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 유료방송 시장은 그동안 없던 격변을 겪었다. 핵심은 인수·합병(M&A)이다. IPTV와 케이블TV 간 M&A가 본격화되면서, 유료방송 시장 재편이 눈앞에 다가왔다.
변화는 스스로 일어나지 않았다. 넷플릭스와 유튜브 등 인터넷동영상서비스(OTT)의 성장은 유료방송 시장 전체의 위기감을 높였다. 그동안 IPTV와 케이블TV로 양분된 시장에서 제한적인 경쟁만 이어갔던 유료방송 업계는 거대한 적에 맞서 힘을 합치는 방안을 자연스레 떠올렸다.
시장 내 플레이어의 변화는 경쟁의 축도 바꿨다. 과거 미디어 시장은 플랫폼을 중심으로 ‘어떻게 볼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지만, 이제는 콘텐츠를 중심으로 ‘무엇을 볼 것인가’가 더 중요해졌다.
시장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사업자들의 노력도 분주해지고 있다. IPTV 사업자는 몸집을 불려 글로벌 사업자와의 경쟁에 밀리지 않기 위한 기초 체력을 확보하는 한편, 적극적인 콘텐츠 투자를 통해 역으로 해외시장을 노리겠다는 전략을 준비 중이다. 케이블TV 사업자는 더 이상 IPTV와 동등하게 경쟁하기 힘들다는 점을 자각하고, 생존을 위한 출구 전략을 준비하고 있다.
■ 규모의 경제 실현…유료방송 M&A 속도
정부는 지난 13일 LG유플러스의 CJ헬로 인수를 승인하며, 국내 유료방송 시장에 한 획을 그었다. IPTV 사업자의 케이블TV 인수를 허용한 첫 사례다. 주무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이르면 이달 말 SK텔레콤의 자회사인 SK브로브밴드와 티브로드 합병에 대한 결정도 내놓을 방침이다.
LG유플러스와 SK텔레콤의 케이블TV M&A 움직임은 올 초부터 시작됐다. LG유플러스는 지난 3월 CJ헬로 발행주식 총수의 절반과 1주를 취득하는 계약을, SK텔레콤은 자회사 SK브로드밴드와 티브로드를 합병하는 내용의 계약을 각각 체결한 후 정부에 인가를 신청했다.
3년 전 SK텔레콤의 CJ헬로 인수에 불허 결정을 내린 공정위는 올해 LG유플러스와 SK텔레콤의 기업결합 심사에는 최종 승인을 결정했다. 기술 환경 변화에 따라 M&A가 불가피하다는 취지다.
공정위 다음 단계인 과기정통부 역시 LG유플러스의 CJ헬로 인수를 승인했다. SK텔레콤의 합병 심사에는 방송통신위원회의 의견 수렴 과정이 필요한 만큼, 최종 결정 시기가 다소 늦춰졌다.
이에 내년 유료방송 시장은 IPTV 3사를 중심으로 재편될 것으로 예상된다, LG유플러스에 이어 SK텔레콤의 M&A가 구체화되고, KT 역시 추가적인 M&A에 나설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유료방송 시장이 재편됨에 따라 3사는 각종 콘텐츠 및 서비스를 고도화하는 등 투자도 늘릴 것으로 전망된다.
■ 시장은 변하는데…갈피 못잡는 국회
유료방송 시장이 M&A로 재편되는 가운데 유독 웃지 못하는 사업자가 있다. 국내 유료방송 업계 1위인 KT가 주인공이다. 경쟁사업자가 몸집을 불리며 턱밑까지 추격하는 사이, KT는 ‘합산규제’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6월 사라진 합산규제가 아직까지 영향을 미치는 이유는 국회의 미적지근한 태도가 원인으로 지목된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가 합산규제 재도입 카드를 만지작거리면서 KT는 이도 저도 못하는 상황에 놓였다.
합산규제는 특정 사업자가 유료방송 시장점유율의 1/3 이상을 차지할 수 없도록 제한하는 내용이다. 국회는 이미 사라진 합산규제를 재도입할 것인지를 두고 올해 초부터 논의를 이어갔으나, 뾰족한 결말을 내놓지 못했다.
결국 국회는 지난 7월 합산규제 재도입 대신 사후규제방안을 도입하겠다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최종안을 도출하지는 못했다. 당초 8월 내 확정하겠다는 최종안은 한 해가 지나가는 현재까지도 깜깜무소식이다. 국회의 방치 속에 KT는 경쟁사의 M&A 움직임을 지켜만 보고 있다.
국회가 유료방송 사후규제안을 빠르게 확정할 경우, KT의 M&A 참여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과기정통부는 LG유플러스의 CJ헬로 인수를 설명하는 자리에서 “KT도 유료방송 M&A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시장 변화가 급박하게 진행된다는 점을 감안해 향후 M&A에 대한 결론이 빠르게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 새로운 먹거리…OTT에 승부수
글로벌 OTT가 미디어 시장에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면서, 유료방송 사업자들의 OTT 개편도 시작됐다. 우선 SK텔레콤은 자회사인 SK브로드밴드가 보유한 ‘옥수수’와 지상파 방송사 3사가 보유한 ‘푹’을 하나로 합치는 작업에 착수했다. SK텔레콤 입장에서는 안정적인 콘텐츠 수급이, 지상파 방송사 입장에서는 안정적인 가입자 기반이 필요했다. 서로의 이해관계는 통합 OTT인 ‘웨이브’로 거듭났다.
SK텔레콤의 앞선 걸음에 KT도 호응했다. KT는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올레tv 모바일을 ‘시즌’으로 개편하고 본격적인 OTT 시장 진출을 선언했다. 시즌은 지상파·종편·CJ 계열 등 국내 최대 규모의 콘텐츠를 앞세웠다. 중국 차이나모바일의 콘텐츠 담당 계열사인 미구와 콘텐츠를 교류하고, 2020년에는 중국 시장에 진출하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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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 OTT의 출사표는 내년에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 내년 상반기 CJENM과 JTBC는 OTT 합작법인을 만들고. 통합 OTT 플랫폼을 출시할 예정이다. CJENM과 JTBC의 결합은 익숙한 ‘플랫폼+콘텐츠’ 기업 간 융합이 아닌, ‘콘텐츠+콘텐츠’ 기업이 힘을 합친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글로벌 OTT와 국내 OTT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국내 콘텐츠 업계는 뜻밖의 호황이 기대된다. OTT 플랫폼 개발에 고도화된 기술이 필요하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콘텐츠의 힘이 OTT 성공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앞서 웨이브는 2023년까지 독점 콘텐츠 확보를 위해 3천억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혔고, KT는 전체적인 콘텐츠 투자 금액인 1조원 중 상당부분을 독점 콘텐츠 개발에 쓰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넷플릭스는 CJENM의 콘텐츠 제작 자회사인 스튜디오드래곤의 지번 4.99% 매입 계약을 체결하며, 국내 콘텐츠 수급에 공을 들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