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밀리의 서재'는 왜 김영하와 손을 잡았을까

포털과 넷플릭스 사이

데스크 칼럼입력 :2020/02/20 17:55    수정: 2020/10/05 13:49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소설가 김영하가 7년만에 장편 소설을 출간했다. 제목이 ‘작별인사’다. 소설가가 소설 출간한 게 그리 대단한 소식은 아니다. 인기 소설가 김영하라면, 특히 그렇다. 공상과학(SF) 소설에 도전했다는 점이 눈길을 끌긴 한다. 하지만 김영하 작품 세계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이 또한 의외의 행보는 아니다.

그런데 출간 방식이 상당히 흥미롭다. 이번에 출간된 소설은 ‘밀리의 서재’ 회원들에게만 제공된다. ‘밀리의 서재 오리지널’이다.

(사진=밀리의 서재)

2017년 출범한 밀리의 서재는 국내에 도서 구독모델을 정착시킨 업체다. 월 구독료 9천900원이면 책을 맘껏 읽을 수 있는 모델이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덕분에 엄청난 투자를 유치했다는 소문도 있다.

■ '출판계 아이돌' 김영하의 흥미로운 실험

밀리의 서재와 김영하의 만남을 통해 두 가지 모델을 떠올리게 된다.

첫째.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전략.

둘째. 포털과 언론사의 콘텐츠 제휴.

먼저 첫번째 얘기.

밀리의 서재가 김영하 소설을 단독 공급하는 이유는 뻔하다. 구독자를 늘리려는 전략이다. 김영하에 이어 김훈, 공지영 같은 인기 작가도 참여할 예정이다.

여기에 맞춰 ‘오리지널 종이책 정기구독’ 모델을 내놨다. 밀리의 서재가 보유한 전자책 5만권 무제한 이용은 기존 모델과 같다. 여기에 두 달에 한 권씩 ‘밀리의 서재 오리지널’ 종이책을 배달해준다. 물론 전자책 구독료(월 9천900원)보다는 더 비싸다.

이런 방식은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시리즈 전략을 연상케한다. 잘 아는대로 넷플릭스의 최대 경쟁 포인트는 ‘하우스오브카드’를 비롯한 오리지널 시리즈다. 지난 해에도 ‘아이리시맨’ ‘결혼 이야기’ ‘두 교황’ 등 쟁쟁한 작품을 내놨다. 하나 같이 작품성과 오락성을 겸비했다. 덕분에 가입자를 꾸준히 늘리고 있다.

더 관심을 끄는 건 두 번째 얘기다.

출판시장은 몇 년째 불황이다. 그나마 김영하 같은 몇몇 스타 작가들 덕분에 근근히 지탱하는 형국이다. 출판사들은 죽을 맛이다.

이런 상황에서 밀리의 서재가 매혹적인 조건을 제시한다.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오리지널 서비스에 참여하면 2만권을 밀리의 서재에 사전 납품한다. 그리고 3개월 뒤 ‘정식 책(?)’을 출간할 수도 있다. 마다 하기 힘든 조건이다.

김영하 작가(제공=밀리의 서재)

문제는 이런 조건이 기존 시장을 뒤흔들 수도 있다는 점이다. 자칫하면 기존 출판사들이 거대 플랫폼 납품업체로 전락할 수도 있다. 실제로 지난 해 김영하의 실험 계획이 알려진 뒤 ‘출판독점, 혹은 종속’ 우려가 강하게 제기됐다.

이런 비판에 대해 김영하 작가는 새로울 것 없는 일이라고 일축했다. 일간 신문에 먼저 연재한 뒤 단행본으로 내는 건 오래된 관행이었다는 것. 이번 출간도 그런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설명이다.

일면 수긍이 가는 설명이다. 하지만 곰곰 따져보면 일간신문 연재 뒤 출간과 이번 방식은 조금 많이 다르다. 신문 연재를 따라 읽는 건 엄청난 인내와 성의가 필요하다. 그걸 모은 단행본을 대체하기 쉽지 않다.

반면 이번 출간은 특정 플랫폼에 인기 콘텐츠가 몰리는 방식이다. 집중 가능성은 분명 높아 보인다. 포털과 언론사들의 초기 제휴 때를 연상케 하는 대목이 있다.

■ 출판시장의 또 다른 혁신은 어떤 결과로 이어질까

밀리의 서재와 김영하 작가의 실험을 나쁘게만 볼 건 아니다. 오히려 출판 시장의 또 다른 혁신이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다. 독점 계약기간 중에도 동네서점이나 독립서점에선 판매할 수 있도록 한 점도 눈에 띈다.

다만 그 혁신이 몰고올 파장이 생각보다는 클 것 같다. 물론 저널리즘 현장에서 학습한 효과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기존 모델의 종말을 알리는 신호탄일 수도 있어 보인다.

"이것이 저것을 죽이리라."

빅토르 위고의 '파리의 노트르담'에 나오는 말이다. 여기서 이것은 책이고, 저것은 건축물이다. 위고는 저 말을 통해 '책의 불멸성'을 찬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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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독서 시장에 등장한 '구독 모델'은 종이책의 불멸성에 대해 다른 생각을 하게 만든다. 김영하와 밀리의 서재 간의 만남이 예사롭지 않은 건 그 때문이다.

우연이었을까? 김영하 작가의 신작 소설 제목도 '작별인사'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