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정부, WTO 협의 앞두고 불산액 수출 허가 왜?

박재근 교수 "엄격한 심사 강조하기 위한 명분쌓기"

반도체ㆍ디스플레이입력 :2019/11/18 16:24    수정: 2019/11/18 17:11

일본 정부가 지난 7월부터 시작된 대(對) 한국 수출 규제 이후 처음으로 고순도 불산액의 한국 수출을 허가했다.

그러나 국내 반도체 업계와 학회는 일본 정부의 수출 허가가 WTO 제소 이후 진행되는 2차 양자협의를 위한 명분쌓기에 불과하다고 파악하고 있다. '수출 규제'를 강조한 한국 정부에 '수출 규제나 차별이 아닌 심사 강화'로 맞서기 위한 사전 '명분쌓기'이자 재료라는 것이다.

일본 경제산업성이 지난 16일 대 한국 불산액 수출을 허가했다.

한국 정부 역시 오는 19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일본과의 2차 양자협의에 앞서 "제소 목적은 수출 규제 철회이며 수출 허가를 통한 물량 상승이 목표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 日 정부, 7월 이후 처음으로 불산액 수출 허가

국내 업계와 일본 언론 등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7월 수출 규제 시행 이후 처음으로 지난 16일 액체 불화수소(불산액) 한국 수출을 허가했다. 해당 수출건은 전 세계 고순도 불화수소 시장에서 점유율 60% 이상을 차지한 1위 업체인 스텔라케미파가 신청한 건이다.

경제산업성이 7월 4일부터 10월 말까지 허가한 대(對) 한국 수출허가 품목은 포토레지스트 3건, 고순도 불화수소 3건,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1건 등 총 7건에 불과했다. 불산액의 한국 수출을 허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고순도 불산액. 반도체 식각/세정 등 공정에 쓰인다. (사진=스텔라케미파)

일본 재무성이 공개한 무역통계에 따르면 일본 기업이 6월 한 달간 한국에 수출한 불화수소는 총 2천450톤이었지만 7월에는 약 20% 수준인 479톤으로 급감했다. 8월 이후 10월 말까지는 아예 수출 물량이 없었다.

수출 규제가 본격화되며 스텔라케미파도 큰 타격을 입었다. 이 업체가 최근 발표한 올 4월부터 9월까지 실적에 따르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매출은 12%, 순이익은 58%가 줄었다. 스텔라케미파는 불과 지난 주 초만 해도 "한국 수출 물량의 허가를 받지 못했다"고 밝힌 바 있다.

■ "日 수출 허가, WTO 제소 우위 위한 '명분 쌓기'"

그러나 반도체 관련 업계와 학회는 이번 일본의 수출 허가에 대해, 오는 19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2차 양자 협의를 염두에 둔 '명분쌓기'로 평가했다.

반도체·소재 전문가인 박재근 한양대학교 융합전자공학부 교수(한국 반도체·디스플레이 학회장)는 "일본 정부는 '불산액이 전략 물자이며 수출 이후 악용되지 않도록 엄격한 심사를 적용했다'는 논리를 성립시키기 위해 수출을 허가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재근 한양대학교 융합전자공학부 교수. (사진=뉴스1)

박재근 교수는 또 "불산액은 이미 상당 부분 국산화가 진행되었고 국내 업체도 수입선이나 제조사 다변화에 나섰다. 따라서 수출 허가가 나왔다 해도 스텔라케미파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수출 허가를 내주지 않으면 일본 정부의 논리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 "불산액 수출 허가, 양자 협의에 영향 없다"

한국 정부는 지난 9월 11일 일본 측 수출제한조치에 대해 WTO에 양자협의 요청을 주요 내용으로 제소한 바 있다. 양자협의요청서에 따르면 제소 대상은 일본이 대한 수출제한조치한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포토레지스트(감광액), 불화수소 등 3개 품목이다.

한일 양국은 지난 11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WTO 제소 첫 단계인 양자협의에 돌입했지만 입장 차이만 확인했다. 오는 19일(현지시간)에는 2차 양자 협의가 예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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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관 산업통상자원부 신통상질서협력관. (사진=뉴스1)

양자 협의를 위해 18일 오전 스위스 제네바로 출국한 정해관 산업통상자원부 신통상질서협력관 역시 "우리 정부의 제소 목적은 일본의 부당한 수출 규제 철회이며 일본 정부의 수출 허가는 양자 협의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뉴스1 등에 따르면 정 협력관은 인천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나 "일본 측이 이번 협의에 소극적으로 임한다면 다음 단계인 패널 설치 절차를 적극 검토하고 추진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