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크로 금지법' 또는 '실검법'이라고 불리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놓고 전문가들이 해당 법안의 실효성을 지적하고 나섰다. 기준이 지나치게 모호하고 광범위하며, 기업에게 과도한 부담을 지울 수 있다는 것이다.
체감규제포럼과 디지털경제포럼, 연세대IT정책전략연구소는 21일 서울 중구에서 '매크로 금지법에 대한 진단과 논의'를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매크로 금지법은 댓글과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에 매크로 프로그램(같은 작업을 단시간에 반복하게 하는 프로그램)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이다. 지난 2018년 드루킹 사태를 계기로 다수 의원들이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 지난달 4일에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가 실시간 검색어 조작 방지 법안에 잠정 합의한 바 있다.
학계는 매크로 프로그램이 부당한 목적으로 사용돼 이용자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주장에는 동의했지만, 이를 규제하기 위해서는 ▲중복규제 여부 ▲용어의 정의 ▲실현 가능성을 점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날 발제자로 나선 최민식 경희대학교 법무대학원 교수는 "매크로 프로그램 자체를 악성프로그램으로 보기 어렵다는 최근 대법원 판결이 있었다"며 "매크로를 사용해서 시스템을 훼손하거나 변경·위조해 누군가의 업무를 방해하는 경우에도 이미 형법 제314조 제2항의 '컴퓨터 등 장애 업무방해죄'에 해당해 중복규제의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특히 매크로 금지법이 실제로 매크로 프로그램을 사용한 행위자만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매개자인 인터넷서비스사업자(ISP)와 온라인서비스제공업체(OSP)에도 의무를 부과한다는 점에서 과잉입법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20대 국회에서 발의한 법안은 매크로 프로그램으로 타인의 권익을 침해하는 자와 침해당하는 자를 구분하지 않고 있는 것이 문제"라면서 "사업자에게도 기술적·관리적 조치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내용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사업자가 매크로 프로그램에 대한 조치를 취하기 위해 광범위한 차단을 선택하면 이용자 역시 표현의 자유를 침해당할 것이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이후 이어진 토론에서는 매크로 조작의 문제점과 매크로 조작으로 인한 피해의 대상 등이 논의됐다.
토론에 참여한 곽규태 순천향대학교 교수는 "매크로 조작으로 인해 1차적으로 피해를 입는 대상은 콘텐츠를 이용하는 이용자들"이라며 "기업 역시 예상치 못하게 비용을 투입하게 돼 비즈니스에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매크로 프로그램을 실질적으로 어디까지 막을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됐다. 모정훈 연세대학교 교수는 "매크로 프로그램은 계속 진화하기 때문에 하나를 규제한다고 해도 다음 버전이 또 나올 것"이라며 "새로운 버전이 나올 때마다 사업자가 이를 차단하면 굉장히 많은 리소스가 들어갈 것"이라고 지적했다.
토론 참여자들은 ISP나 OSP에 기술적·관리적 조치 의무를 강제로 부과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이용자들의 기본권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최지향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는 "사업자들이 관리를 수월하게 하기 위해 실시간 검색어 자체를 아예 없애버리는 경우도 있는데 이렇게 할 경우 점차 이용자에게 도움이 되는 서비스가 줄어들 수도 있다"고 밝혔다. 실시간 검색어의 순기능도 고려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구글과 야후재팬, 중국 바이두 역시 각 나라에 맞는 실시간 검색어 서비스를 제공한다. 국내에서 실시간 검색어 서비스를 아예 종료할 경우 글로벌 사업자와의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장준영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아직까지 해외에서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한 댓글 조작 사례를 규제하는 경우는 발견하지 못했다"면서 "만일 국내에서 이를 규제한다고 해도 국내에서 서비스하는 해외 기업은 제재할 방식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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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참석한 각계 전문가들은 또 현 상황에서 매크로 금지법은 충분한 사회적 공감대를 얻지 못했다는 데 뜻을 같이 했다.
최민식 교수는 "사업자에게 책임을 부과하려면 해당 콘텐츠가 음란물·개인정보·명예훼손 등 사회적 공감대를 충분히 얻은 것이어야 한다"며 "오히려 국가기관에서 사법기관이 해야 할 일을 일반 사업자에게 떠넘기는 것으로 보인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