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컴퓨터 노벨상' 튜링상과 스티브 잡스의 유산

캣멀과 한라한, 그리고 픽사의 추억

데스크 칼럼입력 :2020/03/19 17:13    수정: 2020/10/05 13:45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스티브 잡스는 괴로웠다. 애플 내 입지가 갈수록 위축됐다. 존 스컬리는 자신을 쫓아낼 궁리만 하고 있었다. "평생 설탕물이나 팔다가 끝낼 거냐"며 직접 영입했던 인물이 오히려 친위 쿠데타를 도모하고 있었다.

그 때가 1985년이었다.

그렇게 하릴없이 시간만 보내고 있던 어느 날. 한 친구가 잡스의 손을 잡아 끌었다. 그리곤 루카스필름으로 데려갔다. '스타워즈'로 유명한 조지 루카스 감독이 만든 영화 제작사. 그들은 그 중에서도 컴퓨터 사업부문을 방문했다. 그곳 운영 책임자와 만났다.

'토이 스토리'를 만든 에드 켓멀(왼쪽)과 스티브 잡스(중간), 그리고 존 레스터 감독이 함께 포즈를 잡았다. (사진=픽사)

강한 인상을 받았다. 그곳에선 컴퓨터 기술과 창의력의 만남이 이뤄지고 있었다. 잡스 자신이 늘 꿈꾸던 그림이었다. 인수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그런 잡스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조지 루카스 감독이 이혼 소송에 휘말린 것. 돈이 필요했던 그는 루카스필름 중 컴퓨터 운영부문을 매물로 내놨다.

소식을 들은 잡스가 나섰다. 친구 덕분에 알게 된 컴퓨터 부문 책임자에게 의향을 내비쳤다. 협상 끝에 1천만 달러에 인수하기로 했다. 조지 루카스에게 500만 달러, 별도 투자금 500만 달러를 내놓는 조건이었다.

월터 아이작슨이 쓴 ‘스티브 잡스’ 전기에 나오는 얘기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컴퓨터 그래픽과 애니메이션 전문 제작사인 픽사다.

■ 튜링상 받은 두 과학자, 첫 만남 이뤄준 스티브 잡스의 '픽사'

루카스필름 컴퓨터 부문은 컴퓨터 개발 부서와 애니메이션 제작 부서로 구성돼 있었다. 컴퓨터 개발 부문에선 '픽사 이미지 컴퓨터'를 만들었다. 픽사란 회사명은 여기서 따 왔다.

잡스는 픽사 회장을 맡았다. 일상적인 회사 운영에는 관여하지 않기로 했다. 루카스필름 컴퓨터 부문 책임자를 사장에 임명하면서 회사 운영을 맡겼다. 한 해 전 친구 손에 이끌려 루카스필름을 찾았다가 안면을 트게 된 인물. 그가 바로 에드 캣멀이었다.

캣멀은 미국 계산기학회(ACM)가 18일(현지시간) 발표한 튜링상 수상자로 이름을 올렸다. 스탠퍼드대학 교수인 팻 한라한과 공동 수상. 둘은 100만 달러 상금을 나눠 갖게 됐다. 물론 '컴퓨팅 분야 노벨상 수상자'란 명예도 함께 누리게 된다.

그런 캣멀과 한라한이 처음 만난 곳이 바로 픽사였다. 튜링상 수상 소식을 들으면서 스티브 잡스를 떠올린 건 그 때문이다.

물론 캣멀과 한라한이 튜링상을 받는 데 스티브 잡스가 직접 기여한 건 아니다. 하지만 ‘기술과 창의성의 결합’이란 픽사의 초기 비전은 이들의 작업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 비전 덕분에 ‘컴퓨터 그래픽 혁명’의 기틀을 좀 더 든든하게 다질 수 있었다.

그 얘기를 조금 더 깊이 파고 들어보자.

영화 토이스토리4. (사진=디즈니/픽사)

픽사를 설립한 잡스와 캣멀은 애니메이션 제작 쪽에 관심을 갖게 된다. 자신들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뽐내기 위해선 멋진 작품이 필요하다는 데 의기투합했다.

캣멀은 대학 재학시절부터 컴퓨터 그래픽(CG)에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잡스는 매킨토시로 컴퓨터 혁명의 불씨를 지핀 인물이다. ‘창의력과 기술의 만남’이라 부를 만했다. 여기에 단편 애니메이션 제작 경험을 갖고 있던 존 레스터가 합류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토이 스토리’다. ‘토이 스토리’는 기술과 창의력의 결합이란 픽사의 비전이 잘 녹아든 작품이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세계 최초로 컴퓨터로 만든 장편 영화다. 영화사에 CG란 새로운 영역을 만들어냈다.

창의력 면에서도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 1995년 11월 22일. 영화가 개봉되자마자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미국에서만 1억 9천200만 달러, 전 세계적으로 3억 5천7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 한라한이 만든 렌더맨, CG와 컴퓨터 그래픽 역사 바꿔

하지만 ‘토이 스토리’를 만들어낸 건 이들만이 아니었다. 픽사에선 3년 남짓 근무했던 한 과학자의 공이 컸다. 팻 한라한. 지금은 스탠퍼드대학 교수로 재직 중인 인물이다. 한라한도 캣멀과 함께 튜링상 공동 수상자로 이름을 올렸다.

한라한은 ‘토이 스토리’가 나오기 훨씬 전인 1989년 픽사를 떠났다. 하지만 그가 개발한 ‘렌더맨(RenderMan)’이란 소프트웨어가 없었더라면 사상 첫 3D 애니메이션인 ‘토이 스토리’가 탄생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직접적인 기여도 면에선 한라한이 오히려 캣멀에 앞선다.

그 얘기를 하기 위해선 시간을 1986년으로 되돌려야 한다.

스티브 잡스 회장과 에드 캣멀 사장이 이끌던 픽사에 야심찬 젊은이가 합류했다. 위스콘신대학을 졸업한 그의 이름은 팻 한라한이었다. 한라한은 캣멀 사장 밑에서 최고아키텍처(chief architect)로 일했다. 3년 남짓 재직했던 그는 ‘렌더맨’이란 명품 소프트웨어를 만들어냈다.

팻 한라한. (사진=스탠퍼드대학)

렌더링이란 ‘2차원 화상에 광원, 위치, 색상 등으로 사실감을 불어넣어서 3차원 영상을 만드는 것’을 뜻하는 컴퓨터 용어다. 렌더맨은 바로 그 역할을 했다.

한라한은 3D그래픽 작업의 이론적 토대를 쌓는 데도 많은 역할을 했다. 3D 그래픽을 실감나게 만들기 위해선 그림자와 빛을 적절하게 배치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부분에서 한라한은 절대적인 기여를 했다.

ACM은 튜링상 수상자를 발표하면서 “한라한은 1990년 시그래프에서 ‘그림자와 빛 계산을 위한 언어(A Language for Shading and Lighting Calculation)’란 논문을 발표했다”고 강조했다.

한라한은 1989년 픽사를 떠나 프린스턴대학 교수로 부임했다. 그리고 5년 뒤인 1994년 지금 몸 담고 있는 스탠퍼드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그가 픽사에 몸담는 3년 동안 만들어낸 렌더맨과 관련 언어들은 컴퓨터 그래픽과 3D 애니메이션이란 새로운 장르의 밑거름이 됐다. 특히 영화 시장에 미친 영향은 절대적이었다.

렌더맨은 최근 아카데미 시각효과상을 받은 영화 47편 중 44편에 사용 됐을 정도다.

그런데 한라한은 왜 3D 그래픽용 소프트웨어에 렌더맨이란 명칭을 붙였을까? 그는 테크크런치와 인터뷰에서 이 질문에 대해 답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에 온 뒤 우연히 제론 레이니어를 우연히 만났다. 그도 픽사에 오곤 했다. 당시 그는 가상현실(VR)에 대한 얘기로 날 매료시켰다. 그 무렵엔 워커맨, 디스크맨 같은 것들을 갖고 있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제론은 내게 “진짜 필요한 건 렌더맨이다”고 말했다. 허리띠에 차고 안경을 쓰면 믿기 힘든 장면을 자동으로 보여줄 수 있도록.”

3D 이미지는 VR과 AR 산업의 밑거름

이렇게 탄생한 렌더맨은 컴퓨터 그래픽이란 새로운 영역을 만들어냈다. ACM 역시 이런 부분을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ACM이 캣멀과 한라한에게 튜링상을 준 것은 이런 과거의 기여 때문만은 아니다. 3D 컴퓨터 이미지는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 등에도 핵심 역할을 했다. 비디오 게임 산업을 키워내는 밑거름 역할도 담당했다.

ACM은 “컴퓨터 그래픽 인터페이스(CGI)는 영화 제작과 감상 경험을 바꿔놨을 뿐 아니라 엔터테인먼트 산업 전체에 광범위한 영향을 끼쳤다”고 강조했다.

에드 캣멀. (사진=픽사)

하지만 시작은 쉽지 않았다. 한라한은 테크크런치와 인터뷰에서 “처음 시작할 땐 그래픽이란 존재조차 없었다”고 말했다. 대학원에서 그래픽을 공부하려고 했지만, 가르쳐줄 교수도, 개설된 강좌도 없었다는 것이다.

캣멀 역시 “CG가 새로운 아키텍처와 언어가 될 것이란 생각조차 못했다”면서 “하지만 앞으로 전진하는 기본적인 도구가 될 것이란 믿음은 갖고 있었다. 그렇게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말했다.

하지만 둘이 무엇보다 의미를 두는 건 픽사 시절의 비전을 그대로 실현했다는 점이다. 창의성과 기술의 행복한 만남. 스티브 잡스와 함께 공유했던 바로 그 비전이다.

캣멀은 테크크런치와 인터뷰에서 “그렇게 오랜 기간 동안 기술과 예술의 균형을 이룬다는 픽사의 환경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 가장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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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려는 예술가들. 보통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것들을 만드는 작업을 하는 기술자들. 그 둘 간의 관계를 확립하는 게 가장 가치 있는 일이었다는 설명이다.

이런 꿈은 이들과 함께 픽사를 만들었던 스티브 잡스가 오랜 기간 품고 있던 꿈이기도 하다. 올해 튜링상에서 유독 스티브 잡스의 체취가 느껴지는 건 그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