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소설 '페스트'와 코로나19, 그리고 언론의 공포 조장

차분하고 공정한 접근 아쉬워

데스크 칼럼입력 :2020/02/27 11:08    수정: 2020/10/05 13:49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그 병의 첫 고비는, 라디오에서 사망자 수가 매주 몇 백명이라는 식으로 보도하지 않고 하루에 92명, 107명, 120명이라는 식으로 보도한 시점이 계기였다고 지적한다.” (153쪽)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를 다시 잡았다. 대학 시절 문고판으로 읽은 지 수 십 년만이다. 새삼 케케묵은 고전을 꺼낸 건 코로나19 때문이다. ‘페스트’의 모티브가 지금 우리 현실과 비슷한 것 같아서다.

소설 앞부분에서 흥미로운 구절과 만났다. 언제부터인가 오랑 시 당국은 페스트 사망자 수 누계 발표를 멈췄다는 내용이다. 오랑시는 소설의 배경이 되는 도시다.

주인공인 의사 베르나르 리유는 교묘한 숫자 놀음을 통해 재앙을 감추려한다고 지적한다.

“신문과 당국은 페스트에 관해서 교묘한 속임수를 쓰고 있다. 그들은 130이 910에 비해서 훨씬 적은 수라는 점에서 페스트보다 몇 점 더 앞지른 것이라고 상상하는 모양이다.” (153쪽)

(사진=뉴스1)

■ 확진자 급증, 좀 더 찬찬히 따져봐야

코로나19 때문에 전국이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다. 잠잠해지는 듯하던 코로나19가 최근 며칠 사이에 빠른 속도로 확산되는 모양새다. 확진 환자가 1천500명을 넘어섰다. 많은 기업들이 재택근무로 전환했다. 아예 통 크게 유급휴가를 준 기업도 있다.

혼란이 커지면서 각종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언론들은 정부의 초기 대응이 잘못된 것 아니냐는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중국인 출입금지’ 조치를 내리지 않은 게 잘못이란 공세도 만만치 않다. 야당의 공세에 언론들이 화답하는 모양새다.

물론 정부를 비판하는 건 언론과 야당의 임무다. 그래야 정부도 더 긴장한다. 특히 언론의 역할은 중요하다. 언론의 따끔한 비판보다 더 좋은 약은 없다. 그 약은 정부의 건강을 지탱해주는 밑거름이다.

하지만 비판이 비난이나 선동으로 바뀔 땐 독약이 된다. 코로나19 사태 보도를 지켜보면서 그런 걱정이 스멀스멀 고개를 든다.

확진자 수를 둘러싼 보도가 대표적이다. 신천지를 중심으로 급격하게 확진자 수가 늘어나면서 정부의 무능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일부 야당의원은 대통령 탄핵을 거론한다. 청와대 국민 청원 수가 100만명에 육박한다. 언론들은 이런 ‘팩트’를 경마중계하듯 속속 전해준다.

그런데 외신들이 전하는 소식은 사뭇 다르다. 타임은 한국에서 확진자가 늘어난 것은 ‘개방’성과 높은 언론 자유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워싱턴포스트 보도는 좀 더 구체적이다. 확진자가 늘어난 건 그만큼 검사자 수가 많았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한국이 4만6천명 이상 검사하는 동안 미국은 400명 남짓 검사했다. 일본의 검사자 수도 1천800명 내외다. 검사자 대비 확진자 비율은 2.7%로 가장 낮다. 일본과 미국은 10%를 넘는다고 한다.

(사진=뉴스1 이은현 디자이너)

조지메이슨대학 한국분교 방문학자인 안드레이 아브라하미안 교수의 평가는 꽤 설득력이 있다. 아브라하미안 교수는 타임과 인터뷰에서 한국에 코로나19 확진자가 많은 건 세 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첫째. 뛰어난 진단 능력.

둘째. 언론 자유.

셋째. 민주적으로 설명하는 시스템.

한 마디로 빠르게 진단한 뒤, 그 숫자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다는 평가다. 최근 상황에 대해 굉장히 비판적인 국내 언론들과 달리 외신들은 대체로 비슷한 평가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외신들의 평가가 절대적으로 옳다고 주장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위기 상황일수록 싸잡아서 ‘무능하다’고 하는 건 크게 도움이 안 된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정확한 상황을 전해준 뒤, 그 상황을 제대로 비판해야 한다. 그게 언론의 책임성이고 공정성이다.

지금 상황에선 왜 확진자가 늘었는지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매일 전해주는 숫자의 맥락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정부가 손놓고 있기 때문이라면 그 부분을 따끔하게 지적하는 게 맞다.

반면 분모(검사 모집단)가 커져서 분자(확진자)가 함께 늘어난 것이라면 그 부분도 제대로 전해줘야 한다. 이럴 때 필요 이상의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건 자제해야 한다. 혼란만 더 부추기기 때문이다.

■ "숫자는 정직하다. 다만 거짓말쟁이는 숫자로 말한다"

다시 ‘페스트’ 얘기로 돌아가보자.

‘페스트’에서 오랑 시 당국은 가능하면 사태를 감추려 한다. ‘페스트’란 진단을 내릴 때까지도 계속 머뭇거린다. 페스트 피해자 숫자도 가능하면 적게 보이려 노력한다.

최근 우리 질병관리본부가 보여주는 모습은 조금 다르다. 매일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다. 의심환자가 나올 때마다 성실하게 동선을 파악하고 있다. 최소한 그 부분은 높이 평가해줘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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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다만 거짓말쟁이는 숫자로 말한다.”

조엘 베스트의 ‘통계라는 이름의 거짓말’에 나오는 말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숫자’를 앞세운 여러 선동들을 보면서 새삼 공감하는 말이다. 최소한 국가 재난 상태에선 그런 ‘거짓말’과 ‘선동’은 조금 자제했으면 좋겠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