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 갑작스런 CEO 교체…무슨 일 있었나?

밥 아이거, 15년만에 사임…"시기·방법 모두 파격적" 지적

홈&모바일입력 :2020/02/26 14:22    수정: 2020/02/26 17:35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15년 동안 ‘디즈니 왕국’을 이끌었던 밥 아이거가 갑작스럽게 사임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임 시기와 방법 모두 그 동안의 관행과는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디즈니는 25일(현지시간) 밥 아이거가 CEO 자리에서 물러난다고 발표했다. 후임으로는 테마파크 부문을 이끌던 밥 차펙이 선임됐다.

물론 밥 아이거의 사임 자체가 놀라운 것은 아니다. 이미 몇 차례 사임의사를 밝힌 적 있기 때문이다. 몇 년전엔 사임을 공식 발표했지만 후임자를 제대로 찾지 못해 눌러앉은 이력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CEO 교체는 ‘깜짝 조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교체 시기나 방법 모두 미국 기업들의 통상적인 관행과는 사뭇 달랐다.

밥 아이거(왼쪽) 디즈니 회장과 밥 차펙 CEO. (사진=디즈니)

가장 눈에 띈 부분은 밥 차펙이 곧바로 CEO에 취임한 부분이다. 미국 기업들은 통상적으로 길면 수 년, 짧으면 수개월 동안 경영 인계 과정을 거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밥 차펙은 그런 과정 없이 곧바로 자리를 이어받았다. 밥 이거는 내년말까지 디즈니 회장으로 계속 머물기로 했다.

실적 발표를 앞두고 있는 시기에 CEO를 교체한 점도 의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게다가 스트리밍 서비스를 막 출범한 직후에 테마파크 전문가를 CEO로 발탁한 점도 의아한 부분이다.

■ 밥 아이거, 픽사-루카스 필름 등 연이어 인수하며 콘텐츠 강화

밥 아이거는 2005년 마이클 아이스너의 뒤를 이어 디즈니 CEO로 취임했다. 취임 당시 그는 애니메이션과 테마파크 부문 육성이 시급한 과제라고 생각했다.

부활을 위해 그가 꺼내든 키워드는 세 가지였다. 국제시장으로 확장, 신선한 콘텐츠. 그리고 새로운 기술. 15년 동안 계속된 밥 아이거의 디즈니 시대는 이 세가지 키워드를 현실화하는 과정이었다.

콘텐츠 강화를 위해 꺼내든 카드는 ‘인수합병’이었다. 밥 아이거가 인수한 목록은 화려하다.

취임 이듬 해 픽사를 74억 달러에 인수한 것이 신호탄이었다. 픽사는 스티브 잡스가 야심적으로 만든 애니메이션 전문 회사다. 아이거는 당시 스티브 잡스에게 “픽사가 디즈니를 구원해줄 것이다”고 말했다. 2019년 회고록에서 고백한 내용이다.

2009년엔 마블(40억 달러), 2012년엔 루카스 필름(40억 달러)을 연이어 손에 넣었다. 하지만 밥 아이거 시대 최고 인수는 역시 21세기 폭스였다. 밥 아이거는 지난 해 713억 달러에 21세기 폭스 인수를 성사시켰다. 이 회사들은 지난 해 출범한 디즈니 플러스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핵심 자산이 됐다.

스타워즈 시리즈인 만달로리안의 한 장면. (사진=루카스필름)

마블 인수 덕분에 디즈니는 ‘슈퍼 영웅’들을 대거 확보했다. 지난 해 흥행 대박에 성공한 ‘어벤저스: 엔드게임’이 대표적이다.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캡틴 마블, 토르 같은 작품도 전부 디즈니 우산 속으로 들어왔다.

여기에다 루카스필름을 통해 확보한 스타워즈 캐릭터도 디즈니에 큰 힘이 됐다. 지난 해 개봉한 ‘스타워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도 큰 성공을 거뒀다. 덕분에 지난 해 디즈니는 미국 박스 오피스 수입의 3분의 1 가량을 독식했다.

테마 파크 확대도 밥 아이거의 대표적인 성과로 꼽힌다. 이거는 파리, 홍콩 등에 연이어 디즈니랜드를 개장했다.

특히 2016년 상하이 디즈니랜드 개장은 밥 아이거의 집념이 만들어낸 결실이다. 그는 상하이에 중국 정부와 18년 동안 협상한 끝에 디즈니랜드 개장 허락을 받아냈다.

■ 디즈니 플러스 성공적 출범…기세 이어갈 수 있을까

인기 캐릭터와 영화를 대거 확보한 디즈니는 지난 해 스트리밍 서비스를 선보였다. 그 동안 넷플릭스가 주도하던 시장에 마침내 도전장을 던진 것. 디즈니는 3개월 여 만에 2천만 명 가까운 가입자를 확보하면서 새로운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디즈니 플러스 출범에 맞춰 스타워즈 번외편인 '만달로리안'을 선보인 전략도 주효했다. 올해는 '만달로리안' 시즌2가 나올 예정이다.

밥 아이거는 “소비자들과 직접 접하는 비즈니스를 성공적으로 안착시키고, 21세기폭스 인수 작업이 잘 진행되고 있는 지금이 새로운 CEO로 교체할 최적의 시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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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설명에도 불구하고 갑작스런 CEO 교체에 대한 의문은 가시지 않고 있다. 특히 테마파크 쪽을 관장했던 밥 차펙이 후임 CEO로 선임된 점도 의아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와 관련 쿼츠는 “디즈니 내부에서 후임자를 찾았다면 오히려 스트리밍 부문을 이끌고 있는 케빈 메이어가 유력한 후보로 꼽혔다”고 전했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