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GMA 신년기획⑦] 게임질병코드, 어떻게 볼 것인가...게임규제 50년사

7부: 질병코드의 본질은 게임이 아니다

디지털경제입력 :2020/02/23 10:51    수정: 2020/02/23 11:52

온라인뉴스팀 기자

한국사회에서 게임을 대하는 태도는 모순적이다. 수출 효자산업으로 각광받는 동시에 청소년을 타락시키는 중독물질로 낙인 찍혔다. 정부의 게임육성 이면에는 서슬 퍼런 규제의 칼날이 숨겨져 있다. 성공한 게임회사 경영자는 벤처신화의 주인공이 되지만, 정작 그들이 만든 게임은 마약 취급받는다.

정부는 육성이라는 당근과 규제라는 채찍을 써가며 게임을 ‘산업’의 울타리로 가두어 놓았다. 사건만 터지면 사회의 책임을 게임에 덮어씌우기 일쑤다. 외화 벌어 오는 ‘게임산업’은 환영하지만, 게임이 일상과 어울리는 ‘게임문화’는 배척한다. 게임을 향한 우리 사회의 모순은 한치의 접점도 찾지 못하고 평행선을 그어왔다.

급기야, 올해 세계보건기구의 게임 질병코드 도입으로 또 다른 탄압의 명분이 제공됐다. 총 10부작으로 진행될 이번 기획은 다가온 게임 질병의 시대를 맞아 그간 한국게임이 받아온 게임 규제의 역사, 그리고 게임질병 코드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들을 담아보았다. <편집자주>

"부모와 사회 문화환경을 개선하지 않으면, 게임이 사라져도 같은 문제가 나타날 것입니다"

정의준 건국대 교수는 4년간 청소년 2천명을 연구한 결과물을 발표하면서 위와 같이 지적한 바 있다. 이 발언은 사실이 될 가능성이 높다. 게임뿐 아니라 현대 미디어환경에서 비슷하게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2019년 8월 문화연대 학술세미나 '문화의 시선으로 게임을 논하다

일각에서 게임과몰입(과용)을 중독이나 질병의 형태로 규정하려는 움직임이 이뤄졌다. 그러나 게임과몰입에 부모와 환경의 영향이 크다는 연구결과가 나오면서 근본적 질문이 던져지기 시작했다. '게임에 빠지는 청소년의 실태가 게임 고유의 문제점인가?' 이러한 의문 부호가 점차 선명해진 것이다.

■게임 이전에 '인터넷 연구'를 향한 시도가 성숙하지 않았다

과거 논문을 탐색한 결과 게임이 아닌 인터넷 쪽에서도 크게 비슷한 연구 결과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중 2004년 한국상담학회에서 발행한 장재홍 교수의 논문 '부모의 자녀양육태도가 중학생의 인터넷중독에 미치는 영향'은 놀라울 정도로 동일한 경향성을 보여준다.

해당 연구에서는 인터넷 사용욕구 척도를 22문항으로 구성하고 요인분석을 실시했다. 그 결과 현실회피욕구, 감각추구 및 정보획득욕구, 자아변화욕구, 대인관계욕구가 인터넷 중독지수 변량의 40.0%를 설명했다. 또한 부모의 과다 통제와 성취압력적 태도가 인터넷 사용욕구 및 인터넷 중독지수와 유의미한 상관을 나타냈다.

문제해결 목표가 게임에 집중된 지금 구도에서, 이러한 자료는 과의존 현상에 대한 프레임을 원점에서 재정비할 필요를 제기하는 근거로 작용한다. 게임에 과도하게 빠지는 근본 원인을 짚어갈 경우, 인터넷 의존의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인터넷과몰입도 게임과몰입과 마찬가지로 정확한 개념이 정의되지 않았으며, 연구 자료도 풍부하지 않다. 명칭 역시 각기 다르게 사용된다. 인터넷중독으로 불리던 초창기에 비해 중독 표현에 신중을 기하는 분위기가 형성됐으며, 지금은 인터넷 의존증 혹은 인터넷 과의존이으로 명명하고 있다.

청소년 교육과 통제의 시점에서 한국과 중국이 연구를 주도했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해외 연구가 국내 대중에게 노출된 사례도 많지 않다. 독일의 정신과 의사 베르트 테 빌트가 집필한 '디지털 중독자들' 등 몇 권의 저서가 있지만, 대부분 병리학적 경험담에서 머무르며 다각적 심층 연구는 찾기 어렵다.

■게임을 모르면 본질을 모른다

기승전결이 존재하는 게임과, 인터넷을 바탕으로 반복되는 온라인게임은 플레이 형태와 몰입 방식이 다르게 나타난다. 정신의학계와 학부모단체에서 문제 삼는 청소년의 게임과용은 대부분 후자의 형태를 보인다. 게임문화가 아닌 인터넷문화의 형태와 가깝다.

인터넷과 관련이 없는 게임 중에서도 많은 시간을 한순간에 소비하는 사례는 존재한다. '타임머신'으로 불리는 문명이나 풋볼매니저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런 게임들은 낚시 같은 장시간 취미 활동과 비슷한 모습을 나타낸다. 주말마다 사라져서 이틀을 꼬박 새고 돌아오는 남편에 대한 성토를 종종 들을 수 있지만, 낚시를 중독 물질로 치부할 수는 없다.

이러한 행위 탐닉은 모든 취미생활에서 흔히 보이는 범주에 들어간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인터넷방송을 대입해 살피면 더욱 선명해진다. 유튜브와 실시간 스트리밍에 수많은 방송이 존재하며, 게임을 비롯해 다양한 카테고리에서 방송이 이루어진다. 그로 인한 사회적 이슈도 비단 게임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국회의원회관 중심에서 열린 대한민국게임포럼 게임전시회

온라인 미디어 현상에서 게임이 공격 대상에 오른 것은 이해의 결여라는 해석이 충분히 가능하다. 사회 주류에서 게임이라는 매체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가 없다는 것. 게임의 정의부터 시작해 미디어와 사회로 분석의 층을 넓혀갈 때 열쇠가 생길 수 있다.

■가장 '알기 싫은 지점'을 건드려야 한다

이러한 메시지 전달이 필요한 이유는, 게임 질병코드 논란을 인터넷 문제로 전가하기 위함이 아니다. 인터넷 의존이 발생하는 이유가 인터넷의 잘못이 아니듯, 게임을 향한 프레임도 여기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기성세대가 아직 인터넷에 낯설었을 때는 인터넷 과의존이 부풀려진 공포로 대중에게 다가오기도 했다. 인터넷 거래 사기가 벌어지거나 커뮤니티에서 만나 범죄를 모의했을 때, 인터넷 규제를 외치면서 실명제 및 신상공개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지금은 인터넷 이전에 근본적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사회적으로 형성되어 있다.

인터넷 전반을 향해 공격이 이뤄진 초창기와 달리, 2010년대 들어 공격 대상이 점차 게임에 집중됐다는 점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적어도 게임과 같은 이유로 인터넷 규제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없다. 게임은 여전히 세대별 이용 행태가 크게 갈리지만, 스마트폰이나 유튜브 등 다른 인터넷 코드는 기성세대가 함께 공유하는 생활 패턴으로 정착됐다. 이것은 큰 이유다. 익숙함의 차이는 모든 인식 구조에서 가장 크다.

근본 원인을 찾기 위해서는 현상을 바르게 짚어야 한다. 첫 발걸음을 인터넷 자체에 대한 사회적 현상에서 시작할 필요가 있다. 그 과정은 불편하고 어렵다. 사회에서 애써 외면하게 되는 이유다.

미디어의 문제는 미디어에서, 사회의 문제는 사회에서 풀어야 한다. 이미 각 가정에서 강제로 게임을 통제당하는 아동과 청소년들은, 스마트폰 속 유튜브 세상에서 개인의 시간을 찾고 있다. 청소년들이 가정에서 소통을 거부하고 자신의 세계를 찾아 떠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답을 찾는 방법을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글/게임인사이트 길용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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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공동기획은 한국게임전문미디어협회(KGMA)와 한국게임전문기자클럽(KGRC)에서 2020년 신년특집으로 준비한 것입니다. 이번 기획에는 KGMA 소속 15개 매체 편집장과 기자들이 참여했습니다.

대표편집자 이덕규 게임어바웃 국장, 김미희 게임메카 기자, 김성렬 게임포커스 기자, 김한준 지디넷코리아 기자, 길용찬 게임인사이트 기자, 박상범 게임뷰 기자, 이원희 데일리게임 기자, 임영택 매경게임진 기자, 허새롬 PNN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