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리눅스가 출시됐을 때 시장에서 성공할 것이라 믿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다양한 기업의 유닉스 제품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었고, 리눅스는 인텔 기반이라는 범용성과 무료라는 것 외에 별다른 매력이 없었다.
하지만, 리눅스 진영에는 비밀병기가 있었다. 어떤 유닉스 플랫폼도 가지지 못한 열성적인 오픈 소스 기여자들이 그것이다. 열성적인 기여자들로 무장한 리눅스 진영은 철옹성 같던 유닉스 시장에 균열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에 분위기 반전을 감지한 대형 IT 기업들도 리눅스와 오픈 소스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자사의 폐쇄적인 유닉스 플랫폼 기술을 공개하고 리눅스 발전에 기여했다.
대기업까지 리눅스에 참여하면서 리눅스는 더이상 유닉스의 불법 카피가 아니라 대표적인 엔터프라이즈 운영체제가 됐다. 더불어 인텔 기반 X86 서버 시대가 개막할 수 있었다.
2009년 최초의 블록체인 시스템으로 등장한 비트코인은 리눅스와 그 시작이 비슷하다. 작은 커뮤니티에서 시작됐고 오픈소스를 적극 활용했다. 여기에 블록체인 프로젝트의 열정적인 참여자들이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궜다.
자연스럽게 대형 기업들도 비트코인이 촉발시킨 탈중앙화된 디지털 재화 발행과 분산원장 기술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IBM은 블록체인의 미래에 베팅하여 오픈소스 블록체인 프로젝트 하이퍼레저 패브릭을 주도했고, 블록체인을 위한 클라우드 지원을 선도했다. 아마존웹서비스와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블록체인이 기업에서 사용될 수 있도록 자사 클라우드에 통합했다.
여기에서 한 단계 나아가 블록체인 기반 서비스를 직접 발표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20억명 이상이 사용하는 소셜 미디어 기업인 페이스북은 리브라라는 자체 암호화폐를 발행하고 금융 서비스를 혁신하겠다고 나섰다. 한국 대표 메신저 기업 카카오도 클레이튼이라는 블록체인 서비스를 들고 나왔다. 기술적으로 이더리움 소스 기반으로 큰 차별화는 없지만, 카카오의 유저 기반과 한국의 여러 리버스ICO 업체들의 제휴로 시장 지배력과 파괴력을 키우고 있다.
블록체인 기술은 탈중앙화라는 이상을 품고 등장했는데, 독과점에 가까운 거대 IT기업이 참여하면서 산업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상황이 아이러니하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리눅스 확산 과정을 생각해 보면, 너무 혼란스러워할 일만은 아니다. 블록체인도 자연스러운 산업화 과정을 밟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비트코인 노드를 운영하거나 이더리움 노드를 운영해본 경험이 있다면 얼마나 노드 업데이트, 블록체인 보안 패치, OS 보안 패치가 쉽지 않은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상업 서비스를 개발하는 것이 목표인 기업 입장에서 복잡한 노드와 메인넷 유지보수에 신경 쓰지 않고 서비스 개발에만 몰두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다. 클라우드 업체들이 이런 영역을 담당해 준다면 맡기지 않을 이유가 없다.
페이스북 같은 대기업이 발행하는 암호화폐도 탈중앙화 이상에선 멀어졌지만, 의미가 있다. 그동안 암호화폐를 '실체 없는 것'으로 치부했던 사람들이 암호화폐의 가능성을 재평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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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브라는 각국 중앙은행이 가진 발권력과 신용도에 버금가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각국 중앙은행이 리브라를 경계 대상 1호로 보고 경계하는 상황만 봐도 알 수 있다. 리브라가 각국의 통화 주권을 흔들 수 있는 파괴력을 가졌다고 보기 때문에 견제에 나선 것이다.
블록체인은 산업화 초기 단계에 있다. 이상과 현실이 타협하는 과도기를 거치면 블록체인 역시 더 이상 의식하지 않고 일상 생활의 서비스 중 일부로 녹아들 것이다. 마치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사용할 때 더 이상 대중들은 어려운 기술이 아니라 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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