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제조분야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19부 - 인더스트리 4.0을 위한 인사조직 4.0

전문가 칼럼입력 :2020/01/16 09:35

최동석 현) 최동석인사조직연구소장
최동석 현) 최동석인사조직연구소장

■ 인더스트리 4.0

지난 12월17일부터 열린 《4차산업혁명 페스티벌 2020》에서 〈독일 제조기업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Kagermann은 인더스트리 4.0 비전 2030에 포함된 자주성(autonomy), 상호운용성(interoperability),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을 강조했다. 이 개념들은 기본적으로 분권화(decentralization)를 전제로 한다.

제조기업에서 분권화가 실현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당초에는 대량생산 방식에서 CPS(Cyber Physical system, 사이버물리시스템) 기반의 개인 맞춤형 생산(personalized production) 방식, 즉 제조 시스템이 지능형(Smart) 네트워킹되고(Connected) 분권화된(Decentralized) 자율(Autonomous) 시스템으로 바뀌게 된다는 의미로 이해했다. 최근의 Pilot Project 결과에 따르면, 대량생산 제품들이 CPS 기반의 분권화된 생산방식으로도 효율적이라는 결론을 얻었다고 한다. Pilot Project이기 때문에 실제로 대량생산 공장에서도 그런 효과가 나타날 것인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 아무튼 (사)한국ICT융합네트워크 부회장 김은 박사가 Kagermann과의 대화에서 알게 된 이 놀라운 사실은, 분권화야말로 21세기 인류에게 던져진 피할 수 없는 화두(話頭)가 될 것이다.

이렇게 스마트 팩토리를 거쳐 데이터의 상호운용성을 통해 데이터 주권을 확보하려는 이 모든 과정에는 분권화 개념이 핵심이다. 독일 제조업을 포함한 모든 산업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전략은 철저한 분권화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에서 인더스트리 4.0의 탄생은 역사적으로 분권화를 강조해왔던 인사조직설계의 기본 철학에 기인한다.

독일인들이 추구해왔던 이 분권화의 개념을 이해하지 않고는 인더스트리 4.0의 본질을 파악하기 어렵고, 특히 인사조직에 관한 이슈들은 그 역사적 맥락을 모르면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인더스트리 4.0과 관련하여 발표된 공식 문서들을 보면, 주로 기술 변화에 따른 다양한 이슈들을 논의하고 있는데 비해 인사조직 측면에서 구조적 혁신을 강조하는 내용은 거의 없다. 다만 노동 환경의 변화에 따른 평생 학습이나 디지털 문해력(digital literacy) 정도를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 이는 민간에서 시작된 생산 방식의 혁신적인 변화를 연방정부(교육연구부와 경제산업부)가 총괄하는 연구 프로젝트로 체계화될 때부터 노동자들을 대표하는 인사들이 적극 참여해왔기 때문이다.

인더스트리 4.0이라는 혁명적 변화가 일어나게 된 것은 역사적으로 독일의 인사조직에 관한 이론적 배경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제조업뿐만 아니라 모든 산업에 적용되었던 인사조직설계의 기본 철학과 몇 가지 원칙을 소개하려고 한다.


■ 인간의 존엄성

1945년 패전 후, 나치 정부의 만행에 저항했던 지식인들은 국가 조직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으로 인식했다. 개인의 존엄성을 확보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고 국가는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기본법(헌법) 제1조 1항은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인간의 존엄성은 침해될 수 없다. 이를 존중하고 보호하는 것은 모든 국가 권력의 의무다.”

기본법을 초안했던 지식인들은 인간의 존엄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국가 운영 철학을 정립했고, 나치의 제국 시대와는 전혀 다른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했다.

이를 위해 독일인들은 질서자유주의(Ordoliberalismus) 이념을 추구하는 사회적 시장경제(social market economy) 모델을 만들었다. 분권화를 기반으로 연대와 협력을 중시하도록 사회 구조와 시스템을 설계했다. 그것은 무상 교육, (거의) 무상의료, (거의) 무상 주택과 같은 정책으로 나타났다. 물론 이런 정책들이 통일 이후에는 재정적 부담 때문에 다소 느슨해지긴 했지만, 인간의 존엄성에 관한 국가 정책의 기본 정신은 쇠퇴하지 않았다. 오히려 연방정부는 인도적 차원에서 시리아 난민 100만 명 수용정책을 발표했다. 2011년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이후 일본 정부의 대책 없음을 보면서, 독일 내 모든 핵발전소를 2022년까지 모두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 분권화의 중요성

이런 놀라운 정책 결정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연방총리의 개인적 결단이나 명령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모든 국가기관의 정책 결정과 성과 창출 방법에 대한 기본 가이드라인을 기본법에 정리해 놓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제65조에는 연방총리가 일하는 방법에 대해 기술해놓았는데, 이는 몇 가지 원칙으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연방총리는 연방정부의 정책 가이드라인을 마련한다.(연방총리의 원칙)

둘째, 연방총리는 연방정부 내의 다양한 의견을 단일한 합의안으로 도출한다.(합의의 원칙)

셋째, 연방총리는 연방장관들의 소관 업무에 개입할 수 없다.(소관 업무의 원칙)

이 세 가지 원칙은 조직 설계의 분권화 원칙을 반영한 것이다. 분권화만이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분권화의 개념은 직무를 분권화하여 직무 담당자가 독립된 자율적 주체로서 일하도록 만드는 것이지, 조직이나 기관을 독립시키는 것이 아니다. 조직이나 기관은 수단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에 독립시켜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사법부라는 조직이나 검찰청이라는 기관을 독립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법부 내의 재판 업무를 수행하는 판사라는 직무와 기소여부를 판단하는 검사라는 직무를 독립시켜서 그 직무 담당자들이 독립된 자율적 개인으로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올바른 분권화다.

연방정부는 각 직무의 역할과 책임을 명확히 하고, 그것에 따라 총리와 장관들이 각자 독립된 자율적 주체로서 일할 수 있도록 구조와 시스템을 만들었다. 다양한 의견을 가진 장관들과 총리가 서로 협력하면서 토론하지만 아무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거나 명령할 수 없다. 수평적인 합의의 원칙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방정부의 업무수행방식은 주정부뿐만 아니라 모든 행정기관과 사법기관에 그대로 적용된다.

이러한 공적인 업무수행관행은 1976년 공동결정법(Mitbestimmungsgesetz, Codetermination Act)으로 공식화되었다, 여기서 공동 결정이라는 말은 어떤 결정이 타인의 존재 방식이나 일하는 방법에 영향을 끼치는 경우 당사자 간 합의를 거쳐야 한다는 의미다. 이러한 공동결정법의 정신은 기업조직을 넘어 여타 기관들의 운영 방식에도 분권화를 가속화시켰다.

각자 맡고 있는 직무를 통해 어떤 성과를 얼마만큼 창출해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정의하면 구태여 지시와 명령이 없어도 된다. 이런 직무 설계(job design)를 통해 직무 담당자로서의 독립된 자율적 개인이 탄생한 것이다. 이것이 독일의 생산성과 창의성을 높여왔으며 인더스트리 4.0을 가능케 했다.


■ 인사조직 4.0을 위하여

독일이 제조업 분야에서부터 혁신을 일으키고, 이것이 전 산업분야로 전파되는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려면, 인사조직설계의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원칙을 알아야 한다.

첫째, 직무 담당자들은 어떤 경우에도 독립된 자율적 주체로서의 개인적인 자주성(personal autonomy)을 확립한다.

둘째, 일생을 거쳐 다양한 직종에 적응하면서 타인과 협업하며 기계와도 순조로운 상호작용(man-machine interaction)이 가능한 개인적인 상호운용성(personal interoperability)을 높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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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풍요롭고 인간적 삶을 향유할 수 있는 개인적인 지속가능성(personal sustainability)을 추구한다.

독일 인사조직설계의 이 세 가지 원칙은 패전 후 나치와 결별하면서 강조해왔던 대원칙인 분권화(decentralization)에 기초하고 있다. 우리가 이 분권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면 인더스트리 4.0의 구현은 불가능하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최동석 현) 최동석인사조직 연구소장

한양대학교 특임교수, 교보생명 부사장, 한국은행 선임조사역을 역임했다. 독일 기센대학에서 경영학 석*박사(인사조직 전공)를 취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