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 리브라, 중앙은행 디지털화폐 품는다

법정화폐 연동 스테이블 코인 발행하고 대대적 구조 변화

컴퓨팅입력 :2020/04/17 17:54    수정: 2020/04/18 13:46

페이스북 주도의 디지털화폐 프로젝트 '리브라'가 구조를 완전히 뜯어 고쳤다. 리브라USD, 리브라EUR 등 단일 법정화폐와 직접 연동되는 복수의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고, 이 스테이블 코인들을 '통화 바스킷' 안에 담아 가치를 담보하는 자체 암호화폐 '리브라 코인'을 만들겠다는 게 새로운 계획이다.

각 법정화폐 연동 스테이블 코인은 향후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로 대체 가능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CBDC를 리브라 네트워크에 포용하기 쉬운 구조가 만들어졌다.

세계 금융 당국과 중앙은행의 견제로 원안대로 리브라 발행이 불가능해지자, CBDC를 품는 구조로 설계를 변경한 것으로 풀이된다.

16일(현지시간) 리브라 운영 연합체인 '리브라 어소시에이션'은 리브라 프로젝트의 설계를 변경한 새로운 백서를 공개했다.

새 리브라 백서에 따르면 리브라 어소시에이션은 미국달러(USD), 유로(EUR), 영국파운드(GBP), 싱가포르달러(SGD)에 각각 연동된 복수의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할 계획이다.

각 법정화폐와 연동된 스테이블 코인뿐 아니라 독립적인 가치를 지닌 '리브라 코인'도 함께 발행된다. 이 리브라 코인의 가치를 담보할 리저브에 스테이블 코인들이 포함될 예정이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가 지난해 미국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 '리브라 청문회' 출석해 답변하고 있다. (사진=유튜브 생중계 캡처)

백서는 리브라 코인을 "리브라 네트워크에서 사용 가능한 단일 화폐 연동 스테이블코인의 '디지털 종합물(a digital composite)' 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당초 리브라 코인의 가치를 담보하는 리저브 구성이 각국의 법정화폐에서 단일 법정화폐와 연동된 스테이블 코인들로 바뀐 것이다.

지난해 6월 리브라 프로젝트가 처음 공개됐을 당시 페이스북과 리브라 어소시에이션은 리브라를 "가치 변동폭이 적은 디지털화폐"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가치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장치로 미국 달러, 유로, 영국 파운드, 일본 엔, 싱가포르 달러 등 법정화폐와 저위험 국가 채권으로 리저브(지급준비금)을 구성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리브라 어소시에이션이 이렇게 구조를 바꾼 이유는 명확하다. 리브라 코인이 법정화폐와 경쟁하는 주권화폐가 아니라, 법정화폐를 보완하는 수단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해야 세계 규제당국의 견제를 완화하고, 리브라 코인 발행이 가능해질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리브라 네트워크에서는 쓰이는 단일 법정화폐 연동 스테이블 코인은 CBDC로 대체 가능하다. 예컨대 유로와 연동된 스테이블코인 '리브라EUR'은 유럽중앙은행의 '디지털유로'로 변경되는 식이다.

백서는 이번 설계 변경으로 "CBDC를 원활하게 통합될 수 있는 명확한 경로"가 만들어졌다고 설명하고 있다.

결국, 리브라 네트워크 안에 CBDC를 포용하기 쉬운 구조를 만든 게 이번 설계 변경의 핵심이다.

리브라 프로젝트는 세계 각국의 금융 규제 당국과 중앙은행의 집중 견제를 받고 있다. 특히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등 주요 통화국들은 페이스북 같이 전세계 이용자를 보유한 민간기업이 자체 화폐를 발행하면 각국의 통화주권에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적절한 규제가 마련되기 전까지 발행을 막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리브라 어소시에이션은 CBDC 포용 이외에도, 규제 당국 친화적인 변화를 새 백서에 다수 포함시켰다.

리브라 어소시에이션은 자금세탁방지를 관할하는 금융 당국의 승인 받지 않은 업체가 만든 서비스에서 리브라를 이용하지 못하게 할 방침이다.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가 지난해 6월 공개한 지침에 따라 회원국들은 암호화폐 사업자에 대한 라이선스 발급 또는 등록제를 시행해야 한다. 이런 규정에 따르지 않는 업체일 경우 거래를 제한하겠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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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리브라 블록체인을 지금처럼 계속 허가받은 업체만 네트워크 운영에 참여할 수 있는 '폐쇄형 블록체인'으로 유지할 계획이다. 첫 번째 백서를 냈을 때만 해도 리브라 네트워크를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처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퍼블릭 블록체인으로 전환한다는 계획이었다.

이런 변화를 두고 다수의 IT 전문 외신들은 "리브라를 이제 블록체인 프로젝트라고 부르기 어려워졌다"거나 "리브라가 중요한 측면에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암호화폐와 더는 비슷하지 않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