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우울증, 불안장애 등 겉으론 잘 보이지 않지만 점점 더 많은 현대인들이 겪는 정신 질환이다. 이는 개인 뿐 아니라, 그 가족, 그리고 사회 전체를 힘들게 한다는 점에서 더욱 해결이 시급한 문제다.
그 동안 이런 문제들은 전문의 상담이나 약물 치료에 의존해 왔다. 그런데 최근 애플리케이션 등 소프트웨어를 이용한 ‘디지털 치료제’가 정신 건강 도우미 역할을 하고 있다. 연세대학교 인지과학연구소(HCI Lab) 김진우 교수가 지난 2016년 교원 창업한 하이(HAII)도 디지털 치료제 개발에 전문성을 키우고 있는 대표 회사 중 하나다.
■ 성인 5명 중 1명 정신 관련 어려움 겪어...“AI로 문제 풀어보자”
시장조사업체 그랜드뷰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디지털 치료제 시장은 지난해 약 2조원(17.4억 달러)에서 연평균 20%씩 성장해 2025년에는 약 10조원(약 87억 달러)에 달할 전망이다. 우울증이나 ADHA 등 정신 질환 문제를 약이 아닌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와 같은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치료하는 시장이 날로 커지고 있다는 뜻이다.
하이의 경우 ‘인간-컴퓨터 상호작용’(Human-Computer Interaction, HCI)과 인공지능(AI) 기술이 연결되면서도, 실생활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사업을 하자는 계획 하에 설립됐다. 이공학 개인기초과제를 따낸 것이 계기가 됐고, 어려운 사람한테 도움을 주겠다는 생각이 교원 창업 발단이 됐다. 김진우 교수는 연세대학교 총장의 허가로 교수와 사업체 대표직을 겸직할 수 있게 됐다. 올해로 25년 간 연세대 안에서 교수직을 지낸 김 교수 개인적으로는 기존 전문 학식을 이용한 새로운 분야의 도전이었다.
“하이는 치료 목적의 인생 동반자 봇 회사라고 보시면 됩니다. 우울증, 불안장애, 공황장애, 주의력 결핍 및 과잉 행동 장애(ADHD), 치매 등 성인 5명 중 1명은 정신 문제를 겪고 있다고 해요. 우리나라 5대 질병 중 상위에 정신건강 문제가 포함돼 있죠. 저희는 AI 기술이 적용된 소프트웨어로 이 문제를 풀고자 합니다.”
김진우 교수가 디지털 치료제 개발에 뛰어든 계기는 개인적 경험도 작용했다. 한 학기 1~2명의 제자들이 우울증 등의 문제를 겪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반복됐던 것이다. 남이 겪는 어려움이 아니라 내 가족, 내 가까운 지인들이 정신건강의 어려움으로 세상을 떠나는 현실의 문제를 풀어보고 싶었던 게 영향을 미쳤다.
“그동안 약으로 했던 치료를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실질적인 근거를 갖고 해보자는 것이 디지털 치료제 개념입니다. 가까운 미래에는 약물이나 하드웨어가 아닌 오로지 소프트웨어만으로 질병을 치료하는 시대가 올 것이고, FDA 승인이 어렵고 보험적용이 안 돼 경제적 부담이 큰, 또 약물 부작용도 있는 정신건강 분야에서 디지털 치료제 쓰임새가 더욱 커지게 될 겁니다.”
■ 디지털 치료제 개발 앞서는 미국...“하이 강점의 사용자 경험”
김 교수에 따르면 주요 제약사들은 치매 관련 임상 실험에서 많은 실패를 겪고 있다. 신약이 거의 한계점에 온 것 아닌가 할 만큼 치매는 제약회사의 무덤으로 불린다. 반면 소프트웨어를 이용한 디지털 치료제는 안전성 측면에서 큰 부담이 없다.
“미국 정부는 2016년부터 소프트웨어를 이용한 디지털 치료 산업 발전에 공을 들이기 시작했어요. IT 회사와 제약 회사들이 모여 소프트웨어로 질병을 치료하는 연구개발을 진행했고, 정부는 특정 요건만 갖추면 단축된 검사 절차 만으로 허가를 내주겠다고 했죠. 보통 10~15년 걸리는 의약품 심사 절차를 3년 안에 끝내주겠다는 탄력적인 심사 절차를 마련한 거죠. 우리 식약처에서도 올해 9월 디지털 치료를 위한 소프트웨어 허가 심사 가이드라인이 나왔습니다.”
미국의 경우 정부의 이런 파격적인 지원 덕분에 올해 페어라는 기업이 알코올, 담배 등 중독치료를 위한 인허가를 받았다. 이 회사는 현재 불면증, 우울증도 임상실험을 진행 중인데, 1년 만에 정부로부터 인허가를 받겠다는 목표다. 클릭 테라퓨틱스 등도 보험회사나 제약사들과 손을 잡고 소프트웨어형 디지털 치료제를 활발히 개발 중이다. 아킬리 인터랙티브 랩의 경우는 가상현실, 증강현실 게임을 이용한 우울증 치료 소프트웨어를 연구개발하고 있다.
김진우 교수가 전문성을 갖는 부문은 사용자 경험 쪽이다. 미국이 디지털 치료제를 평가할 때 여러 항목을 검토하는데, 그 중 사용자 경험이 절반 이상을 차지할 만큼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승인 과정에서 해당 디지털 치료제가 얼마나 안전한지, 또 효과가 있는지도 따지지만 사용자 경험이 어떤지를 훨씬 비중있게 고려한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하이는 HCI와 AI 전문 회사예요. 정신건강을 강화하는 동반형 봇을 개발 중이죠. 국가 과제를 진행하면서 연구개발이 시작됐고, 현재 세 가지 파이프라인을 갖추고 있어요. 이미 치매와 관련해서는 오픈베타 서비스를 시작했고, ADHD, 우울증 등에 도움을 주는 디지털 치료제를 준비 중입니다.”
■ 치매는 ‘새미’·ADHD는 ‘뽀미’·우울증은 ‘유미’가 도움
하이는 현재 어르신들의 인지능력을 강화해 치매를 예방해주는 카카오톡 챗봇 서비스인 ‘새미’를 출시한 상태다. 또 기저핵을 강화해 ADHD 치료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뽀미’, 20~30대 젊은 사람들이 많이 겪는 우울증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유미’를 개발 중이다.
“치매는 약으로 치료가 불가능 하니, 치료 보조제를 이용해 뇌에 영양분을 줘서 뇌를 활성화 시키는 쪽으로 치료가 이뤄지고 있어요. 예방만이 답인 게 현실입니다. 새미는 카톡 채팅을 통해 계산, 언어, 집중력, 실행능력, 기억력 훈련 등을 통해 치매를 늦춰주는 역할을 합니다. 머리를 계속 쓰도록 해 뇌를 활성화 시키는 것으로 서울대병원, 이대목동병원과 같이 하는 프로젝트입니다.”
김진우 교수에 따르면 새미는 계속 사용자를 추적해 과학적 근거를 쌓고 있다. 아직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는 없지만, 초기 임상실험을 통해 전전두엽 활성화 효과가 있는 것을 확인했다. 트레이닝 시간과, 실험군을 늘리면 통계적인 효과 확인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뽀미는 상명대학교, 카이스트, 서울세브란스병원,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 신의진 의사 등과 연구개발 중이다. 초등생 대상으로 일상생활에서 기저핵 활동을 낮추는 보이스 봇을 개발했다. 또 이를 이용할 수 있는 공 모양의 AI 스피커와 앱도 만들었다.
“ADHD는 초등학교 한 반에 2~3명 정도가 겪는다고 해요. 그런데 그 중에 병원에 오는 경우는 20% 미만이죠. ADHD 진단을 받게 되면 엄마나 아빠의 경제활동이 위축되고, 둘 중 한 명은 경제활동을 포기하게 됩니다. 한 명이 전담해서 아이를 관리하다 보니 보통 엄마와 아이의 관계가 나빠지는 문제가 생기죠. 엄마의 스트레스를 낮춰주고, 저희가 개발한 공처럼 생긴 AI 스피커가 악역을 맡는 역할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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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 하이는 제일 큰 시장이면서 접근하기 어려운 우울증 문제 해결을 위해 강남세브란스병원과 연세대, 카이스트 등과 협력하고 있다.
“임상 실험 1, 2단계를 거쳐 효과가 입증이 되면 관심 있어 하는 파트들이 많아질 거라고 봅니다. 제약회사, 보험회사, 의료 관련 벤처캐피탈 등이 대표적이죠. 저희는 교원 창업 기업으로서 연구개발에 집중해서 디지털 치료제가 실제 정신건강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