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제조분야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25부 - 노동 4.0과 사회적 혁신

전문가 칼럼입력 :2020/02/26 22:58

이문호 워크인조직혁신연구소 소장
이문호 워크인조직혁신연구소 소장

인더스트리 4.0과 마찬가지로 노동 4.0은 자신들의 비전이 담긴 독일 특유의 개념이다. 인더스트리 4.0이 제조혁신을 위한 새로운 기술적 패러다임의 상징적 개념이라면, 노동 4.0은 디지털 시대에 좋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사회적 혁신의 상징적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좋은 일자리는 사회적 공동 작품이다. 여러 영역에서 협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때문에 독일에서 노동 4.0과 함께 기업, 정부, 노조 등 사회 곳곳에서 새로운 비전과 혁신을 상징하는 4.0 버전이 터져 나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조직 4.0(Organisation 4.0), 인간 4.0(Mensch 4.0), 직업교육 4.0(Ausbildung 4.0), 직무향상교육 4.0(Weiterbildung 4.0), 리더십 4.0(Leadership 4.0), 경영 4.0(Management 4.0), 공동결정 4.0(Mitbestimmung 4.0), 복지국가 4.0(Sozialstaat 4.0) 등이 그러한 것들인데, 이들이 합쳐 거대한 사회적 혁신의 물결을 형성하고 있다.

노동 4.0은 2015년 4월 독일의 BMAS(Bundesministerium fuer Arbeit und Soziales, 연방노동사회부)가 '노동 4.0 녹서'를 출간하면서 공론화된다. 이는 노동세계의 급격한 변화에 직면하여 미래를 위한 새로운 사회적 타협의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아래와 같은 노동 1.0~4.0의 시대 구분은 인더스트리 1.0~4.0의 시대 구분과 동일하다. 단지 그 시대를 기술적 관점이 아닌 다음과 같이 노동형태와 사회복지적 관점에서 바라본다는데 차이가 있다(Gruenbuch, 2015).

- '노동1.0'은 산업사회가 시작되고 노동자들이 처음으로 조직되는 것을 말한다. 18세기 말 증기기관과 기계화된 생산설비가 도입되면서 생산방식뿐만 아니라 노동의 세계, 사회구조 및 사회계급의 자아상에도 큰 변화를 일으킨 시기다.

- '노동2.0'은 19세기 말 대량생산이 시작되고 복지국가가 태동되는 것을 말한다. 산업화는 새로운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였고, 조직화된 노동자계급의 압력으로 독일에서는 최초의 사회보험이 도입된다.

- '노동3.0'은 사회적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복지국가와 노동자 권리가 정착되는 1970년대 초반 이후를 말한다. 노사는 사회적 파트너십을 견지하고, 같은 눈높이에서 공통의 이해를 충족시키기 위한 협상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세계화와 더불어 심화되는 경쟁의 압력으로 사회적 권리가 부분적으로 후퇴되기도 했다.

- '노동4.0'은 디지털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노동세계는 더 많이 연결되고 유연화되는 현재를 말한다. 21세기 초반부터 점점 더 증가하는 인간과 기계의 연결과 협력관계는 기존의 생산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제품 및 서비스를 창출한다. 이에 따라 노동에 대해서도 새로운 요구들이 등장한다. 지금은 개인과 사회파트너들 및 국가 사이에 새로운 타협을 위한 협상을 시작해야 할 시점이다.


노동 4.0 녹서는 바로 이 새로운 사회적 타협의 길잡이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출간되었다. 여기에는 노동세계의 주요 변화 트렌드와 고용보장, 생애주기에 맞는 노동 및 사회정책, 정당한 임금 및 사회보장, 인력양성, 디지털화와 좋은 노동, 기업문화와 민주적 참여, 복지국가 등 7개의 정책적 어젠다가 담겨 있으며, 각 어젠다마다 주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를 갖고 BMAS는 노사민정학의 사회적 대화를 추진한다. 사회적 대화는 크게 두 축으로 전개되었다. 하나는 전문가와의 대화이고, 다른 하나는 시민과의 대화였다.

전문가와의 대화는 노동 4.0 녹서에서 제기된 어젠다와 질문들에 대한 노사 및 여러 기관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40여개 단체 참여), 어젠다별 전문가 워크숍을 7차례 실시했다. 또한 학계 및 기업의 노사로부터 20여명의 자문위원을 구성했다. 이들은 노동 4.0의 진행 과정에 참여하면서 의미 있는 결과가 도출되도록 조언 및 지원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시민과의 대화는 SNS를 통해 미래의 노동에 대한 시민들의 의견을 수집, 분석했으며, 1천200여 명과 1~2시간의 심층 인텨뷰를 통해 디지털 시대에 변화하는 시민의 가치관을 분석했다. 이와 함께 전국 27개 도시에서 디지털화와 관련된 필름 7개를 200번 이상 상영하면서 새로운 기술과 노동의 변화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을 높이는데 기여했다. 영화 상영 후에는 관객들과 전문가들 사이에 토론회가 개최되었는데, 모두 185회의 토론회에 전문가 500여 명과 시민 1만여 명이 참여했다.

이렇게 진행된 사회적 대화를 토대로 BMAS는 2016년 말 새로운 사회적 타협의 방향을 제시하는 '노동 4.0 백서'를 출간한다. 핵심은 디지털 시대에 나타나는 아래와 같은 기업과 근무 조직의 변화 (유연화) 속에서 어떠한 사회적 타협이 필요한지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그림] 기업 및 근무조직의 변화(유연화). (자료=노동4.0 백서(2017))


이와 같은 변화에 직면하여 노동 4.0 백서는 8개의 정책적 대응 과제를 설정하고 사회적 타협 방향을 제시한다.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 고용 능력 개발: 실업보험 대신 노동보험을 강화하고 직무 및 직업 이동의 모니터링을 통해 예방적 지원 시행(직업상담/평생교육 등)

- 노동시간 : 자율적이고 일과 생활의 조화가 가능한 유연화(선택노동시간법 시행)

- 서비스 부문 : 전문인력 양성, 협동조합, 가사서비스계좌제, 단체협약 적용 확대 등을 통해 양질의 일자리 창출

- 건강 : 신기술로 인한 심리적 스트레스 해소 등 건강보호방안 마련(노동보호 4.0)

- 데이터 보호 : 노동자 개인정보 보호(노동자정보 보호지표 도입)

- 공동결정 및 참여 : 사회적 파트너십을 통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공동설계

- 자영업 : 자유와 사회적 보호 동시 증진 (특히 크라우드 워커 관련규정 필요)

- 복지국가 : 고용능력 개발을 위한 지원과 유럽 차원의 복지모델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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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4.0은 디지털 시대에 사회 전반적인 혁신을 촉발한 개념이다. 노동 4.0 백서 출간 이후 BMAS는 기업에서 노동 4.0을 촉진하기 위한 '학습 및 실험 공간(Lern- und Experimentierraume)'이라는 사업을 펼친다. '근무 시간과 장소', '리더십과 협력', '지식과 역량개발', '작업 설계와 건강'이라는 4개의 주제로 나누어 노사가 공동으로 아이디어를 개발하고 시험하는 혁신적 과정을 지원하고 기업 간 경험을 공유한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기술적 혁신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다. 혁신 성장의 중요한 축으로 스마트 공장을 추진하는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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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호 워크인조직혁신연구소 소장

(현) 고려대 노동대학원 객원교수, 대통령 직속 일자리 위원회 상생형 지역일자리 자문위원,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디지털 전환과 노동의 미래 위원회 공익위원. 독일 괴팅겐 대학에서 사회학 석사 및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주요 저서로는 '산업사회의 이해(공저)', '기술변화와 작업장혁신(공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