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에서 게임을 대하는 태도는 모순적이다. 수출 효자산업으로 각광받는 동시에 청소년을 타락시키는 중독물질로 낙인 찍혔다. 정부의 게임육성 이면에는 서슬 퍼런 규제의 칼날이 숨겨져 있다. 성공한 게임회사 경영자는 벤처신화의 주인공이 되지만, 정작 그들이 만든 게임은 마약 취급받는다.
정부는 육성이라는 당근과 규제라는 채찍을 써가며 게임을 ‘산업’의 울타리로 가두어 놓았다. 사건만 터지면 사회의 책임을 게임에 덮어씌우기 일쑤다. 외화 벌어 오는 ‘게임산업’은 환영하지만, 게임이 일상과 어울리는 ‘게임문화’는 배척한다. 게임을 향한 우리 사회의 모순은 한치의 접점도 찾지 못하고 평행선을 그어왔다.
급기야, 올해 세계보건기구의 게임 질병코드 도입으로 또 다른 탄압의 명분이 제공됐다. 총 10부작으로 진행될 이번 기획은 다가온 게임 질병의 시대를 맞아 그간 한국게임이 받아온 게임 규제의 역사, 그리고 게임질병 코드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들을 담아보았다. <편집자주>
“분노와 증오는 대중을 열광시키는 가장 강력한 힘” -파울 요제프 괴벨스-
■ 마약, 사이코패스… 그리고 셧다운제
2011년 1월, KBS 시사고발 프로그램 추적60분 ‘살인을 부르는 게임중독’ 편이 방송됐다. 제목부터 자극적인 이 프로는 게이머를 마약 중독자에 빗대어, 게임이 마약과 같다는 내용을 다뤘다. 방송에선 총싸움게임에 몰두하는 아이들을 비추며, 게임을 하는 아이의 뇌가 “극단적으로 말해 사람을 죽여도 반성하지 못하는 뇌로 변한다”고 보도했다. 게이머를 잠재적 사이코패스로 내몰았다.
같은 해 2월 MBC 뉴스데스크에선 PC방서 게임에 몰두하는 초등학생들을 보도하는 과정에서 PC방 전원을 차단해 아이들의 반응을 살피는 보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PC방 전원이 차단되자 아이들이 짜증을 내며 욕하는 장면을 비추며 “폭력게임의 주인공처럼 난폭하게 변했다”고 말한 기자의 멘트는 그 자체가 코미디였다. 뉴스가 나가자 네티즌들의 비난이 쏟아졌다. "기자 자신도 기사를 쓰던 중 노트북 전원을 꺼버리면 화를 낼 것 아니냐"며 억지설정을 조롱했다. 이 뉴스는 한 개그프로에서 패러디 될 정도로 두고두고 웃음거리가 됐다.
■ 불안을 파고 든 게임규제 쓰나미
하지만 뉴스의 파워는 의외로 컸다. 무엇보다 사회가 안고 있는 불안과 공포를 자극했다. 당시 사회를 짓누르는 건 범죄에 대한 공포다. 유영철, 강호순, 정남규 같은 희대의 연쇄살인마들이 검거되면서, 그들의 살인행각에 국민들은 경악했다.
어느 날 갑자기 주변 이웃이 살인마로 변할 수 있다는 잠재적 공포가 사회 전반에 퍼졌다. 여성들은 택시도 마음 놓고 탈수 없었고, 부모들은 아이들을 놀이터에 보내기도 꺼려했다. 잔인한 살인마를 다룬 범죄 영화들이 붐을 이루었다. ‘사이코패스’라는 낯선 단어가 일상용어처럼 쓰였다. 이런 분위기에서 ‘게임은 마약’, ‘게이머는 잠재적 살인마’라는 프레임은 사회적 불안감에 편승해 대중의 인식에 각인됐다.
전에도 게임에 대한 부정적 보도는 많았다. 한때 게임 과몰입으로 인한 돌연사가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 그때는 IMF 여파로 실직자들이 급증하는 시절이었다. 게임 때문에 사회생활을 포기하고, 죽을 수도 있다는 기사는 비일비재했다. 어쨌거나 이 시절 언급된 게임중독은 개인의 불행 혹은 일탈 수준에 그쳤다.
그러나 2011년부턴 달라졌다. 게임에 중독되면 자신은 물론 타인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주장이 힘을 받기 시작했다. 기성 언론들은 게임의 반사회적인 부분을 앞다투어 보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1년 4월 셧다운제가 국회 본의회를 통과해 11월에 시행됐다. 모든 것이 짜맞춰진 각본대로 착착 진행되는 것처럼 말이다.
셧다운제 이후 한국 게임시장엔 전에 없는 규제의 쓰나미가 몰아쳤다. 보건복지부가 게임 중독법 캠페인을 들고 나왔다. 게임 중독세 논란이 일었다. 정치인의 게임 4대악 발언 나왔다. 그리고 최근 게임질병코드까지 게임 때리기가 계속되고 있다.
■ 나치 유대인 학살과 게임 죽이기
이처럼 게임에 대한 편파적이고 악의적인 보도를 보면, 2차 대전 독일 나치의 선동가 괴벨스가 떠오른다. 괴벨스는 나치의 유명한 선동가로 언론과 대중연설을 통해 독일국민을 나치즘으로 끌어들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그는 유대인에 대한 증오를 이용해, 홀로코스트라는 20세기 최대 비극을 낳았다. 특히 인간의 불안, 공포, 증오를 대중선동의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사용했다.
괴벨스는 1차 세계대전 패망 후 독일인의 불행을 유대인 탓으로 돌렸다. 그는 유대인들을 무조건적인 악으로 간주했다. 유대인은 게으르고 자기밖에 모르며, 사회에서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여겼다. 게임에 대한 언론보도가 괴벨스의 전략과 비슷하다. 그는 유대교의 가축 도살장면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면서 유대인은 야만적이고 잔인한 민족이라는 이미지를 대중에게 심었다. 컴퓨터 전원이 꺼져 짜증내는 게이머들을 ‘폭력게임의 주인공’이라 묘사하는 보도행태와 비슷하다.
사소한 일을 과장하고 과거의 일을 금방 일어난 것처럼 포장한다. 범죄자의 컴퓨터를 뒤져 게임이 발견되면 살인을 부르는 ‘폭력게임’으로 몰아간다. 모든 정보를 단순화시키고, 끝없이 반복해 대중을 현혹시킨다. 게임에 마약, 살인, 도박, 중독 등의 부정적 단어를 붙여 의미를 단순화시킨다. 이 과정에서 근거 없는 실험이나 논문들이 대단히 신빙성 있는 자료로 둔갑한다. 그리고 그것을 지속적으로 이슈화 시킨다.
뉴스를 접한 부모들은 자녀를 망치는 원인을 게임 탓으로 돌린다. 아이들의 성적부진의 책임도 게임 탓, 툭하면 화를 내는 이유도 게임 탓, 학교생활에 문제가 있어도 게임 탓, 수면 부족도 게임 탓이다. 게임관련 사건사고가 어제 오늘도 일도 아닌데 최근에 발생한 것처럼 위기감을 조성한다. 게임에 빠진 사람은 잠재적 살인자이고 우리는 언제든지 그들에게 피해를 당할 수 있다는 공포가 사회전반에 스며든다. 이쯤 되면 게임은 '사회악'이자 철저히 관리해야 할 '중독물질'이다.
‘악마’를 만든 다음엔 ‘영웅’도 소환해야 한다. 괴벨스는 독일이 겪고 있는 모든 고통을 히틀러가 나와 한방에 해결해 줄 것이라 선전했다. 편파보도 뒤에는 늘 관련 규제가 따랐다. 여성가족부, 보건복지부 관련 정치인들은 악을 응징하는 영웅처럼 온갖 규제안을 쏟아냈다. 웃기는 건, 이런 말도 안되는 정책들이 게임에 대한 증오 때문인지 제법 그럴싸한 명분으로 포장된다.
대중은 편한 것을 원한다. 근본적 문제를 고민하기 보다 게임이란 만만한 대상을 골라 증오하고 욕하는 쪽이 편하다. 정부와 언론은 부모들의 불안과 걱정을 게임 쪽으로 돌려 교육문제, 청소년문제 등 골치 아픈 현안은 어물쩍 넘어간다. 괴벨스의 선동으로 독일국민은 나치에 열광하게 됐고, 결국 폐망의 길을 걸었다. 한국게임의 미래는 어떨까?
■ 게임업계에 드리운 괴벨스의 그림자
지난해 게임질병코드 이슈가 한창일 때다. MBC 백분토론에 참가한 한 패널에게 게임중독세에 대한 의견을 묻자 그는 “국가정책으로 키워줬는데, 게임에 대한 폐해는 늘고… 아직도 돈내기 싫다는 소리로 밖에 안 들린다”고 말했다. 순간 소름이 끼쳤다. 게임에 대한 기성세대들의 생각이 과거 유대인을 혐오하는 독일인과 다를 바 없다.
나치는 유대인을 자기밖에 모르는 민족이라 선동했다. 유대인 업체에 대한 불매운동을 펼치며 “독일인이여! 자신을 보호하라! 유대인에게 구매하지 말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이렇게 켜켜이 쌓인 분노는 급기야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의 명분을 제공했다.
지금도 다를 게 없다. 세금으로 키워줬는데, 은혜도 모르고 문제만 일으키는 게임산업이 괘씸했을 것이다. 게임 중독세라는 희대의 넌센스를 당연한 듯 주장하고, 여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지지를 보내는 사람들이 지금도 다수다. 게임업계에 드리운 괴벨스의 그림자, 2020년 게임 질병코드 이슈와 함께 또 다시 고개를 들려 하고 있다.
(글/이덕규 게임어바웃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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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공동기획은 한국게임전문미디어협회(KGMA)와 한국게임전문기자클럽(KGRC)에서 2020년 신년특집으로 준비한 것입니다. 이번 기획에는 KGMA 소속 15개 매체 편집장과 기자들이 참여했습니다.
대표편집자 이덕규 게임어바웃 국장, 김미희 게임메카 기자, 김성렬 게임포커스 기자, 김한준 지디넷코리아 기자, 길용찬 게임인사이트 기자, 박상범 게임뷰 기자, 이원희 데일리게임 기자, 임영택 매경게임진 기자, 허새롬 PNN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