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SW 대부’ 리처드 스톨먼, 갑작스런 사퇴...왜?

MIT교수·자유SW재단 이사장 사임...엡스타인 영향 관측도

컴퓨팅입력 :2019/09/18 18:04    수정: 2019/09/18 20:48

리처드 스톨먼이 미국의 비영리단체 자유소프트웨어재단(FSF) 이사장과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내 연구소 객원과학자 자리에서 물러났다.

스톨먼은 'GNU 프로젝트'로 대표되는 자유SW 운동을 이끌고 FSF재단 설립을 주도해 컴퓨터과학계와 소프트웨어(SW) 개발자 커뮤니티 내에서 엄청난 존재감을 과시하는 인물이다. 그는 또 자유·오픈소스SW 생태계와 문화의 형성에도 큰 영감을 불어넣은 인물로 인정받아 왔다.

그런 상징성을 가진 인물이 핵심 단체와 학교에서 갑자기 떠나면서 "외부 압력 탓"이라고 밝혔다. 반면 협력관계인 FSF유럽 재단에선 "환영한다"는 표현을 써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석연찮은 상황의 배경에는 스톨먼 자신의 과거 언동이 있다. 그는 성인과 미성년자간 성관계를 문제로 보지 않는다고 발언한 적 있다. 그가 최근 교내에 보낸 이메일 가운데 미성년자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혐의를 받은 MIT 동료 교수를 옹호한 입장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런 그의 행적에 세간의 비판이 집중됐고, MIT 학내에서도 같은 맥락에서 드러나지 않게 압력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리처드 스톨먼. [사진=미국 지디넷]

■ 쫓겨나듯 FSF 이사장·MIT 객원과학자 사임

FSF는 지난 16일 홈페이지를 통해 "FSF의 설립자이자 이사장인 리처드 스톨먼이 이사장직을 사임하고 이사회에서 물러났다"며 "재단 이사회는 새 이사장 인선 절차를 즉각 실행할 것이며 인선 작업 관련 세부 내용은 추후 공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재단 측은 공지에서 스톨먼의 사임 배경이 무엇인지와 재단의 입장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이날 스톨먼은 몸담아 온 미국 MIT 컴퓨터과학 및 인공지능연구소(CSAIL)에서도 떠나기로 했다고 스스로 밝혔다. 그는 MIT CSAIL의 '객원과학자(Visiting Scientist)'였다. 그는 개인 홈페이지를 통해 학교 측에 "MIT CSAIL 내의 지위에서 당장 물러난다"며 "이는 MIT와 내게 일련의 오해와 왜곡을 바탕으로 가해진 압력 때문"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 17일 유럽자유소프트웨어재단(FSFE)에서도 이를 공지했다. FSFE는 미국 FSF와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자매 단체'다. FSFE 측은 공지를 통해 "미국 FSF에서 리처드 스톨먼의 이사장직 사임을 발표했다"면서 "자유소프트웨어 운동 내에서 스톨먼의 역할을 인정하지만, (사임) 결정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FSF 발표 영어 원문 바로가기 ☞ Richard M. Stallman resigns]

[리처드 스톨먼 홈페이지 영어 원문 바로가기 ☞ 16 September 2019 (Resignation)]

[FSFE 공지 영어 원문 바로가기 ☞ Richard Stallman resigns as president of the Free Software Foundation]

이를 보도한 주요 IT매체는 스톨먼의 사임을 배경으로 미성년 성범죄자 '제프리 엡스타인'의 행위를 옹호하거나 그 범죄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식의 발언을 꼬집었다. 미국 지디넷은 기사 제목에 스톨먼이 "제프리 엡스타인의 행동을 옹호한 뒤 FSF에서 물러났다"고 썼고, 테크크런치도 "제프리 엡스타인을 옹호한 컴퓨터 과학자 리처드 스톨먼이 MIT CSAIL과 FSF에서 사임했다"고 표현했다.

[미국 지디넷 영어 원문 바로가기 ☞ Richard Stallman resigns from Free Software Foundation after defending Jeffrey Epstein behavior]

[테크크런치 영어 원문 바로가기 ☞ Computer scientist Richard Stallman, who defended Jeffrey Epstein, resigns from MIT CSAIL and the Free Software Foundation]

■ 엡스타인이 누구기에…'수많은 유력 인사들과 연줄 있었던 부호·미성년 성범죄자'

스톨먼의 FSF 이사장 및 MIT 객원과학자 사임은 미국의 부호 제프리 엡스타인(Jeffrey Epstein)의 미성년자 성착취 범죄사건을 바라보는 세간의 시선이 그만큼 가볍지 않음을 시사한다.

앞서 MIT는 재직했던 교수가 과거 알려진 것과 별개로 추가 폭로된 엡스타인의 미성년자 성착취 범죄 혐의에 연루된데다 학교 산하 연구소가 엡스타인으로부터 거액의 기부금을 비공개로 받은 점 때문에, 곤혹스러운 상태였다.

엡스타인은 2000년대초 뉴욕과 플로리다에서 미성년자 수십명을 상대로 성행위 강요와 성매매 등 성범죄를 저지른 혐의를 받았던 '아동성애자(pedophil)'이자, 지난 2008년 그 일부 혐의가 인정돼 법원에서 실형을 선고받아 13개월을 복역하고 풀려난 성범죄자다. 그의 미성년자 성착취 범죄 혐의가 최근 재조명됐다. 과거 피해자 가운데 신원을 밝힌 일부를 포함한 다수의 구체적인 폭로가 새로 나오면서다.

엡스타인 미성년자 성착취 피해자들은 성인이 된 뒤 미국 정부를 상대로 다시 소송을 제기했다. 그 과정에 엡스타인의 범죄 혐의를 구체적으로 다룬 언론 보도는 당시 검찰 수사의 공정성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사건을 재수사한 미국 뉴욕남부연방검찰이 올해 7월 엡스타인을 미성년자 성매매 혐의로 체포했다. 엡스타인은 지난달 수감된 교도소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추가 폭로된 엡스타인의 범죄 혐의 가운데 지난 2016년 사망한 MIT의 마빈 민스키(Marvin Minsky) 교수와 관련된 내용이 있었다.

지난달 더버지 보도에 따르면 미성년자 성착취 피해자 중 한 명인 버지니아 주프레(Virginia Giuffre)는 자신이 17세였던 2001년에 버진아일랜드의 엡스타인 개인소유 시설에 방문한 각계 유력 인사들과 강제로 성관계를 해야 했다고 증언했다. 그가 상대한 인물 중 하나로 민스키가 지목됐다.

[더버지 보도 영어 원문 바로가기 ☞ AI pioneer accused of having sex with trafficking victim on Jeffrey Epstein’s island]

또 테크크런치는 '뉴요커'가 엡스타인이 MIT미디어랩에 과거 알려진 것보다 훨씬 액수가 큰 750만달러 규모의 기부금을 냈음을 밝혀냈다고 전했다. 그에 따라 조이 이토(Joi Ito) 디렉터가 지난주 사임했고 MIT가 학교 차원에서 미디어랩과 엡스타인간의 접점을 파악하라는 결정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 MIT 연구자들과 토론한 스톨먼의 과거 이메일 폭로돼 사임 압력 '도화선'으로

이 무렵 스톨먼은 MIT CSAIL의 동료 연구자들을 상대로 신중하지 못한 발언을 남겼다. MIT 졸업생이자 학교의 기계공학자인 셀람 지에 가노(Selam Jie Gano)가 그런 스톨먼의 이메일 내용을 공개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가노는 스톨먼이 '민스키는 잘못한 게 없다'는 취지의 주장을 폈다는 이메일 타래를 게재했다.

바이스, 아스테크니카 등 외신에 인용된 이메일 내용을 보면 스톨먼은 '성폭행(sexual assault)'과 '강간(rape)'을 정의하며 그게 '민스키와 강제로 성관계를 했다'는 주프레의 증언에 적용될 수 있는지 여부를 두고 동료 연구자들을 상대로 논지를 폈다. 먼저 그는 주프레가 민스키와 성관계한 것이 사실이라면 "가장 설득력있는 시나리오는 그(주프레)가 자신을 그(민스키)에게 자진해서 내준 것"이므로 '민스키와 강제로 성관계를 했다'는 주프레의 증언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또 이메일에선 성행위의 강제 여부를 가를 수 있는 법적 '동의(consent)'의 유효 연령이 사건이 발생한 미국령 버진아일랜드 지역에선 18세 이상이기에, 버진아일랜드에서 민스키와 성관계할 당시 17세였던 주프레의 의지가 어떻건 그건 '법적으로 강간'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그러나 이에 스톨먼은 "피해자가 어느 나라에 있었는지, 또는 그가 17세였는지 18세였는지같은 사소한 세부사항에 의존해 '강간'을 정의하는 건 윤리적으로 터무니 없다"고 반박했다.

[MIT 셀람 지에 가노의 블로그 영어 원문 바로가기 ☞ Remove Richard Stallman]

[바이스 보도 영어 원문 바로가기 ☞ Famed Computer Scientist Richard Stallman Described Epstein Victims As 'Entirely Willing']

[아스테크니카 보도 영어 원문 바로가기 ☞ Richard Stallman leaves MIT after controversial remarks on rape]

이에 가노는 스톨먼이 엡스타인의 미성년 성착취 범죄 피해자였던 버지니아 주프레를 성폭행한 인물 중 하나로 지목된 민스키를 옹호했다고 봤다. 미국 지디넷에 따르면 그는 또한 "MIT는 엡스타인의 기부를 통해 그의 명성을 높이고 싶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기부를 받고 명성을 높여줬을 뿐만아니라, 리처드 스톨먼같은 사람(person)을 객원과학자로 받아들이기까지 했다"면서 "MIT는 그런 남자들(men)을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성인-아동간 성행위 생각 바꿨고 엡스타인 옹호한 적 없다"

해당 이메일은 과거의 스톨먼이 가진 생각을 분명히 보여 준다. 그런데 스톨먼은 이후 자신의 견해에 문제가 있었음을 인정하고, 지금은 다른 견해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과거의 이메일 내용이 처음 외부에 보도된 지난 14일,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여러 해 전 나는 아동이 그걸 받아들였다면 성인과 아동간의 성행위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글을 썼다"고 인정했다. 이어 "최근 몇년간 사적인 대화를 통해 나는 아동에게 성관계가 심리적으로 해로울 수 있음을 알게 됐다"면서 "이로 인해 이 사안에 대한 내 생각이 바뀌어, 나는 성인이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스톨먼은 같은날 제프리 엡스타인, 마빈 민스키를 옹호했다는 언론의 보도와 그에 따라 확산된 세간의 인식을 반박하는 입장도 함께 제시했다. 그는 "제프리 엡스타인과 마빈 민스키의 교제에 대해 쓴 글의 내 메시지를 보도한 언론의 오도(misleading)에 대응하고자 한다"면서 "해당 보도들은 내 입장을 완전히 왜곡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보도) 제목은 내가 엡스타인을 옹호했다고 하는데 진실에서 이다지도 동떨어질 수가 없다"면서 "나는 그를 '연쇄 강간범(serial rapist)'이라 불러 왔고 그는 수감돼야 마땅하다고 말했다"고 썼다. 또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제 내가 그를 옹호했다고 믿거나 또는 다른 부정확한 주장을 믿으면서, 내가 말했다고 그들이 믿는 것 때문에 실제로 상처를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리처드 스톨먼 홈페이지 영어 원문 바로가기 ☞ 14 September 2019 (Sex between an adult and a child is wr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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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스톨먼 홈페이지 영어 원문 바로가기 ☞ 14 September 2019 (Statements about Epstein)]

스톨먼이 FSF와 MIT에서 사임하기 전까지 다수의 언론은 주로 이메일에 담긴 그의 과거 견해에 초점을 맞춰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