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와 친구하랬더니 결혼하겠다는 카카오모빌리티

[백기자의 e知톡] 업계 갈등 줄이고 경쟁 우위 서려는 전략

인터넷입력 :2019/09/18 15:25    수정: 2019/09/18 17:07

이동과 관련된 O2O(Online to Offline) 모빌리티 서비스를 제공해오던 카카오모빌리티가 법인택시 회사 두 곳을 인수하더니, 최근에는 가맹택시 회사 ‘타고솔루션즈’를 인수했습니다.

정부가 택시와 유사한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플랫폼 사업자들에게 택시 회사와 협업하는 방안을 제시했는데, 카카오모빌리티는 협업을 넘어 택시 회사를 직접 사들이고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둘이 친구로 지내”라 했더니, “그냥 결혼하지 뭐”라는 모양새입니다.

“이러다 택시 회사가 되는 거 아냐?”라는 생각이 들 만큼, 카카오모빌리티가 택시 사업에 직접 발을 담그고 있어 그 배경과 속내에 업계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차량과 이용자를 중간에서 연결해주는 중개 플랫폼 사업자인 카카오모빌리티는 정말 택시 회사가 되려는 걸까요. 그렇다면 그들은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을까요.

■ “혁신도 생존권 결기 앞에서는 무력하더라”

3차 카풀 반대 집회에 참석한 택시 종사자들.

먼저 카카오모빌리티가 택시 사업에 직접 뛰어든 이유는 ‘혁신’이란 명분으로 택시 단체의 힘을 뛰어넘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회사는 ‘카풀’ 서비스를 강행하면서 택시 단체들의 대규모 집회와 기사들의 분신 사망 사고를 겪으며 “혁신도 생존권을 건 택시 기사들과 단체의 결기 앞에 무력하다”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규제 혁파와 신산업 진흥을 주창하던 정부와 국회였지만, 기존 산업에서 오랫동안 종사해온 택시기사들과 단체의 결집을 마냥 무시하고 카카오 편을 드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였습니다. 국토교통부가 택시와 모빌리티 상생안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택시와 손을 잡아야 한다는 기본 전제를 단 것만 봐도 정부 의중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카카오택시’ 서비스로 그 누구보다 택시 종사자들과 가까이 지내온 카카오모빌리티는 택시와 적이 되기보다 친구, 친구를 넘어 부부가 되겠다는 판단을 내린 것입니다. 택시와 싸워봤자 승산 없는 싸움이란 결론을 타사 대비 상대적으로 빨리 내린 것이죠.

■ “우리, 친구 말고 결혼하자”

오광원 타고솔루션즈 대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정주환 카카오모빌리티 대표

그럼 카카오모빌리티는 택시 회사들과 손을 잡아도 될 텐데, 굳이 왜 직접 택시 회사를 인수하고 나섰을까요. 그 이유는 앞으로도 이동과 관련된 다양한 서비스와 사업 모델을 추가할 예정인데, 이 때 택시 업계와 갈등을 빚는 일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입니다.

카카오모빌리티는 지난해 초 카풀 서비스 업체 럭시 지분 100%를 250억원 주고 인수했습니다. 그런데 제대로 시작해보기도 전에 택시 단체들의 반발로 서비스를 ‘잠시’ 접었습니다. 사용자에게 가성비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여기서 발생되는 수수료를 수익으로 남기려던 계획이 물거품 된 셈입니다.

또 카카오택시 서비스에 AI 서비스를 적용해 배차에 유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신 콜비를 받으려던 계획도 이용자 반발과 택시 업계 우려, 이로 인한 정부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습니다. 대리운전 서비스 출시 때도 기존 대리운전 단체들로부터 거센 반대와 항의를 들어야했습니다. 기업 입장에서 새로운 서비스를 내놓고 영리를 추구하는 것이 마땅한데 뭐만 하려고 들면 여기저기서 두들겨 맞다보니, 이로 인한 내상은 깊어졌습니다.

앞으로 새로운 서비스를 출시할 때마다 택시 업계와 대척점에서 싸우고 정부와 국회를 설득해야 한다면 카카오모빌리티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습니다. 이 때문에 카카오모빌리티는 택시 사업에 있어서만큼은 ‘연결’(Connecting)이 아닌 ‘변신’(Transformation)을 선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당장 큰 돈이 들더라도, 택시 회사 옷을 걸치고 택시 DNA를 하나씩 이식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죠.

■ “타다 크는 거 보니 속이 다 타네”

VCNC 모빌리티 서비스 '타다'(사진=지디넷코리아)

카카오모빌리티 행보가 빨라지고 공격적으로 변한 이유는 경쟁사의 빠른 성장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입니다. 바로 VCNC ‘타다’의 매서운 추격과 성장이 카카오모빌리티의 정신을 번쩍 들게 한 것이죠.

VCNC에 따르면 타다는 택시업계 반발에도 불구하고 출시 10개월 만에 서비스 지역을 약 1.5배 확대했으며, 호출수도 약 1600% 증가했습니다. 또 지난 달 기준 타다 회원수는 약 100만 명을 돌파했고요. 재탑승률은 평균 89%를 기록했습니다. 드라이버의 업무 만족도도 76%로 조사됐습니다. 주위에만 물어봐도 타다 서비스에 대한 만족도가 꽤 높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2016년 기준 국내 택시 시장 규모는 8조2천억원에 달합니다. 시장성이 큰 영역에 경쟁사들이 막 세를 넓히려는 지금, 당장 많은 돈이 들더라도 ‘골든타임’을 놓쳐선 안 된다는 전략적 판단이 선 게 아닐까요.

카카오택시 블랙

카카오모빌리티 입장에선 불법 논란 속에서도 빠르게 성장한 타다에 택시 시장을 내줄 수 없는 노릇입니다. 2015년 4월부터 카카오택시 플랫폼을 사실상 무료로 제공하며 택시 시장을 혁신하고 성장 기반을 다져놨더니, 틈새를 뚫고 금세 동일 시장에 들어온 타다가 좋게 보일리 없겠죠. ‘민심’을 경쟁 서비스에 뺏기는 조바심도 컸을거라 생각합니다. 대규모 투자가 이뤄질 때 약속한 기업공개(IPO) 시점이 오기 전, 안정된 수익을 만들 필요도 적지 않았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카카오모빌리티는 2017년 6월 TPG 컨소시엄으로부터 5천억원의 투자를 받아 상대적으로 많은 현금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TPG가 4천500억원, 한국투자파트너스가 300억원, 일본계 오릭스가 200억원을 카카오모빌리티 상장 전 지분투자 거래에 참여해 이 회사 지분 20%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타다를 비롯해 경쟁사들이 정부의 택시-모빌리티 상생안을 바탕으로 더 성장하기 전에 인수합병을 통한 시장 선점 전략이 필요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투자사 쪽에서 더 공격적으로 나가라는 주문이 있었다는 소문도 들립니다. 또 지난 5월 추가로 선임된 류긍선 공동대표도 이런 임무를 갖고 카카오모빌리티에 합류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 카카오모빌리티가 택시 회사가 되면...

라이언택시 카니발(왼쪽), 스타렉스 버전.(사진=지디넷코리아)

요약하면 카카오모빌리티는 “향후 모빌리티 사업을 하는 데 있어 택시 업계, 정부와의 마찰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인수합병 전략을 이용, 택시와 같은 편에 서라”, “정부의 상생안이 본격 시행되기 전 신속히 움직여라” 전략을 쓰고 있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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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와 마주 보며 눈에 힘주던 카카오모빌리티가 어느 순간 택시 옆에서 같은 곳을 바라보며 목소리 높일 날이 오지 않을까요. 조금 과장하면 집회하러 광장에 나갔더니 카카오모빌리티가 택시 단체처럼 ‘투쟁’이란 단어가 적힌 붉은 깃발을 들고 나와 있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택시가 곧 카카오모빌리티가 되고, 카카오모빌리티가 곧 택시가 되는 그림이 완성되면 그 때 우버와 같은 서비스가 됐든, 카카오모빌리티가 ‘잠시’ 접은 카풀 서비스가 됐든 새롭고 실험적인 모빌리티 서비스들이 보다 쉽게 상용화될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