졌다고 들었다”며 “문재인 대통령이 데이터산업 육성한다는데, 정부 방침과 역행하는지 안 하는지 검토 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인터넷 업계는 “헌법과 국회법에 따른 형식적, 절차적 요건을 위반하고 또한 법률에 규정해야 할 중요 사항을 모두 대통령령에 포괄적으로 위임하는 등 위헌적 요소가 다분하다”면서 “체계적으로 중복 규제에 해당하는 규제의 양산은 국민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하기는커녕 관련 산업에 악영향만 미칠 뿐”이라고 역설했다.
■ “말로만 역차별 대책...실상은 역차별 심화법”
인터넷 업계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에도 강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
일정 규모 이상의 부가통신사업자에게 전기통신서비스 제공을 위한 서비스 안정수단 확보 의무를 부과하는 이 개정안의 취지는 글로벌 대형 콘텐츠 제공사(CP)의 망 비용 부담 이슈와 관련해 국내 사업자와의 역차별을 해소하기 위함이다.
주요조항은 부가통신사업자들에게 이용자에게 편리하고 안정적인 전기통신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서비스 안정수단의 확보, 이용자 요구사항 처리 등의 조치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다. 부가통신사업자의 이용자보호업무 및 자료제출과 관련한 국내대리인 지정을 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인터넷 업계는 “인터넷사업자들이 그동안 이야기한 역차별 사례는 인터넷관련 거의 대부분 규제가 해외사업자에게는 제대로 집행되지 못함을 이야기 한 것인데 대책이라며 나온 법안이 역차별을 심화시키고 있다”면서 “망 품질 의무(안정수단확보의무)는 기간통신사업자의 본연의 의무임에도 이를 CP에 의무 부과할 수 있도록 법령에 명시함으로써 스타트업을 포함한 모든 CP에게 부담을 지우게 된다”고 비판했다.
또 “글로벌 기업에 대한 규제 의도라며 전체 CP를 대상으로 안정수단확보 의무를 부과하면, 이는 국내 IT 기업들에게만 족쇄로 작용해 결국 목적달성 가능성은 현저히 떨어지고 역차별을 심화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즉 명분은 망이용료와 관련해 국내외 인터넷 기업 간 역차별 해소인데, 정작 관련 규제는 또 다시 국내 사업자만 더 강한 규제를 적용받는 부작용만 더 커진다는 주장이다.
인터넷 업계는 “망 비용 이슈와 직접 연관된 전기통신사업법은 해외 사업자들에게 망 비용을 받기 위해 모든 CP에게 망 안정성이란 의무를 부과해 결국 이미 망 비용을 내고 있는 국내 CP들에게 추가 비용을 내도록 만들 것”이라면서 “정작 해외사업자에게는 비용을 받기 어려운 상황은 개선될 가능성이 낮다. 망 비용관련 이번 법안은 역차별 해소가 아니라 명백히 역차별심화법”이라고 재차 비판했다.
■ “n번방 방지법은 이메일, 비공개 카페, 메신저 들여다보란 얘기”
이 밖에 인터넷 업계는 텔레그램 등 해외 메신저 서비스를 통해 음란물이 유통된 ‘n번방’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한 법안인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에도 반대 입장이다.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그 방법이 틀렸다는 것이다.
본회의 통과를 앞둔 해당 법안은 ▲국내외 정보통신사업자들이 디지털 성범죄물 유통방지 책임자를 의무적으로 두고 ▲기술을 적용해서 불법 음란물을 탐지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 법안에 대해 인터넷 업계는 불법촬영물의 유통 방지를 위해 사업자가 인공지능(AI) 기술 등을 통해 모든 이용자의 게시물 및 콘텐츠(이메일·개인 메모장·비공개 카페 및 블로그·클라우드·메신저 등) 전체를 들여다봐야만 하는 상황이 만들어진다는 지적이다. 이로 인해 이용자들의 기본권 침해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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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문제가 된 텔레그램 같은 외산 서비스에는 관련 법안을 적용하고 책임을 묻기 어려워 결국 국내 기업만 중복 규제를 받고 역차별 받게 된다는 것이 인터넷 업계과 전문가들의 공통된 입장이다.
한편 여야는 이달 20일 20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를 열기로 합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