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式 AI시대 讀法...새 소설 '작별인사' 출간

"SF 장르지만 당대 우리 사회 현상과 연결될 것"

인터넷입력 :2020/02/20 15:59    수정: 2020/02/20 16:46

김영하 작가가 7년 만에 ‘작별 인사’라는 제목의 장편 소설을 출간했다. SF 장르다.

“김영하 작가가?”라고 낯설게 느끼는 독자들도 있겠지만, 이미 그는 현실과는 거리가 먼 환상문학에 가까운 소설들을 여러 편 집필해 왔다. 북한 간첩에 대한 얘기를 담은 ‘빛의 제국’이라든가, 16세기 명종 시절부터 내려오는 ‘아랑 전설’을 바탕으로 역사적 추리력과 허구적 상상력을 녹여낸 ‘아랑은 왜’ 작품도 기존 정통문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새로운 시도였다. 2010년 출간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 단편소설집에서도 그는 로봇을 소재로 다룬 적이 있다.

김영하 작가가 밀리의서재를 통해 선출간한 작별인사는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던 열일곱 살 소년 철이가 어느 날 갑자기 낯선 곳으로 끌려가면서 극적인 이야기가 전개된다. 자신을 인간으로만 알던, 아니 인간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조차 품지 않았던 그가 갑작스러운 계기로 자신이 인간에 가까운 휴머노이드(인간의 신체와 유사한 모습을 갖춘 로봇)란 사실을 알게 된다. 낯선 수용소에서 만난 동료들과 위기의 순간을 극복하고, 그를 창조한 아버지를 만나는 여정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김영하 작가(제공=밀리의 서재)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AI’와 조니 뎁 주연의 ‘트레센더스’가 연상되면서 잘 만들어진 한편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독자들을 작품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김영하 작가의 상상력과 필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인공지능(AI) 시대가 도래 하면서 사람들은 “나란 존재는 무엇인가”, “인간의 일자리는 기계에 정말 빼앗길 것인가?”, “로봇은 정말 인간과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와 같은 질문을 한다. 또 AI 시대는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 유토피아일까, 아니면 암울한 디스토피아가 될까에 대한 전망과 해석도 제각각이다. AI 기술이 더 발전하기 전에 AI 윤리에 관한 범국가적인 철학과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목소리도 많다.

이 관점에서 작별 인사는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가 맞게 될 AI 시대를 미리 예상해보고,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고민에 빠지게 한다. 로봇이 정말 인간에 가까워진다면, 그들이 우리처럼 사고하고 감정을 느끼고 슬퍼할 수 있는 존재라면 우리는 그들을 하나의 기계로 봐야할까, 사람과 똑같은 인격체로 봐야할까. 갖고 놀다 싫증이 나거나 고장 나면 버리게 되는 장난감과는 분명 다른 존재일 텐데, 인간은 그들의 삶과 감정을 어디까지 존중해야만 할까. 소설을 읽는 내내 어느 선으로 딱 자르기 힘든 질문을 스스로 해보게 된다.

김영하 작가는 20일 밀리의 서재가 마련한 신간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AI, 로봇과 같은 소재에 대해 오래 전부터 생각해 왔다고 밝혔다. 고등학교 시절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이란 작품을 흥미롭게 읽었고, 아서 C. 클라크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등을 통해 SF 장르에 관심이 많았다는 것. 또 작별 인사 작품을 읽고 어떤 감정이 느껴졌다면 그건 단순히 SF 소설로서 미래를 엿봤기 때문이 아니라, 지금 우리 사회 현상과 연관이 지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영하 작가는 “AI나 로봇 등 SF 소재에 관한 아이디어는 꽤 오래 전부터 생각해 왔다”면서 “이번 작품을 준비하면서 AI 윤리와 관련한 학술서도 보긴 했지만, 소설을 쓰기 위해 많이 파고든 건 아니다. 소설은 상징과 비유로 말하는 양식이라 생각하는데 ‘작별 인사’ 소설을 보고 어떤 감정을 느꼈다면 미래를 엿봤기 때문이 아니라 지금 우리 사회 현상이 비유로 막연하게나마 받아들였기 때문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소설에서 인간과 인간에 가깝게 만든 로봇이 공존하면서 인간의 기준이 흐려지게 되는 순간처럼, 김영하 작가는 현재 우리가 이런 애매한 문제들을 맞닥뜨리는 대표적인 사례를 들었다. 코로나19 전염병에 걸린 사람들을 받아들여야 하느냐, 격리시켜야 하느냐, 아니면 추방시켜야 하느냐의 고민도 어쩌면 휴머노이드를 인간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느냐, 우리와 다른 무엇으로 보고 무시해도 되느냐와 닮았다는 뜻이었다.

김 작가는 “코로나19나 지난 메르스 사태를 보면 국가가 어디까지 인간으로 받아들일까를 고민하는 것 같다. 감염자들을 내 동료로 받아들이고 구하고 치료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인간으로 받아들이는 것이지만, 이들을 감염원으로 배척한다면 그들을 인간이 아니라고 하는 것처럼 보인다”면서 “공중보건 차원에서 감염자들을 격리 조치시키는 건 적당하지만, 독자들은 소설 속 상징적인 내용을 이런 사회 현상을 비유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하 작가는 ‘작별 인사’ 작품의 영감을 가즈오 이시구로 작가의 ‘나를 보내지마’에서 얻었다고 밝혔다. 복제 인간들의 슬픈 운명과 사랑을 그린 이 작품을 통해 ‘작별 인사’에 등장하는 ‘선이’ 캐릭터가 만들어졌다. 선이는 다른 사람의 장기 기증 등을 위해 만들어진 복제인간이다. 또 그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도 어떤 거래가 일어나고, 그것을 통해 시장이 생기는 것에서도 영감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김영하 작가는 “복제인간이 과학적으로도 가능하지 않을 것 같고, 줄기세포로도 장기를 만들 수 있을 텐데 굳이 복제인간까지 만들 일은 없을 것 같다”면서 “아우슈비츠와 같은 끔찍한 수용소에서도 덜 절실한 것들을 거래하고 그것을 통해 시장이 형성되고 질서가 생기는 것들에게 영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한편 김 작가는 작가들이 수상거부와 절필 선언으로 논란이 된 이상문학상 사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김 작가는 “동료 작가들의 투쟁과 희생을 온 마음으로 지지한다”면서 “국회에 계류돼 있는 예술인 권리 보장법이 통과돼 예술가들의 불안정하고 약한 지위가 보장됐으면 좋겠다. 예술인들이 스스로 단결할 수 있는 지위가 부여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또 밀리의서재와 같은 전자책 플랫폼 시장이 커지는 것에 대해 “예전부터 책이라는 형태는 고정돼 있지 않았다. 다양한 방식으로 다양한 환경에서 책을 접할 수 있으면 좋다고 생각한다”며 “출판계의 가장 큰 도전은 새로운 플레이어가 아니라, 더 이상 서점에 안 가고 책을 안 사는 사람들이다. 이들을 다시 어떻게 하면 서점에 모을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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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과거에는 작가들이 문학과지성사와 창작과비평사, 민음사 정도를 놓고 어떤 출판사에 책을 출간할까를 고민했지만 새로운 출판사인 문학동네가 생기면서 이런 틀이 무너지고 작가들에게 더 좋은 기회가 열렸다”면서 “밀리의 서재처럼 예술인들이 선택권을 더 많이 갖게 되는 플레이어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역설했다.

밀리의 서재가 서비스 중인 밀리 오리지널 정기구독은 전자책은 기존과 같이 무제한으로 이용하고, 한정판 종이책은 두 달에 한권씩 배송 받아 소장하는 전자책+종이책 결합 구독 상품이다. 김영하 작가의 ‘작별 인사’ 역시 밀리 오리지널과 일부 동네 책방 등에서 만나볼 수 있으며, 3개월 뒤에는 일반 서점을 통해서도 출간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