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저장장치(ESS)에 또 불이 붙었다. 정부가 ESS 안전강화 대책을 내놓은 지 3개월 만에 벌써 3번째 발생한 화재다.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가 소방당국, ESS 제조사 등과 긴급 원인 파악에 나섰지만, 아직 이렇다할 대응책은 나오지 않았다. 피해는 또다시 민간 사업자들의 몫이 됐다.
30일 경북소방본부에 따르면 전날(29일) 오후 7시 36분 군위군 우보면 한 태양광발전설비업체의 ESS 저장소에서 원인불명의 화재가 발생했다.
이 불로 15.97 제곱미터(㎡) 규모의 저장소와 ESS 모듈 153점이 전소됐다. 해당 설비가 평소 무인으로 관리됐고 주변에 민가가 존재하지 않아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소방서 추산으로 4억6천여만원 상당의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 한 달 만에 화재 3건…정부 대책 실효성 있나
이번 화재는 앞서 두 건에 화재에 이어 한 달여 만에 발생한 것이다.
지난달 30일에는 충남 예산군 광시면의 한 태양광 발전시설에서 불이 나 ESS 2기 중 1기가 전소됐다. 또 지난 24일에는 강원 평창군 미탄면 풍력발전소 ESS 발전실에서 발생한 화재로 리튬이온배터리 2천700개와 전력변환장치 1개가 불에 탔다.
특히 이 3건의 화재는 모두 정부가 ESS 원인규명과 이에 따른 대책을 내놓은 이후에 발생한 것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산업부는 지난해 12월 민관합동 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올해 6월 화재 원인을 발표했다. 원인은 ▲배터리 보호 시스템 미흡 ▲운영환경 관리 미흡 ▲설치 부주의 ▲ESS 통합제어·보호 체계 미흡 등 총 4가지였다. 당시 조사 과정에서 배터리 결함이 일부 발견됐지만, 이는 주요 원인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어 정부는 화재원인을 토대로 ESS 제조·설치·운영 단계의 안전관리를 강화하고, 소방기준 신설을 통해 화재대응 능력을 제고하는 종합 안전강화 대책을 시행해 왔다.
■ "대책이 있긴 한가요"…답답한 사업자들
정부의 대책 발표 이후에도 화재가 잇따르자 ESS 사업자들 사이에서 불안감이 확산하는 모습이다. 명확한 화재 원인과 그에 따른 책임 소재를 밝히지 못한 정부 대책이 실효성을 잃었다는 게 중론이다.
산업부에 따르면 국내 ESS 사업장은 지난달 말 기준으로 1천500여 개에 달한다. 한 ESS 사업자는 "지금 가장 답답한 쪽은 언제 불이 날지 모르는 데도 계속 ESS 사업을 해야 하는 전국 민간 사업자들"이라며 "도대체 정부의 대책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대책이 있기는 한 것이냐"고 지적했다.
앞서 화재에서 피해를 본 일부 사업자들은 화재 원인이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는데도 배터리 공급사가 무리하게 충전량을 높여도 된다고 제안해 사고가 발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난달 충남 예산에서 발생한 두 번째 화재 당시 현장 설비 관계자에 따르면, 해당 설비는 사고 발생 이틀 전에 배터리 충전잔량(SOC)을 약 20% 높인 것으로 알려졌다. 충전량을 높인 게 배터리 과열로 이어져 불이 났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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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ESS 화재는 다음 달 2일 시작하는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도마 위에 오르게 됐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산자위)는 ESS 공급사인 LG화학과 삼성SDI 관계자들을 증인으로 채택했다. 최근까지 발생한 ESS 화재 사고 25건 중 양사가 관련된 사고는 20여 건에 이른다.
안전강화 대책을 발표한 산업부 역시 이번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게 산자위의 입장이다. 산자위는 다음 달 7일 산업부 국감에서 정부 관계자들을 상대로 ESS 화재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룰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