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가상자산) 과세에 대한 법적 근거가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빗썸에 외국인 이용자 소득세 원천징수로 약 730억원의 세금이 부과돼 '과세 적정성 논란'이 일고 있다.
외국인의 암호화폐 거래 이익을 과세 대상으로 봐야 하는지가 이번 논란의 핵심 쟁점이지만, 이 부분을 규정해야 할 시행령이 기획재정부의 방치로 20년째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과세당국이 업무를 방기하고 기업에 묻지마 세금폭탄을 던졌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워졌다.
3일 본지 취재 결과 빗썸 과세의 적정성을 판가름할 '비거주자(외국인)의 국내자산 범위'를 규정해야 할 소득세법 시행령이 20년째 부재한 것으로 확인됐다.
우리나라는 소득세법에서 열거주의와 조세법률주의를 따르고 있다. 법에 규정되지 않은 대상에 대해 정부가 과세할 수 없다는 의미다. 따라서 소득세법과 관련 시행령에 외국인의 암호화폐 거래 이익에 과세할 수 있다고 해석되는 조항이 있느냐가 이번 과세의 적정성 여부를 판가름할 핵심이다.
국세청은 소득세법에 외국인의 암호화폐 거래이익을 '비거주자의 기타소득'으로 해석할 수 있는 조항이 있다며, 법적 근거가 있다는 입장을 펼치고 있다.
국세청이 근거로 든 조항은 두 가지다. 소득세법 119조 12호 마목 부동산 외의 '국내 자산'을 양도함으로써 생기는 소득과 12호 카목 '국내에 있는 자산'과 관련해 받은 경제적 이익으로 생긴 소득이다. 이 두 가지 조항에 근거해 암호화폐 거래이익을 비거주자의 기타소득으로 해석했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국세청이 근거로 삼은 조항에 있는 '국내 자산'이 너무 포괄적이라, 시행령에서 그 대상을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하는데 관련 시행령 자체가 없다는 점이다.
확인결과 국세청이 근거로 삼은 조항인 119조 12호 마목과 카목에 대한 시행령은 부재한 상태다. 2000년 정부입법으로 소득세법을 개정하면서 '국내 자산'에 대한 규정을 시행령에 위임한다고 명시했지만, 그 일을 해야할 기재부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시행령을 만들지 않은 것이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소득세법 열거주의를 따르는 만큼 '국내 자산'처럼 포괄적인 규정은 시행령에서 자산 범위를 구체적으로 규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유사한 기타소득 범주들은 모두 시행령에서 구체적으로 그 원천을 규정해놓고 있는 데 12호 마목과 카목은 시행령이 없다"고 확인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마목과 카목의 '국내 자산'을 규정한 시행령이 없는 이유에 대해 "굳이 시행령에서 자세하게 마련하지 않아도 현실적으로(해석상 이견이) 부딪힐 사례가 지금까지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동안 시행령이 없어도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굳이 만들지 않았다는 설명인데, 암호화폐 거래에 과세하기전에 시행령부터 정비했어야 한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앞서 국세청이 기재부에 소득세법 119조 12호 마목, 카목을 근거로 빗썸에 과세가 가능한지 법령해석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재부는 이에 답변하지 않았는데, 시행령 자체가 없어서 답변을 못한 것 아니냐는 합리적인 의심도 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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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은 시행령이 없이 지나치게 포괄적인 규정만으로 기업에 세금을 징수했고, 세제 업무를 총괄하는 기재부는 업무를 방기했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는 대목이다.
한편, 국세청은 2014년부터 5년간 빗썸 내 외국인 이용자의 원화출금액을 '기타소득'으로 해석해 소득세를 부과하고, 빗썸을 소득세 원천징수 의무자로 보고 실제 세금을 납부하도록 했다. 빗썸은 지난해 12월 중순 과세전적부심 불채택 결과를 받고 말일께 세금을 완납했다. 하지만, 이번 과세가 지나치다고 보고 조세심판원 행정심판 청구를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